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티비를 켰더니 KBS에서 ‘TV는 사랑을 싣고’를 한창 방영중이다. 젊은 배우 김승현이 고교시절 사고뭉치인 자신을 잘 이해해주고 이끌어주신 은사님을 찾아뵙는 내용인데, 나 스스로 일선학교 교사로 현장에 있을 때 말썽꾸러기들과 지내느라 때때로 힘들었지만, 나름 보람도 느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가치관이 형성되기 전의 아이들에게 올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이끌어주는 선생님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나의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떠올리며 새삼 그리워졌다.

내가 10살 무렵, 서울 북아현동 산동네에 위치한 북성국민학교 3학년 1학기 중간에 우연치 않게 갑자기 반장이 된 나는 그야말로 어리버리한 아이에 불과했다. (원래 학기 초에 선출된 반장과 부반장 두 아이들이 있었지만, 매우 내성적이고 숫기가 없었다. 그래서 줄반장(~'분단장'이라고도 함)이던 나에게 교무실 심부름을 몇번 시키던 담임선생님이 어느 날 아침, “오늘부터 허익배가 반장 일을 맡기로 한다.”라고 선언하시고 나는 졸지에 반장 감투를 쓰고 말았다.)

그런데, 5월이나 6월쯤에 갑자기 담임선생님(=안경쓰신 중년의 여선생님이셨음)이 다른학교로 전출 가시고 새로운 담임선생님(=지금 생각하니, 미혼의 역시 안경쓰신 통통하고 키가 좀 작으신 여선생님)이 우리반에 배정되셨다. 그 담임선생님은 처음부터 나에게는 좀 어려운 분이셨던 것 같다. 4살 때 충청도 입장 근처 ‘성거면 모전리’라는 깡촌에서 부모님과 함께 서울로 상경한 나는 그 때에도 가끔 말을 더듬고 약간 어리버리한 촌티가 나는 아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새로 오신 담임선생님(지금 성함은 잊었지만 편의상 K선생님이라 칭함~선생님, 죄송합니다.)은 이전의 담임선생님에 비해 나를 별로 신뢰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어느 날 아침, K선생님이 조회시간 교실 입실 전의 우리 반 교실은 난장판 놀이터가 되고 있었다. 나를 비롯한 부반장, 줄반장 등 학급 임원들은 솔선수범(?)해서 다른 아이들 어깨 위에 무등을 타고 기마전을 하면서 난리법석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갑자기 K선생님이 교실 앞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오시는게 아닌가? 우리들은 혼비백산해서 얼른 제자리로 돌아가 선생님 눈치만 보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매우 못마땅한 표정으로 “반장 앞으로 나와!”하고 소리를 지르셨다.

나는 ‘이제 죽었구나’하는 기색으로 쭈볏쭈볏 앞으로 나왔는데, 선생님은 나의 이마에 사정없이 알밤을 먹이며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셨다. “반장이 애들 조용히 시켜야지, 반장 역할도 못하고 뭐하는거야? 에이그, 이 바보 멍청이 같으니라구...” 나는 갑자기 당한 선생님의 꾸지람에 얼굴이 빨개져 어쩔줄을 모르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그 시간이 왜 그리 길던지...

몇 번 나를 혼내시던 K선생님은 그제서야 마움이 좀 풀리셨는지, 제자리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나는 부끄러움과 당혹감에 눈물이 앞을 가리는 채로 자리로 돌아와 책상위에 엎드려 훌쩍거렸다. 그런데 이때 한번 터진 눈물은 좀처럼 멎지 않고 계속 나오는 것이 아닌가? 1교시부터 훌쩍거리며 엎드려 울던 나는 수업이 다 끝나는 4교시까지 줄곧 눈이 퉁퉁 붓도록 눈물을 찔끔거렸다. 쉬는 시간엔 얼굴을 들어 선생님이 계신 교단 쪽을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창밖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가끔 조그맣게 한숨을 쉬는 소리만 내고 있었다. (이제 생각하니, 그 당시 나는 그때까지 여러 친구들 앞에서 그렇게 세게 면박과 꾸지람을 받은 것이 처음이라 매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날 선생님은 아침 조회전에 일찍 오셔서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 문제종합장 책 한권을 주시며 아침에 학교 오는대로 칠판에다 문제를 10개씩 쓰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반 아이들에게 공책에 문제와 답을 베껴쓰도록 시키셨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아마도 그날 귀가하신 후에, 나에게 안쓰러운 마음과 더불어 어떻게 해야 아침에 학급을 조용히 시킬까 궁리하신 결과인 것 같았다.)

그날 이후, K선생님은 나를 대하는 눈빛과 말씨가 훨씬 부드러워지셨다. 내가 아침에 미처 문제를 다 칠판에 적지 못해도 빨리 쓰라고 다그치거나 독촉도 안하시고, 그저 내가 어서 문제 다 쓰기만을 기다리셨다. 그리고 어쩌다 내가 반 아이들 통솔을 못해 우물쭈물해도 언제나 내편을 들어주시는 K선생님 덕분에 반장 역할을 그런대로 잘 수행해 낼수 있었다.

어느 날인가, 여름방학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선생님이 종례 끝나고 나에게 교무실에 같이 가자고 하셨다. 그리고는 교무실에서 책이 담긴 선물봉투를 생일 선물이라고 주시는게 아닌가?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고맙습니다'라는 말도 못하고 나온 것 같았다. 그날 집에 돌아가 선물봉투를 열어보니, ‘아라비안나이트’와 ‘안데르센 동화집’ 두권의 새책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그날 이후, 아마 여름방학 한 달 동안 두권의 동화책을 얼마나 여러번 재미있게 읽었던지 책 표지가 너덜거릴 정도였다. 그때 읽은 아라비안나이트에 등장하는 ‘신밧드 모험’ 이야기와 ‘요술램프’, 그리고 안데르센 동화집의 ‘엄지공주’, ‘미운 오리새끼’, 결말이 슬퍼서 눈물 흘리며 읽은 ‘인어공주’는 평생 내 글쓰기의 자양분이 된 것 같다.

그리고는 4,5,6학년으로 진급하고 이어서 입시시험을 치르고 중,고교에 진학하고 사범대학 진학하고 군대 갔다와서 공립중학교로 발령받아서 강서구 김포공항 근처의 공항중학교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학교를 거치는 동안 반 아이들과 소통하는게 힘들어진다고 느낄 때, 바로 어린시절의 동화책 선물을 기억에 떠올린 나는 어느해 학년초부터 반 아이들 생일 명부를 작성해서 한달에 한번씩 월초에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하기 시작했다.(~책표지 다음장 여백에 몇가지 칭찬내용을 써서 주었다.)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도 가정방문도 해가며 나름 소통하려 했더니, 연말에는 학교생활 적응을 대체로 잘하게 되었는데, 아마도 서점에 가서 직접 고른 근대 단편소설이나 시집을 생일 선물로 준 덕분이 아닐까 하고, 아전인수(我田引水)로 생각하고 싶다. 어쩌면 이제 학급 아이들이 나이들어서 그 책을 보게되면 담임선생이었던 나를 기억해주지는 않을까?

~ 후기 : 이제 이렇게 글로 써놓고 보니, 새삼 초등학교 3년 시절 K선생님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내가 담임으로서 교편생활의 귀감이 되어주시고 책읽기와 글쓰기에 도움을 주신 선생님, 지금 선생님의 생사도 확인 못하는 못난 제자이지만, 선생님 덕분에 그나마 대과없이 교직생활을 잘 마치게 된 것 같습니다. K선생님께 사이버 공간이나마 넙쭉 큰 절 올립니다. ( 참고 : 이 글은 몇달 전에 써둔 글임)

편집 : 김태평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허익배 객원편집위원  21hi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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