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다가 독일의 식물학자 뤼디거 내프(Ruediger Knapp)를 만났다. 문득 그가 쓴 논문을 읽고 싶었다. 독일어는 이해부득이니 영어로 쓴 책이 있을까 싶어서 아마존 사이트를 검색했다. 영어로 된 글이 있어서 신청했다. ‘하와이 제도의 식생’이라는 제목의 글로 본래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분야는 아니었지만 내프의 글이라 주문을 했다.

도착한 글은 하와이 식물원협회의 뉴스레터로 발행된 것이고, 번역자가 있는 영어본이다. 그런데 그것은 봉투를 열어 보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우편물로 받았을 때에는 ‘접지 마시오’가 쓰인 딱딱한 판지와 같은 것이어서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놀라운 것은 주소 공간만 빼놓고 전면을 도배한 우표였다. 한때 우표를 수집했었기 때문에 편지 봉투에 붙은 우표는 내용과는 별개로 또 다른 기쁨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편지를 붙일 때면 가급적 우표를 한두 장이라도 붙여서 보낸다. 누군가에게 또 하나의 작은 즐거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우체국에 들러서 좀 한가하다 싶으면 직원에게 혹시 기념우표 남은 것 있어요 하고 묻는다. 언제 사용할지 모르지만 우편을 이용하는 경우에 사용할 요량으로 구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A4 용지 만한 봉투에 가득 붙은 우표라니, 모두 52장을 붙였다. 책을 내게 판 사람은 아마도 개인 사업자인 것 같았다. 그 많은 우표를 한장 한장 정성스레 붙였고, 얇은 책도 예쁘게 포장을 해서 봉투에 넣은 것을 보니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기는 듯 싶기도 했다. 따뜻한 마음이 전해진다. 작은 책은 1975년 겨울에 발행한 것이고, 봉투에 붙인 우표는 연도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꽤 오래전에 발행된 것으로 생각된다.

우표 첫 줄을 보면 1845년에 연방에 들어 온 텍사스, 1846년에 연방의 일원이 된 아이오와 풍경과 아스터, 아네모네, 크로커스, 노랑 바람꽃, 국화가 있어서 눈을 즐겁게 한다. 그리고 우드로 윌슨 대통령, 2차 대전시 징집을 위해 발행한 엉클 샘, 조지 하라스 미식 축구 선수, 미국 풋볼 코치인 팝 워너, 시인 스티븐 베네이, 극작가 손턴 와일더, 마가렛 미첨의 책<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다리, 그랜드 캐년 국립공원, 1929년의 주식시장의 붕괴, 전후 복구 사업 계획인 마샬플랜을 기념한 우표,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사진 화보집 LIFE 우표는 아쉬운 기억을 더듬게 한다.

우표 하나는 익숙한 그림인데 인물 이름이 영 떠 오르질 않는다. 4번 줄 가운데, 그러니까 1924년 노트르담 대학의 미식축구 선수인 4기수 우표 사이에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즐거움이 남아 있게 되는 셈이다.

우표는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서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 설혹 우표를 모으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이런 우표가 다 있네 하는 가벼운 즐거움도 준다. 편의만 생각하고 기계에서 배출하는 요금표만 덜렁 붙여서 온 편지와는 사뭇 다르다. 코로나 19로 인한 비대면의 세상이라도 이런 우편물을 받을 수 있다면, 세상은 생각하는 것만큼 삭막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표가 이어주는 이것은 이 시대에 살면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작지만 큰 방법이라 생각한다.

우표를 4등분 해보았다.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큰 크기로 자세히 볼 수 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박봉우 주주통신원  pakbw@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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