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 / 주최: 신라문화제 운영위원회

제47회 신라문화제

---제1회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 / 주최: 신라문화제 조직위원회

2019년 10월 3일부터 9일까지 제47회 신라문화제가 경주 시 전역에서 개최되고 있다. 신라문화제는 국내에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행사다. 1962년 4월 13일부터 15일(2회부터는 매년 10월로 변경)까지 제1회 신라문화제가 개최된 이후 농사의 냉해나 흉작, 도민체전 등과 겹쳐 행사가 취소된 적도 있다. 반세기를 훌쩍 넘긴 신라문화제는 지금의 장년과 노년에게 추억이 깊다.

필자의 부친께서 운영하던 토건회사에서 제1회부터 제5회까지 일체의 시설공사를 입찰수주한 관계로 신라문화제는 더욱 각별하다. 행사가 끝나면 경주 시 전역에 달았던 태극기는 우리 집에서 곱게 개켜져 귀하게 보관했다.

놀이나 구경거리가 없던 그 시절의 신라문화제는 원근 간의 친인척들을 불러 모으는 친목을 도왔다. 서울보다 면적이 넓은 경주 오지에 살던 먼 일가들이 농사지은 팥이며 깨, 고구마 등을 이고지고 문화제 구경을 왔다. 으레 집 전체의 방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부산했다. 흰 무명옷 입은 어르신에게선 시골집 뒤란에 매어둔 멍석 냄새가 났다. 고무신 바닥이 닿도록 종일 재미난 구경을 하고, 밤에는 탁주잔을 기울이며 청춘가 가락이 한데 어울려 마당에 넘실거렸다. 숙제를 못해도, 발을 못 뻗고 자도, 그저 그러려니, 당시의 인정은 그토록 훈훈했다. 필자에게 신라문화제는 단순한 축제 이상의 의미에 젖게 한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축제처럼 우리나라 축제의 역사도 길다.

―고대 부여(夫餘)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동예(東濊)의 무천(舞天)과 신라의 한가위(嘉俳) 등은 추수를 감사하는 행사였다. 근대에 들어서는 경주에서 일제강점기인 1935년부터 제2차대전 전까지 신라제(新羅祭)가 열렸으며, 1954년 9월에는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경주지부(지부장 이상구)에서 ‘서라벌예술제’를 개최하였다. (중략) --[경주예총50년사](사,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경주지회 발간)에서 발췌.

 

그간 한글날과 겹쳐 ‘신라문화제 한글백일장’으로 46회를 치렀던 행사를 올해는 통일신라시대의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로 행하게 되었다. 조금 생소한 ‘독서삼품과’는 788년 신라 원성왕 4년에 설치된 관리등용방법이다. 신라의 관리 선발제도에서 비롯된 행사다. 예나 지금이나 독서의 중요성은 여전하여 국학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의 독서능력에 따라 관리를 선출했다. 일명 독서출신과(讀書出身科)라고 칭하기도 한다.

김경자 시인님(좌측)과 필자

 

―독서삼품과가 관리의 임명을 골품에 토대를 둔 족벌적(族閥的) 세력의 크고 작음에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윤리와 정치사상으로서의 유학을 공부한 학문적 능력에 기준을 두었다고 한다면, 비로소 학문적 소양을 갖춘 관리가 일부에서나마 탄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하대에 이르러 신분성 폐쇄성이 증가하고, 도당유학생의 적극적인 대두로 인해 독서삼품과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고려시대에 본격적으로 시행된 과거제도의 선구적 제도로서의 역사적 위치와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올해 처음 실시된 독서삼품과로 인해 학생들과 대학일반 모두 더 많은 독서를 했으면 희망한다. 일하지 않고 먹을 수 없듯, 책을 읽지 않고 지식을 쌓을 수 없다. 책을 제대로 읽어야 옳고 그름의 사리를 분별하는 도리가 몸에 베인다. 도리가 몸에 베여 제 것이 되면 누가 뭐래도 거짓과 참을 선명히 구분한다. 탁류의 분간 없는 시류에 어영부영 휩쓸려 무분별한 언행을 일삼는 것 모두가 원칙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천박한 성품에서 비롯된다.

어제 행사를 끝낸 밤부터 온도가 싸늘히 가을답다. 책읽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계절은 없다. 한 마리의 다람쥐가 2천여 개의 도토리를 한 해 먹이로 저장한다. 너무 바지런한 다람쥐는 너무 많이 모은 도토리를 다 찾아 먹지는 못한다. 그래도 해마다 팔이 아프게 도토리를 주워 모아 간직한다. 생명을 지탱하는 삶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함이란 어쩌면 모든 것의 준비성에서 비롯된다. 온전한 시간은 없어서 때로 사라질 것을 대비하고, 청솔모에게 나누어도 좋으리라.

우리도 한 해 2천 페이지의 글을 읽으면 좋겠다. 사람의 독서도 다람쥐 도토리와 같다.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다 소화하지 못해도 보이지 않는 소양이 되어 품성을 높여준다. 쓰기 전에 읽어야한다. 읽고 생각하지 않으면 글을 갉아먹는 벌레에 불과하다. 글과 말은 원래 알몸이지만 생각이라는 옷을 입어야 격식을 갖춘다.

언어에는 사고어(思考語)와 표현어(表現語)가 있다. 떠오른 생각의 사고어는 날것이지만, 도리에 맞는 표현어는 예의가 된다. 이 두 어법(語法)을 잘 조절할 수 있어야 소통의 관계가 원만하다. 비만한 사람을 보며 “돼지”를 연상할 수 있지만 상대에게 “돼지”라고 말해선 안 된다. 비만은 특징적 신체일 뿐 그 사람의 됨됨이와는 무관하다. 모욕이 쌍욕과 유사한 이유다. 언어의 예절이란 간단하다. 상대의 입지에 내가 서보는 역지사지면 족하다. 일반적 학문의 지식과 다양한 삶을 이해하는 문학적 독서는 일면 다르다. 삶의 깊이는 양질의 독서에서 나온다. 누구에게나 공평히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알차게 보내는가는 개인의 선택이다.

 

경주문인협회 이령 시인의 시 2편을 싣는다. 

▲ 이령 시인

시인하다 

                            이령

난 말의 회랑에서 뼈아프게 사기치는 책사다

바람벽에 기댄 속수무책 말의 어성꾼이다

집요할수록 깊어지는 복화술의 늪에 빠진

허무맹랑한 방랑자다

 

자 난 지금부터 시인(是認)하자

 

내가 아는 거짓의 팔할은 진지모드

그러므로 내가 아는 시의 팔 할은 거짓말

그러나 내가 아는 시인의 일 할쯤은

거짓말로 참 말하는 *언어의 술사들

 

그러나 난 시인(詩人)한다

 

관중을 의식하지 않기에 원천무죄지만

간혹 뜰에 핀 장미엔 미안하고

해와 달 따위가 따라붙어 민망하다

 

날마다 실패하는 자가 시인**이라는 것이

원죄이며 사기를 시기하고 사랑하고 책망하다 결국

동경하는 것이 여죄다

 

사기꾼의 표정은 말의 바깥에 있지 않다

 

그러나 詩人의 是認은 속속들이 참에 가깝다

(*이성복 / **장콕토)

 

 

불가사의한 방

                             이령

간(間)이다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이다

썩은 시간의 냄새, 기류에

편승하지 못한 이들의 아우성이다

틸문, 천공의 성에 닿으려고 새삼

골똘한 밤이다

혁명가가 광장에서 깨진 사상을

수리한다

앵커가 거품을 물고 평화를 타전한다

찌지지직 비둘기가 구역질 한다

올리브 열매를 물고 온 비둘기가

소음에 깔려죽자 비린내가 진동한다 

비둘기가 사라지자 죽기엔 너무

이른 앵커마저 평화를 가장한다

자취방 알전구 빛이 무지개로 

뜬다

빨간 동그라미가 쳐진 구직(求職)란이

구신(仇信)란으로 굴절된다. 미궁이다

문을 열어 줄래!

人間과 時間과 空間 안에

밑도 끝도 없는 주문만 쌓여간다

봉인된 채 문드러진 문장들, 잘

길들여진 시간 안에서

이 생은 누구도 완성하지 못할 연대기다

(약력: 경주 출생. 201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신인상 수상. 2014년 한중시인합동시집 '망각을 거부하며' 참여. 2018년 '시인하다' 발간(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도서 선정). 젊은시동인 Volume회장. 웹진 '시인광장' 부주간)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이미진 객원편집위원  lmijin0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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