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김누리)를 읽고

배부른 돼지가 되겠는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는가? 학창시절 이런 질문을 받으며 성장했다. 왜 생명을 조건으로 선택을 해야 하지? 소크라테스적 사고를 하려면 굶주림이 필요조건이 되어야 하는가? 토론이라도 해보고 선택했으면 좋으련만 이분법적인 질문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자유와 평등을 대립시켜놓고 선택을 요구받았다. 그래서 자유롭게 살려면 불평등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분법적 사고는 성장과 자유를 위해 경쟁과 차별은 불가피하다는 가치관을 내면화시켰다. 그리고 헬조선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경쟁하지 않고도 잘살고, 행복한 나라들이 많다. 정말이다. 몇 해 전에 읽은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가 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 소개된 덴마크가 그랬다. 그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그 나라는 작은 나라니까’라고 굳이 외면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의 헬조선은 당연하다는 듯이.

이번엔 김누리 교수가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에서 우리와 분단조건과 인구규모가 비슷한 독일의 경우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와 비슷한 인구규모를 가진 나라도 행복할 수 있다고 얘기하면 이제 사람들은 어떤 핑계를 대면서 헬조선의 불행을 정당화할까?

먼저 김누리 교수는 우리나라가 정말 ‘민주국가가 맞는가’라는 질문부터 던지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대통령까지 바꾸면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지만, 일상의 민주주의는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가부장제도, 직장에서는 계급제도, 사회에서는 꼰대문화, 학교에서는 교사 아래 학생 ‧ 선배 아래 후배 등등, 우리의 일상은 민주적이지 못하다. 나의 일상이 민주화되지 못했다면 무엇을 민주주의라 하겠는가? 김누리 교수는 이를 ‘민주주의 없는 민주주의’라고 진단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단지 정치 제도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 문제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약자와 공감하고 연대하며, 불의에 분노하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태도—이러한 심성을 내면화”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언제라도 독재의 야만으로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누리 교수는 우리나라가 정치민주화는 이루었지만, 사회민주화, 경제민주화, 문화민주화는 아직 멀었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독일의 68혁명과 같은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68혁명은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추구하였다. 68혁명은 독일 민주주의를 일상으로까지 내면화시켰으며, 당시 세계 많은 나라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군사독재국가였으며 분단국가였던 한국까지는 스며들지 못해 한국은 민주주의가 지체되었다고 보았다.

조교도 총장을 할 수 있는 대학! 기업들의 이사는 50%가 노동자! 참 멋있는 사회이다. 이사장이 교수를 마음대로 해고하고, 기업주가 노동자를 마음대로 해고하는 우리나라와 대비된다. 더욱 놀랄 만한 사실은 50%노동이사제 법안을 발의한 인물이 자유시장경제를 주장하는 보수정당인 자유민주당 원내대표 미슈니크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보수정당을 표방하는 미래통합당과 비교 되지 않은가? 아마 우리나라에서 누가 그런 발의를 했다면, 미래통합당은 바로 ‘빨갱이’로 매도하며 야단법석을 떨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바도 아니다. 21대 국회에서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했지만 아마 50%노동이사제는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김누리 교수는 그래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을 진보와 보수로 구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보수와 수구라고 해야 맞다고 주장한다. 이 또한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지면상으로 표현하는 것이니 이해하기로 하자.

여하튼 우리나라에서도 기득권싸움질이나 하고 있는 정당이 아니라 ‘갑질하는 재벌, 죽어가는 노동자, 세계 최고의 불평등, 세계 최고의 자살률, 살인적 경쟁 교육, 학벌 계급’과 같은 문제들의 해결책을 만들어가는 진정한 진보세력이 국회에 다수 배치되는 그런 세상을 꿈꿔야 하지 않겠는가?

김누리 교수는 독일의 탄탄한 정치구조의 근간을 독일의 ‘비판교육’에서 찾고 있다. 독일 교사들은 “내가 하는 말을 믿지 마라.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 배후를 의심해라. 비판적으로 사유해야 성숙한 민주시민이 된다”라며 비판교육을 중시한다고 한다. 김누리 교수는 ‘주입식 교육은 파시스트 교육의 전형’이며 ‘모든 지배적인 지식은 지배하는 자의 지식’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파울로 프레이리도 『페다고지』에서 같은 주장을 하여 공감하였던 내용이다.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교육이 깊게 성찰해야 할 내용이다.

한국에서 민주화세대로 불리는 86세대들도 주입식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다. 김누리 교수는 그 86세대들이 정치민주화에서는 능했지만, 사회개혁에는 무능했다고 지적한다.

“86세대가 자신들의 도덕적 결단에 의해서, 또 수많은 희생을 통해서 한국 민주주의를 이만큼 진전시킨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보다 왼쪽에 있는 사람들과 경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로 자유롭고 정의롭고 평등한 세계를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과 대결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 민주화운동 주역인 86세대의 상대는 늘 기회주의자들이었고, 부도덕한 권력주의자들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도덕적 우월감에 젖어버렸다. 그들이 진짜 사회적 진보 세력과 이상적인 사회를 설계하기 위한 토론을 하며 경쟁하였더라면 그들이 우월감에 빠져 사회적 무능 혹은 배반으로 나타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김누리 교수는 또한 한국 교육이 경쟁의 올가미를 씌워 자아를 상실케 하고, 인권 의식을 빈곤하게 만들고, 소비주의에 빠져들게 하는 한국 교육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비판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 학교는 늘 학생들을 경쟁시키며 야단치고 벌주면서 열등감을 갖게 하여 자아를 상실케 한다는 것이다.

자아가 없으니 어떻게 되겠는가? 권위에 쉽게 종속되고, 때로는 스스로 종속되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김누리 교수는 그것을 ‘소외’라고 하였다. 자아를 상실한 채, 종교에 종속되고 돈에 종속되어가는 것이다. 인간은 신을 만들고, 돈을 만들어놓고는 되레 신과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다.

김누리 교수는 독일 통일 과정을 지켜보며 한국에서의 통일에 대한 냉철한 판단도 내리고 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흡수시킬 꿈만 꾼다면 서로를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며, 평화 정착이 우선이라고 한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는 일상 언어를 사용하여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체이다. 우리 현실을 독일과 비교하며 현상 속에 감추어진 본질을 짚어가는 성찰도 좋았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서는 너무 이상주의적인 비판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론에 묶여 산다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조금은 현실과 거리가 멀더라도 본질을 짚고 넘어가야 제대로 된 개혁, 미래에 희망을 걸 수 있는 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 노력에 따라서는 이상이 아니라 내일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이미 독일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우리라고 그렇게 못하라는 법은 없을 것이니까 말이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한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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