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79] 등산장비 판매점 王子-1

김동호 편집위원l승인2019.10.18l수정2019.10.2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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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등산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남대문, 현 지하철 4호선 회현역 부근의 등산장비 전문점인 아리랑산맥을 기억하실 겁니다. 2대에 거쳐 운영하다가 지금은 사라져 아쉬움이 남습니다.

대만에 수출할 첫 번째 품목은 텐트로 정했습니다. 당시 대만에서 본 텐트는 방수 처리한 원단을 사용하지 않아 무겁고, 바닥 면은 열에 쉽게 구멍이 나는 조악한 수준이었습니다.

▲ 이동식 가옥의 원형은 아마도 몽고의 게르가 아닐까요? 텐트의 중국어는 몽꾸빠오(蒙古包)입니다. 사진 : 2009년 8월

남대문 아리랑산맥에 가서 텐트 6동을 상표 없이 주문했습니다. 당시 사장님은 아들과 동갑인 나에게 많은 도움과 격려를 해주었지요.

텐트는 몸체와 기둥 역할을 하는 폴, 그리고 몸체를 덮어 햇빛과 이슬을 막고 공기층을 형성해 단열효과를 내는 플라이로 구성됩니다. 그 플라이에 코끼리 문양과 ELEPHANT라는 상표를 인쇄하였습니다. 

1. 타이베이부터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도시마다 내려 등산장비 판매점을 방문한다.

2. 텐트를 보여주고 주문을 받아 한국에 와서 만들어 수출한다.

그 이상은 20대 후반의 변변치 못한 제 머리로 생각할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다 플라이에 상표 인쇄한다고 원단 6장을 들고, 을지로 인쇄골목 뒤지고 다닐 때부터 이미 용량에 과부하가 걸렸으니까요.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텐트 6동을 들고 다시 대만 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언젠가 타이베이역 부근을 지나다가 본 등산장비 판매점을 찾아갔지요. ‘王子’라는 노란 글씨가 촌스럽게 펄럭이는 깃발을 보며 상점으로 들어서니 시원한 내부는 의외로 넓고 규모가 상당하였습니다.

머리가 백발인 노인과 책상에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친구가 앉아 있었습니다. 공손히 어른께 인사하고 한국에서 온 사연을 이야기했더니 젊은이에게 가서 이야기하라며 담배를 뽑아 건네줍니다. 젊은 친구(당시 딸 넷의 아버지)는 쭈뼛쭈뼛 다가온 저를 보면서 담배를 뽑아 물고는 먼저 제게 불을 붙여줍니다. 1980년대 대만의 첫 만남은 으레 담배를 권하고, 술자리에서 왁자지껄 술잔을 부딪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저의 시나리오는 "등산장비를 대만에 팔기위해 우선 텐트를 샘플로 만들어왔다고 말하고, 텐트를 보여주면 한 200~300동 주문을 한다. 기쁜 마음으로 다음 목적지로 간다"는 수순이었습니다. (이렇게 단순한 인간도 아직 세상을 사는 거 보면 너무 어렵게 살지 않아도 되나봅니다.)

이 친구 한눈에 어리바리한 저를 알아보고,

“그거 어디 가서 팔래?”

‘엥??? 어디서???? 이 땡볕에 어디로 나가라고???? 다리 밑 그늘을 찾아 텐트를 펼쳐놓고 호객을???’

짧은 시간 입력되지 않은 복잡한 생각들이 중구난방 어지러웠고, 복잡한 심사는 제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에어컨 빵빵한 실내에서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저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 텐트 얼마에 만들고, 얼마의 이윤을 붙여 팔 생각이었냐?” 이어서, 자기도 한국에서 등산장비를 수입하려고 한다며, 내가 받고 싶은 금액을 말하면 자기가 다 사주겠다. 그리고 자기가 운영하는 다른 무역회사가 있으니 그곳으로 출근을 하면 어떻겠냐고 합니다.

우선 시원한 곳에 있었더니 땡볕에 또다시 모르는 등산장비 판매점 물어물어 찾아갈 생각이 안드로메다쯤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텐트 얼마에 팔지?’

순간 스스로 생각해봐도 참 한심합니다. 텐트로 사업하겠다는 인간이 원가가 얼마인지, 얼마를 받을 건지?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王子라는 깃발만 보고 찾아왔으니까요. 대충 들어간 원가에 약간의 이윤을 추가해서 돈 받고, 대만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친구 기숙사에 들어가 더부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이 王子의 사장은 큰아들인 리지엔숑(李建雄)이고, 여동생의 남편이 무역회사를 관리했으며, 다른 남동생도 등산장비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의기양양 텐트를 짊어지고 대만 산하를 나의 브랜드로 뒤덮고야 말겠다는 야심은 간데없고, 담배 한 개비 피우는 사이에 엉뚱하게도 대만의 작은 무역회사에서 월급 받는 직원으로 변해있었습니다.

직장생활의 경험도 없었고, 월급도 받아본 적 없는 저는 '王子' 근처의 무역사무실로 출근하여 李建雄이 수입하고자 하는 한국제품을 조사하고 가격을 알려주었습니다. 약 2주 정도 만에 가격이 맞지 않는다며 수입할 의사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회사에서 해외 바이어를 발굴하는 방법과 수출 주문을 받아 중소 제조업체에 생산 의뢰하고 관리하는 것들을 대충이나마 경험하면서 수출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때로는 생산 공장으로 출근하여 일도 거들고, 李建雄사장의 친구들을 만나 사업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당시는 팩스도 없던 시대입니다. 텔렉스라고 영어 단어를 줄인 문자를 전송하여 상대국과 통신하던 시대였습니다. 1980년대 대만은 중소기업 위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던 시기였지요. 조그만 가정에서도 기계 한두 대 가져다 놓고 뭔가를 만들어 팔았습니다.

전 세계 시장의 하늘을 나는 연의 90% 이상이 대만제였고, 우산, 자전거 등의 경공업 제품도 세계시장을 휩쓸고 있었지요. 제가 있던 회사는 물놀이 제품이었습니다. 품질이 우수하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가격경쟁력과 신속한 대응으로 자체 공장 없이 주문을 받아 위탁 생산하여 수출하였습니다.

엉성한 제품을 가지고도 열심히 광고하고 전시장마다 찾아다니며 바이어를 발굴하더군요. 대만 문구전시나 홍콩의 전시는 국제적으로 유명하여 많은 해외바이어가 찾았습니다. 아시아 제품들을 주로 전 세계 바이어들에게 소개하는 ASIAN SOURCES(Asian Manufacturers and Asian Suppliers)라는 잡지에 광고하여 수출한다는 사장도 만났고요. 이러한 정보와 경험은 나중에 저의 큰 재산이 되었습니다.

제가 필요하지 않은 곳에서 월급을 받는 것 같아 2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헤어질 때 사장에게 언젠가 다시 좋은 제품으로 찾으면 또 도와달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이렇게 끝난 인연이 새로운 시작의 출발이 될 줄 당시엔 몰랐지요.

편집 : 김태평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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