한겨레는

필자도 잘 알지 못하면서 곧잘 말한다. “말과 글 및 행동이 한겨레 정신과 가치에 맞는가?”라는 것이다. “이에 부합되지 않는 기사를 한겨레신문과 한겨레온에 실어야하는가”라고 묻는다. 답이 좀 애매하고 부담스러웠다. 한겨레의 의미는 무엇이고, 한겨레의 정신과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해 이참에 필자부터 확인하고 싶었다. 우선 갑과 을의 대화를 통해 한겨레의미, 한겨레정신, 한겨레가치에 대해 얘기를 나눠본다. 이는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이므로 이견이 있으면 첨언해 주면 고맙겠다.

▲ 출처 : 한겨레, 한겨레는 무슨 의미인가?

갑: 왜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했는가?

을: 한겨레신문 창간정신과 그 가치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갑: 한겨레신문 창간정신과 가치가 무엇인가?

을: 우리 모두 한겨레가 되어 한겨레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갑: 그럼 한겨레란 무엇인가?

을: 사전을 보면 한겨레란 “큰 겨레, 즉 한반도와 그에 딸린 섬에 예로부터 살아 온 우리 겨레를 통칭하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즉, 동일문화와 동일역사를 갖고 우리 땅에서 함께 사는 인민대중을 말한다.

갑: 동일문화와 동일역사를 갖지 못하고, 우리 땅에서 함께 살지 않으면 한겨레가 아닌가?

을: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세계화된 현대사회에서 한겨레란 의미에 특정한 문화. 역사. 영토를 한정할 필요는 없다. 광의로 보면 동일문화와 동일역사를 갖지 않고 우리 땅에서 함께 살지 않아도, 하나의 국가(대한민국)라는 틀 내에서 한겨레라는 의지를 갖고 사는 사람이라면 한겨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갑: 한겨레란 동일문화와 동일역사를 갖고 우리 땅에서 사는 사람들이지만, 좀 더 세계화된 광의로 보면, 하나의 국가(대한민국)라는 틀 내에서 어울려 살고 있는 인민대중을 뜻한단 말이지? 그럼 한겨레의 정신이란 무엇인가?

▲ 한겨레의 정신과 가치는 무엇인가?

을: 앞서 언급한 한겨레라는 공동체의식(문화, 역사, 땅, 의지)을 갖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큰 뜻으로 모여 동고동락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인종과 민족이 달라도 이에 동의동참 한다면, 한겨레로서 한겨레정신을 갖고 한겨레가치를 실현해 간다고 볼 수 있을 거야.

갑: 한겨레라는 공동체의식이 한겨레정신이란 말이지. 또한 한겨레가치를 실현하는 것이기도 하고.

을: 하지만 무엇보다도 조화로운 어울림이 있어야 해. 즉 상생하고→공생하여→화생으로 이어지는 삶의 패턴이 생활화 되어야해. 삶이란 생명체들 간의 어울림이니까 말이야. 특히 민족과 인종 및 이념을 달리하더라도 가강 필요한 것은 조화로운 어울림이라 할 수 있어. 우리가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평화의 시종도 바로 이것이라 할 수 있지.

갑: 한겨레가치는 한겨레정신으로 살면서, 한겨레로 살고자함을 지향하는 거란 말이지. 정신은 이념적인 것이고, 가치는 현실적인 것이라 볼 수 있겠네. 무엇보다도 조화로운 어울림!

을: 맞아. 한겨레가 되어 한겨레정신으로 사는 것이 한겨레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라 볼 수 있어.

▲ 출처 : 한겨레, 한겨레 30년의 진실과 평화

갑: 그럼 우리 실생활에서 한겨레정신과 한겨레가치에 부합되는 것은 무엇이고 부합되지 않는 것은 무엇이야?

을: 그것 참~. 칼로 두부 자르듯이 그렇게 나누기는 어려워. 때와 장소 및 상황의 변수가 있잖아. 무엇이든지 절대적인 것은 없어. 인간과 동식물 및 물건들까지도 모두 상대적인 존재니까.

갑: 그럼 어떻게 해. 일부에서는 정확히 갈라치기하자고 하는데...

을: 애초 한겨레라는 의미에는 갈라치기란 없어. 갈라치기는 한겨레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야. 한겨레는 큰~겨레야. 그 속에는 배타와 배제는 있을 수 없어. 큰 강이 샛강을 무시하지 않고, 바다가 어느 강을 배제하지 않듯이 말이야. 한겨레란 통합과 포용의 의미가 커. 그를 떠난다면 한겨레라고 볼 수 없지. 혹 조금 말썽이 있어도 그 틀 안에서 용해시키고 하나가 되어야지 갈라치기는 곤란해.

 

갑: 그럼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마구잡이로 다 안아야 해?

을: 음~ 고려할 것은 있지. 작은 것(약자)이 큰 것(강자)을 안을 수는 없어. 그 반대는 가능하지. 이는 강자가 약자를 굴복시킴이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는 큰 품을 갖는 거야. 약자의 자존을 해치지 않고 거부감 없이. 큰 것은 반드시 나눔과 포용이 있어야 해. 그래야 크다 할 수 있지.

갑: 맞아. 세상엔 자기 것이 없다 했지. 육신마저도. 하물며 물질과 생각등 그 무엇이 자기 것이겠어? 그래 다 좋아! 그런데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 허락할까?

을: 어렵지 어려워. 보통 인간들은 물질(의식주차_食衣住車등)로 자신을 나타내려고 해. 물건이 자신을 가려버린다는 것을 잊고 말이야. 물건으로 자신을 나타낼 수 없어. 물건이 어찌 자신을 대신하고 대변하겠어. 어리석은 일이지만 겉과 허울을 중시하는 사회풍조와 교육의 폐단이야. 이는 스스로를 무시하는 꼴이지만 안타깝게도 더욱 심회되고 있어 걱정이야.

▲ 출처 : 한겨레, 남북 평화시대의 맞춤신문 한겨레신문

갑: 그것은 그쯤 하고, 한겨레와 한겨레온에 게재되는 기사는 어떻게 구분해야 해.

을: 언론이 한 방향의 기사만 실으면 존재감이 약해져. 신뢰성도 떨어지고. 우리사회가 하나의 이념으로만 흐른다면 큰 문제 아니겠어? 일방은 위험해. 기울면 넘어지잖아? 독재가 일방이지. 고로 언론은 다양한 기사를 실어 서로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해. 생명을 해치지 않는 선이라면 구분과 배제는 하지 말아야지.

갑: 그렇겠네. 한겨레니까.

을: 신도 선택하고 배제할 권한은 없다고 생각해. 만약 그렇다면 그는 신이 아니라 그 어떤 변종이겠지. 다른 언론이 호불호에 따라 선택하고 배타한다 해도 한겨레만큼은 그러지 말아야 해. 한겨레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으니 말이야.

갑: 왜 한겨레인가를 생각하라고?

을: 그렇지.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가는 큰~세상! 그게 바로 한겨레의 정신과 가치가 아닐까? 또한 한겨레란 하나의 작은 울타리로 축소된 의미가 아니라 더욱 포괄하고 더 포용한다는 것이지. 그런 큰 한겨레가 되어야지 않겠어?

갑: 맞아 우리의 보자기가 생각나. 보자기는 상대의 모양에 관계없이 모두를 싸매지. 때로는 구멍이 나고 찢겨져도 말이야. 한겨레는 보자기처럼 그렇게 되어야겠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