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김유경이다. ‘나’는 매순간 변화한다. 그 변화와 상관없이 이름은 여전하다. 누군가 떠올리는 김유경은 ‘지금의 나’가 아니다. 김유경은 시·공간을 달리한 ‘나’들의 저장소다. 그곳에 ‘나’는 있으나 없다. 이름과 실상(實相)은 평소에도 그렇게 어긋난다.

조발성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력이 빠르게 방전된다. 저명한 언어학자이자 교수였지만, 이제 집안에서 화장실도 못 찾는다. 남편과 자식들도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도 여전히 앨리스로 불린다. 지남력(指南力)장애가 심한 앨리스는 앨리스를 떠올릴 수 없다.

조발성(초로기) 알츠하이머는 65세 미만에 발병한다. 만발성(노년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행 속도가 빠르고, 언어기능 저하가 초기에 나타난다. 이성적 동물임을 자부하는 인간에게 뇌기능을 좀먹는 알츠하이머는 소문만으로도 공포를 안긴다.

곁에 있을 거라던 남편은 일을 위해 떠났다. 대입을 포기해 속을 태우게 한 막내딸이 엄마를 지킨다. 연극대본을 들려준 딸의 물음에 “사랑”이라고 답하는 앨리스는 평온하다. 그 평온함이 천진스러워 눈물이 난다. 곱게 늙은 아이 얼굴이다.

나이 고하를 떠나 치매에 걸릴까 걱정한다. 벽에 똥칠하는 망령에 들지 않고,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틀 앓고 3일째 죽음)로 끝맺음하기를 누구든 간절히 바란다. 7포 세대마저 낳은 현실에서 자식에게 보험 들었다는 말은 더 이상 할 수 없다.

앨리스는 알츠하이머협회에서 연설했다. 며칠을 끙끙대며 자꾸 날아가는 단어를 낚아 엮은 문장들을 밑줄 그어가며 읽으면서 말했다. “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예전의 나로 남아 있기 위해서 애쓸 뿐입니다.” 그 마음을 헤아린다~~?

『스틸 앨리스』를 쓴 리사 제노바는 신경학 박사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머릿속이 궁금하고, 그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 발품을 팔아 연구하고 집필했다. 너무 고급한 환자여서 위화감이 들지만, 줄리안 무어의 연기는 머릿속 엉클어짐과 다스리려는 안간힘을 잘 전달했다.

최근 두 친구의 어머니가 치매 증세를 보이다 돌아가셨다. 알츠하이머는 유전된다. 채 슬픔이 가시지 않은 친구에게 너도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말해야 하는가. 문득 생노병사를 건너다본다. 진정 무엇을 위해 애쓰며 살아야 하는가.


 

김유경 주주통신원  newcritic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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