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기간 단축을 종용한 서울시의 예술계 갑질 논란

▲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서울마루에 있던 작품 '환생'이 작가와 소속 에이전시 대표와 협의 없이 강제로 해체 되고 있다

미술작가는 보통 전시관을 통해 작품을 전시한다. 서로 계약기간 합의하에 전시를 하고, 기간이 다 되면 전시를 끝내고 작품을 옮기게 된다.

그러나 지난 10월 13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이하 전시관) 위에 전시돼 있던 첨성대 모양의 한원석 작가작품 <환생>이 작가와 작가가 소속된 에이전시 플레인컴 관계자 아무도 모르게 해체되어 옮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우연히 그 옆을 지나가던 강동훈 대표(플레인컴)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전시관으로 달려갔다. 경찰관이 두 차례나 출동한 후에야 작품의 강제이동을 멈췄고, 현재까지 작품은 시민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 한복판에 놓이는 신세가 되었다.

▲ 협의 없이 해체되면서 길 한복판에 놓인 작품 '환생'

강동훈 대표는 “21세기 대한민국 서울의 중심 중에 중심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일이다”라며 “전시관과 전시관을 총 관리 하는 서울시와 작품 철수장소와 방법에 대한 협의를 해왔고 10월 12일에도 서로 대화를 오가며 마무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라며 “겉으로는 안심시키든 협의를 하는 척 하면서 뒤통수를 쳤다”라고 말했다. 경찰관의 중재로 만난 류운옥 전시관 국장은 작품을 어디로 이동하려고 했느냐는 질문에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답변하기엔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며 답을 회피했다.

▲ 전시관의 류운옥 국장(왼)과 강동훈 대표(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사실 이번 일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불과 두 달 전에 강동훈 대표는 한원석 작가의 대리인으로서 전시관측과 서울시를 상대로 억울함을 호소한 바가 있다. 한 달 정도가 지난 9월초가 되어서야 서울시는 협상을 제안하였고, 강 대표와 한 작가는 그들을 믿고 여태까지 기다리며 계속해서 협의를 하는 중에 있었다. 그러나 소위 말해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도대체 이들은 어떤 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그 호소문을 살펴보자.

강 대표는 전시관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건축가협회와 올해 1월 3일 ‘미술작품 전시 및 기증을 위한 협약서’를 체결하였다. 호소문의 골자는 협약서 내용과 다르게 서울시의 담당 공무원들은 건축가협회에 여러 가지 지시를 하였고, 그 결과 한 작가와 에이전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20톤 무게의 설치미술 ‘환생’을 전시하면서 정산이 안 되어 정신적, 금전적으로 많이 힘든 상태였다.

호소문의 내용을 2가지로 축소해보았다.

1. 애초에 전시관과 협약할 당시 작품 ‘환생’에 대한 영구 전시를 기반으로 ‘미술작품 전시 및 기증을 위한 협약서’를 작성 하였고, 추가 협의를 통해 조정하였으나 결국 백지화

2. 6개월 전시를 보장한 것과 다른 전시기간 축소를 지시한 서울시(도시건축센터 정영래 주무관, 박경선 팀장, 도시공간개선 업무총괄 최원석 과장)와 전시관(2년간 위탁사업을 맡은 건축가협회 류운옥 국장, 박제유 관장)

첫 번째로, 애초 협약을 맺을 때 전시관측과 작가 쪽은 영구 전시 기증을 기반으로 협약서를 맺었다. 그러나 담당했던 정영래 주무관은 8월 14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작품 ‘환생’이 서 있는 공간 서울마루는 “시민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공간으로 영구 설치작품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애초 전시관과 작가 쪽 그리고 서울시 쪽의 생각은 엄연히 달랐던 것이고 협약은 이루어질 수 없는 부분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협약서를 처음부터 보지 않았다면 위탁을 준 당사자로서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고, 나중에 봤을 때라도 문제제기를 하여 다른 방식으로 협의할 수 있지 않았을까?

두 번째로, 협약서에는 6개월 전시가 보장되었지만 서울시는 전시 준비를 진행하고 있던 작가와 에이전시 측에 반해 전시 오픈을 미루며 급기야 전시 기간을 축소하기에 이른다. 급기야 2월 말에 전시관 류운옥 국장은 “재계약 문제가 있어 서울시의 요청을 거절하기 힘들다”며 “부득이하게 전시 기간을 2개월로 줄여 달라”고 작가와 에이전시에게 전했다.

한원석 작가는 본인의 작품을 70년간 덕수궁과 성공회 성당을 가렸던 일제건물을 없애고 만든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의 역사적인 장소에 전시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처음부터 영구 전시를 기반으로 협약서를 작성하였다. 전시준비 과정에서 본인의 돈을 더 써가면서 전시를 준비했던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4월 14일 전시관측은 “기간을 줄이는 대신 협약서에 있는 설치비용을 제외한 보수비용을 충당해주겠다”는 제안을 하였고 작가 측에서는 원만히 해결하고자 수락하였다. 그러나 전시관측은 로펌을 통해 작품 설치 이후 한참 뒤인 7월 17일 한 작가에게 협약서와 그동안의 협의는 깡그리 무시한 내용증명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설치비용을 전시관 측과 계약했던 시공사는 이후 발생한 금액을 전시관 측과 서울시로부터 받으려 하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통에 한 작가와 에이전시는 줘야 할 금액을 주지 못한 채무자 신세가 된 것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 전시 기간만 줄이고 그들이 제안했던 보수비용은 없는 사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취재 거부하고, 회피하는 서울시‧전시관 관계자들

이에 대한 입장 표명을 듣기 위해 당시 전시관 담당자 류운옥 국장과 박제유 관장에게 수차례 연락을 취해봤지만 일주일이 넘도록 연락이 닿지 않았다. 왜 이렇게 연락을 회피하는 걸까? 마찬가지로 서울시 담당 공무원인 정영래 주무관과 박경선 팀장과의 통화를 하기 까지도 굉장히 힘들었다. 사무실로 전화하면 미팅을 갔다고 하고 퇴근시간 이후로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뺑뺑이를 돌린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 같았다.

8월 14일 ‘연락이 계속 안 되면 한쪽 얘기만 듣고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는 통보성 문자를 남기고서야 정영래 주무관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30여 분 간의 통화 내내 전시관 측에 물어보라는 회피성 답변으로 일관하였다. 본인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지 Yes or No 중에 어느 것 하나 고르지를 못했다. “이럴 거면 제가 주무관님과 통화를 왜 하는 건가요? 며칠 좀 더 고민해보시고 제가 다시 전화를 드릴테니 답변 좀 잘해주세요”라고 끊은 이후로는 연락두절이 되었다.

다행히 서울시청 언론과를 통해 박경선 팀장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정영래 주무관과 연락두절이 된지 10일 정도가 흐른 뒤였다. 도시공간개선단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최원석 과장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8월 24일 박경선 팀장은 그래도 정영래 주무관 보다는 솔직한 답변을 해주었다. 그런데 그 답변이 너무 당당하게 솔직해서 놀라웠다. 전시관과 작가에 대한 엄연한 갑질 즉 직권남용과 공공미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음을 시인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아래는 박 팀장과의 일문일답이다.

Q 우선 이번 사안에 대해 질문하기에 앞서 왜 이렇게 통화하기가 힘들었던 건지?

일부러 피한 것 맞다. 저희도 양쪽 주장이 계약서상이 아니라 구두로 주장하고 있어서 판단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 전시관 쪽에 사실 확인을 하는 중이긴 하다. 자꾸 말이 말을 낳아서

말을 안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서울시청)코로나 때매 격리되면서도 계속 이 사안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답답한 부분이 있다. 휴가도 가긴 했고.

Q 전시를 일찍 끝내달라고 전시관 측에 요청한 것이 사실인지?

서울마루 옥상 자체가 오픈 스페이스로 나둬야 하는 공간인데 작품이 너무 크고, 무거웠다. 그걸 처음엔 몰랐다. 구조 검토서가 앵커를 많이 박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다시 하중 검토를 요청. 몇 차례 검토를 받았고, 한원석 작가쪽이 서울시에 불만을 토로했고, 전시관 측에도 얘기를 했다고 전달 받긴 했다. 성공회성당 쪽에서도 불만이 있었고, 위험해 보인다는 민원도 있었고, 건축 전문가들도 인스타, 페이스북에 나쁜 평을 많이 남겨서 작품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는지 유도해 봐달라고 전시관측에 요청하긴 했다. 대신 다른 전시관측에서 다른 전시 공간을 알아봐주기로 했고 작가 쪽도 일부 동의하면서 진행했는데 명확하게 뭐 때문에 이렇게 된 건지는 말씀 안 드릴게요. 그게 틀어지면서 기존의 일정대로 전시가 가게 됐다.

Q 민원이 들어오면 빨리 전시를 끝내는 지침이 있는지?

협약에 따르면 그런 관련 조항은 있다. 민원이 들어온다고 강제로 기간 단축을 하는 건 상식적으로 맞지 않지만 협의를 부탁하는 정도로 말은 할 수 있지 않나.

‘환생’ 작품에 대한 첫 기사 <일방적인 흉물 논란, 이제 그만: http://omn.kr/1o6gt>를 쓰며 두 달 전에 인터뷰 했던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당시에는 분명 “전시공간을 위탁으로 건축가협회가 운영. 전시기획도 전시관 측에서 제안하였고, 전시에 대한 관여 정도는 그쪽이 계획해 온 것이 하중이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서 구조적인 검토를 받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줘서 중복해서 한 번 더 체크를 했던 것이 있다”며 작품 전시 기획에 대해서는 관여 정도가 거의 없는 것으로 선을 그었다.

박 팀장의 답변을 듣고도 전시 기간에 대한 단축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있었다. 전시 오픈은 6월이었다. 그렇다면 민원이든 작품에 대한 여론은 6월부터 들은 것일 텐데 왜 2월부터 전시 기간 단축에 대해 서울시는 전시관에 요청하였던 것인가?

비 새는 전시관의 부실공사 의혹

▲ 8월 11일 비가 새는 전시관 실내에 전시된 한원석 작가의 작품 <악의 꽃> 비 피해가 우려되어 포장을 한 상태이다. 7만 3천여개의 담배 꽁초로 만든 이 작품은 쓰레기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내포하는 작가의 초상화이다. <환생> 역시 버려진 자동차 헤드라이트로 만들어 새로운 가치로서 태어나게 했다.

문득 8월 11일 전시관에 비가 샜던 일이 기억이 났다. 전시관측은 비가 새는 반은 두고 반만 전시를 하면 어떻겠냐는 황당한 제안을 작가 측에 내놓았다. 당시에는 ‘그냥 비가 많이 와서 비가 좀 샜나보다. 그런데 일반 가정집도 아니고 전시관에 비가 새다니 좀 그러네?’ 하는 정도로 넘겼다. 강 대표에게 전에 전시관에 비가 새는 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 작품 위 천장에 아슬아슬하게 빗물이 고여있다. 작품 <관음(觀音)3>은 2015년 파리에서 선보인후 국내에서는 처음이다. 실 전화기 넘어로 느껴지는 떨림에 착안하여 20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친구에게 보내는 선물같은 작품. 당시 아침 오후 두 번씩 빗물을 빼면서 전시를 해야했다

강 대표는 “있다”고 답했다. 지난 2월 5일에 정영래 주무관은 구조 검토를 이유로 작품 설치를 중단하였고, 강 대표는 2월 11일 직접 정영래 주무관을 찾아갔다. “당시 정영래 주무관은 나를 설득했다”며 “건축물이 부실공사라 무너질게 걱정이다. 구조검토는 이론적인 것인데 설계와 시공이 달라 우려가 크다. 강 대표님도 다시 생각해 보시라. 전시를 진행했다가 무너지면 큰일 아닌가”라며 “환생 전시를 포기하게끔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강 대표는 정영래 주무관을 만난 다음날 주무관에게 메일을 보낸 기록이 있다면 당시를 또렷이 회상했다.

그렇다면 정말 부실공사가 염려되어 전시를 막으려고 한 것일까? 이에 대해 전시관 설계를 담당했던 조경찬 건축가 사무실에 연락하여 직원에게 연락을 부탁하고, 직접 연락을 하고 문자도 남겼지만 관련해서 통화를 할 수 없었다. 

구두 계약 만연한 미술계, 갑중의 갑은 지자체 공무원?

올해 미디어아트협회를 만든 김창겸 이사장은 “이번 경우는 한원석 작가가 에이전시에 소속돼 있어서 협약서라도 썼지만 보통 작가들은 계약서 자체를 쓰지 않고, 구두계약이 빈번하다”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모든 책임을 작가에게 지우는 현실이 한국의 미술계에 만연한 실정”이라며 “비디오아트 예술가 3세로서 평생을 저도 많이 당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도를 찾다가 결국 최소한의 예술가의 권리를 찾고자 협회를 만들게 되었다“고 전했다.

한원석 작가는 “그동안 작가 생활을 하며 큰 갤러리의 관장들이 직급이 높지 않은 공무원들에게 소위 말해 굽신 거리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며 “그때는 왜 그러는지 이유를 잘 몰랐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들의 무소불위 권력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고 씁쓸해했다. ”기성작가인 나도 이렇게 힘든데 아마추어 작가들은 지금도 얼마나 많은 갑질을 당하면서 활동을 할지 나라도 소리를 내고 싶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청한 문화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예산을 쥐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지자체) 공무원들은 예술작업의 몰이해로 말미암아 예술가가 만든 작품에 대하여 목적성에 맞게 변형을 요구하거나 본인들의 취향이나 입맛을 지나치게 언급하여 작가가 의도한 원래의 작품과는 동떨어진 작업의 결과를 낳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전했다.

앞으로 서울시와 전시관 그리고 작가와 에이전시 측은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지, 그들의 행보가 또 앞으로 다른 작가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전시 기간을 단축하게 한 이유가 정말 작품에 대한 민원들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부실공사가 드러날까 염려되어 그런 것인지, 비가 샌 곳을 보수 공사는 했는지 밝혀주길 바란다. 

*지자체 또는 전시관으로부터 갑질을 당한 예술가들의 제보 바랍니다.

편집 : 김태평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이향림  dlgidfla20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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