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1돌에 한겨레 동지들께 드리는 말씀

한겨레 사우 여러분,

오늘 우리는 창간 31주년을 맞았습니다.

이른 아침 출근하면서 1년 전 아침을 떠올렸습니다. 30주년의 그날이 무척 가슴 벅찼던 기억이 났습니다. 청년의 정점이자 장년의 첫발이었던 숫자 30이 주는 힘이 강했을 것입니다.

이 기념사를 쓰기 시작하면서는, 1년 전에 비하면 오늘은 좀 차분해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막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난해에는 30년의 세월 위에 있었다면, 올해는 또 다른 30년의 길을 떠나는 원년이기 때문입니다.

토요일마다 회사 곳곳을 층층이 둘러 봅니다.

사우들의 일터 앞에서, 이틀 뒤면, 눈 앞에 보이는 저 자리에 있을 사우들의 활력과 수고를 마음에 담아보려 애씁니다. 요즘 들어 빠지지 않고 찾는 5층 영상스튜디오에선, 작고 아름다운 나비의 영롱한 날갯짓을 느낍니다.

사우들마다 조금씩 느낌은 다르겠지만, 지금 우리는 한겨레의 성장판을 오랜만에 활성화시키고 있습니다. 서른 한돌에 시작한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처럼 큰 바람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다 함께 소망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겨레 가족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창간 기념일이 되면, 1988년 창간일부터 기산해 지난 시간을 회고했습니다. 한겨레의 창간 주역인 수만 수십만의 민주시민 그리고 많은 땀과 헌신 속에서 역경 극복의 역사를 써온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다시 한 번 서로의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지난 시간은 우리가 자부심을 갖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간입니다.

한겨레에서 일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동료들께도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자부심을 가져주시라 요청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한겨레 가족 여러분,

이제는 지난 역사를 돌이키는 것보다 다가올 미래를 내다보는 것으로 창간 기념일의 의미를 옮겨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지난 31년의 자부심은 미래를 향한 동력이어야 합니다.

구성원의 나이로 보는 인력 구조만 하더라도, 한겨레는 머지 않은 미래에 변곡점을 지나 조금씩 젊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근래에 맞이 한, 또 앞으로 새로이 맞을 한겨레 가족들은 지난 시간보다 다가올 시간을 자신의 역사로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 역사의 문을 열고 디딤돌을 놓을 소명은, 앞서 한겨레에 몸담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저는 한겨레의 새로운 30년은 향후 5년이 좌우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5년을 생각하며 제안 드리고 싶은 첫 번째는 바로 ‘도전’입니다. 우리 몸에 밴 관성은 새로운 가족들의 눈엔 낯설고 의미 없게 비칠 것입니다. 변화한 사회와 변화한 한겨레의 상황과 맞지 않는, 미래로 나가야 할 한겨레의 발목을 잡는 관성과 관행, 모든 익숙한 것들과 헤어집시다.

마치 원년을 맞는 듯이 새로운 문법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새로운 프로세스로 일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 새로움은 경영진이, 보직 간부가 주문하듯 해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보직 간부들이 관성에 물들지 않은 구성원들의 창의를 북돋우기 위해 애써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영상 등 콘텐츠 분야는 물론 새로운 사업 영역에선 청년 한겨레인들이 이미 주력으로 등장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음달 한겨레 라이브 영상 뉴스룸의 론칭을 위해 애쓰고 있는 사우들에게 각별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비록 시작은 작지만, 한겨레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 10년, 영상은 한겨레의 가장 큰 기둥이 될 것입니다. 또한 한겨레 디엔에이가 깊고 뚜렷하게 새겨진, 탁월하고 차별성 있는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주실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른 어느 매체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진하고 있는 탐사/기획 보도도 우리의 미래를 밝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쟁 언론에 편승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지가 될 수 없습니다. 위험이 있더라도 앞장 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도전만이 우리의 선택지입니다.

론칭 첫해부터 흑자를 낸 코인데스크코리아, 고군분투하며 새로운 실화콘텐츠의 장을 열기 위해 애쓰는 팩트스토리 등 신규사업 분야를 비롯해, 광고/판매/디지털/제작 등 각 분야에서 한겨레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거친 파도와 맞서며 동분서주하는 모든 임직원들께도 대표이사로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고마움을 전합니다.

한겨레 동지 여러분,

새로운 30년을 열기 위해, 우리의 도전을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또 하나는 우리 모두의 주인의식입니다. ‘나는 한겨레라는 큰 조직의 부품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그 누구도 한겨레의 주인은 자신을 포함한 580여 임직원 개개인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동지 여러분,

우리는 매년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처럼 여기까지 왔습니다. 최근에는 삼성 등 대자본의 압박을 헤치고 이겨내 왔습니다. 그럴 수 있는 힘은 한겨레 임직원들의 일치된 노력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치러야 할 가장 어려운 시험은 주52시간제입니다.

주인 된 노동자인 우리가 미래를 팔아 현재를 살지 않도록, 각 부문간의 동료애에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다 함께 현명하게 판단하자”는 호소의 말씀 드립니다.

31돌의 기념사를 쓰기 위해 지난 날의 자료를 살펴보다 우연히 과거 노보에 실린 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겨레 노조는 분명 여느 노조와 다른 정체성을 지닌 채 출발했다. 노사관계를 ‘비적대적 모순관계’로 정리할 만큼 험난한 생존조건을 딛고 함께 싸워나가야 한다는 운명공동체의 인식이 확고했고 또 그렇게 행동했다. 안으로 사내 민주주의 확립과 경영참여, 밖으로 사회개혁의 완수라는 한겨레 노조의 주된 지향점은 이후 노조에서도 수위의 부침은 있었으되 면면한 흐름으로 이어져왔다.”

'공감 노조'에도 자본가가 없는 한겨레의 본질적 성격에 바탕해, 한겨레의 미래가 달린 52시간 노동제 시행과 관련한 전향적인 이해와 공감을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임직원 여러분,

창간 31주년을 맞는 오늘, 저는 원년의 초심을 되새깁니다. 대표이사인 저의 권한과 책임은 다름 아닌 여러분, 한겨레 구성원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상기합니다.

여러분들께도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한겨레 구성원 개개인이 회사의 주인이며, 나와 동료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올해는 현 경영진의 임기 마지막 해입니다. 경영진도 올해가 임기 첫해라는 각오로,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반드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난 2014년 이후 틈날 때마다 한겨레 동료들께 건넨 말씀의 한 대목을 되새기면서 창간사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욕망이 가치를 누르고, 루머가 진실을 덮으며, 과거가 미래를 가두는 일이 없이, 한겨레와 한겨레 가족이 힘차고 정의롭게 전진하기를 소망합니다.”

2019년 5월15일

대표이사 양상우

 

이동구 에디터  do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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