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化粧)하는 남자가 있다. 욕망을 조율하는 매순간 윤리색(色)을 덧바른다. 암이 재발한 아내를 정성스럽게 간병하지만 사랑타령과 무관하다. 보살피는 허드레꾼 몸짓에 주저함이나 성긴 데가 없다. 의료기기를 착용해 오줌을 뽑아내면서도 중역이나 남편으로서 고됨을 내색하지 않는다. 아내를 화장(火葬)하면서 화장(化粧)하는 그는 고독하다.

화장은 가면이 아니다. 흠은 가리되 표정지음이 자유롭다. 제 본색을 알기에 조심하는 차원이다. 상사가 아닌 남자의 욕망으로 부하 여직원을 엿보지만 추행에서 비켜난다. 그를 향해 달려오는 그녀와 함께하고픔을 떨치고 발가락을 드러낸 채 황황하게 길로 나선다. 그렇게 고독을 감내하는 화장은 민낯과 가면 사이의 줄타기다.

오랜만에 안성기가 주연이다. 장년의 주름과 마른 얼굴, 그리고 탄탄한 근육으로 화장하는 남자를 무리 없이 풀어낸다. 과묵한 정성, 선선한 중역, 환한 음색의 중후함, 두 팔 늘어뜨린 뒷모습 등을 연출하는 그는 내공 어린 변환 모드다. 그에게 몸을 내맡겨 병자의 수치심을 전달하는 김호정의 통 큰 연기에도 박수를 친다. 두 몸은 사물 너머를 보게 한다.

나도 매일 화장(化粧&火葬)한다. 지금-여기에서 새로 화장(化粧)하며 어제를 화장(火葬)한다. 관계망에 얽힌 유기체로서 그렇게 살맛을 지향한다. 살맛은 앞선 언행에서 우려먹을 수 없는 1회성이다. 매순간 화장(火葬)으로 벗어나 화장(化粧)으로 변화해야 맞이할 수 있다. 나는 화장하는 남자가 좋다.

김유경 주주통신원  newcritic21@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