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칼 헤르만 부세(Carl Hermann Busse)의 시 <저 산 너머 : Over the mountains>를 모티브로 시중에 떠도는 행복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모아 재구성하였다. 사람간의 거리가 문제되어 가는 삭막?한 세태 속에서 진정한 행복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행복은 어디에 - 여기에

도시라기엔 조금 촌 냄새가 짙고, 촌이라기엔 다소 도회지 규모인 그런 고장에 있었던 이야기다. 해는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하루가 저물어 갔다. 산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마을을 거의 덮어오는 석양 무렵에 이 고장에서 평생 살아온 노회한 신사가 집을 나섰다. 그는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늘 걷던 길로 산책을 나선 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혼자 걷는 길이라 심신과 영혼까지도 자유로운 것 같았다. 한가로이 걷는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면서.

▲ 출처 : 한겨레. 시골길을 걷는 노신사. 나무도 들역도 노신사도 물들어 가는구나! 곱게 물들고 영글면 피할 수 없는 그 길을 가야하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꽃이 피나 꽃이 지나 그는 일기를 가리지 않고 365일 주야장천 그만의 길을 걸었다. 그에게 길을 걷는다는 것은 숨 쉬는 것과 같았고, 삶과 생명을 진하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또한 산책하는 시간이 그에게는 하루를 시작하기도 끝내기도 하였다. 꾸밈 없는 그 모습 그대로였고 멈춤도 감춤도 없었다. 이 시간의 사색을 통해 타인들과의 수다와 책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숨 쉬는 것조차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사시사철 변화하는 자연만물들에서 그런 강한 힘이 어디서 오는지 신비스러웠다. 그들의 강한 생명력을 보고 있노라면 덩달아 생동하는 자신을 느꼈다. 그런 와중에 듬성듬성 생각나는 것은 행복이란 무엇인가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의 날이 멈추기 전에, 삶이 끝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행복의 의미를 표현하고 싶었다. 나름대로의 결과를 내놓으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오늘도 평소처럼 집을 나섰고, 동네 어귀를 지나 간이역 방향으로 걸었다. 요즘엔 늘어난 승용차로 인해 여객이 없어 멈추는 기차가 거의 없는 한적한 역이었다. 하지만 연배가 드신 어른들에겐 추억이 가득한 곳이기도 했다. 간이역으로 가는 길 양쪽에는 잘 자란 가로수가 즐비하였다. 가로수들은 하늘보다 더 높이 올라갈 심량으로 쭉쭉 뻗고 있었다. 노신사는 중얼거렸다.

“나무들은 참으로 경이로워~”

흐르는 뭉게구름을 보면서 불어오는 향긋한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니 한결 심신이 가뿐해졌다.

“이게 행복일까? 행복인지 모르겠으나 참 편안하구나! 그렇지만 이게 행복이라기엔 좀 부족하지?" 라고 독백했다.

그리고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행복이라는 화두가 꼬리에 꼬리를 물기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느 곳으로 가야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질까? 행복을 찾고 원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만, 찾았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까? 무엇 때문일까? 사람들은 왜 행복을 그렇게 원하고 누리고 싶어 할까? 도대체 행복이 무엇 이간데...”

끝없는 질문과 답이 노신사의 뇌리를 스쳐간다. 그러던 중 저만치에서 승용차 한 대가 간이역을 향해 서서히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자동차는 텅 빈 역 광장으로 들어서더니 조심스럽게 주차했다. 노신사는 별 바쁜 일도 없기에 그 모습을 주시하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주차한 차에서 사람이 내리지 않는다. '어~ 이상하다 ~’ 라고 생각중인데, 기적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이젠 사람이 내리겠지’ 했는데, 그때도 기미가 없었다.

잠시 후 기차가 기적소리와 함께 플랫 홈에 도착했고, 몇몇 사람들이 하차하는 모습이 보였다. 종종걸음으로 개찰구를 나오는 한 신사가 눈에 띄었다. 역 광장으로 나온 그는 광장 좌우를 두리번거리더니, 좌측 광장 한편에 주차된 차를 발견하고는 만면에 웃음이 가득해졌다. 황급한 발걸음으로 자동차 운전석 쪽으로 다가간 그는 살며시 차문을 노크한다.

▲ 출처 : 한겨레. 한적한 시골 간이역. 전성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찾는 이가 없으니. 그래도 좋다.

“똑똑~ ” 그러자 자동차 문이 스르륵 열렸다. 운전석에는 미소 가득한 아름다운 여인이 아기를 안은 채 수유 중이었다. 머리를 가지런히 뒤로 묶은 여인은 연분홍색 옷을 입고 있었다. 정겨운 눈웃음으로 인사를 나누는 신사와 여인은 지극히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신사가 여인의 이마에 따뜻한 입맞춤을 하자 여인은 살포시 웃었다. 신사는 한 손으로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많이 컸구나! 우리 아가~” 라고 중얼거렸다. 여인이 따라 말하기를

“그렇죠? 당신 며칠만인가요?”

“음 ~ 일주일만이지? 그대가 수고 많았구려.” 말하면서 여인의 손을 잡고 한참동안 서로를 응시하며 눈으로 사랑을 나누는 듯 했다. 신사는 반대 쪽 조수석으로 가서 앉더니

“수유가 끝났으면 아기를 나에게 주구려.” 하자, 여인은 아기를 신사에게 살며시 넘겼다. 아기는 세상모르고 고요히 자고 있었다.

“운전은 제가 할게요. 아기를 잘 안으세요.” 그리고 한참 시간이 더 흘렀다. 자동차 문이 닫히더니 스르르 역 광장을 빠져 나갔다. 신사의 품에는 아기가 새록새록 잠자고 있었고, 미소를 뛴 아기엄마가 밝은 얼굴로 운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노회한 신사는 멀어져 가는 자동차를 보며 무릎을 탁! 쳤다.

“아!~ 바로 저거야! 높고 멀리 있는 게 아니었어! 어려운 것도 아니야! 고상하고 높은 것도 아니야! 잘 못 알았어. 행복은 가까이 있었어!” 노신사는 먼 하늘을 쳐다보면서 한참을 서 있었다.

“맞아~ 진리는 멀고 높은 게 아니야. 단순하고 명료한 모습으로 늘 가까이에 있어~ 우리가 어리석을 뿐이지” 라고 되 뇌이면서...

여느 때에는 볼 수 없던 밝은 미소가 노신사의 안면에 가득하였다. 집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이팔청춘이었다.

 

<산 너머 저 산 너머>

칼 헤르만 부세(1872~1918, 독일) 원작

김태평 개편역

산 너머 저 산 너머 저 멀리      

모두들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기에

나 또한 그들을 따라 찾아 갔건만    

아! 난 울면서 울면서 되돌아 왔다네

산 너머 저 산 너머 저 멀리      

모두들 행복이 있다고 말하였건만

여기 있었네 이곳에 있었네

바로 여기에 있었네

 

 

<Over the mountains>

by Carl Hermann Busse

Over the mountains, far the travel

people say, Happiness dwells

Alas, and I went in the crowed of the others

and returned with tear - stained face

Over the mountains, far to travel

people say, Happiness dwells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김태평 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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