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떠올리다

오랜만에 책을 샀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먼저 읽은 어떤 이가 꼭 읽어보라고 권했다. 밥 먹으면서 텔레비전 보면서 술 마시면서 흔히 말하고 듣는 차별을 이야기로 엮은 터라 내가 뱉은 말과 행동에 자연스럽게 빗대어 본다. 지은이는 여성이나 결혼이주여성,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자를 보기로 많이 들었는데. 나는 아버지가 떠오르고 노동자로 평생 살아갈 내 딸과 아들 조카들이 생각났다.

내가 노동자라서 (노동자들이) 선량하다고 믿는(믿었던) 내가 나도 모르게 노동자한테 차별하는 말이나 모습은 없었을까. 내가 쓰지 않았더라도 내 둘레에 노동자를 차별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진 않았는지, 찔린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농담에 웃지 않는 것만이라도 그런 행동이 괜찮지 않다는 메시지를 준다고 이 책은 말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노동자가 연봉 1억이 뭐냐? 완전 귀족노조 하는 얘들이지.” 같은 50대로 함께 마라톤 하는 사람이 술자리에서 꺼낸 이야기. 전셋값이 4~5억이 넘고 평생 모아도 내 집 가질 일 없는 노동자들한테 공짜로 집을 한 채씩 주면 몰라도, 어떻게 살라고 노동자 연봉 1억 원은 안 된다는 걸까. 작년에 조그마한 기업에 들어간 내 딸은 연봉 3천만 원이 안 된다. 살만한 집이 없다. (노동자들 살 곳이 없는데. 평생 들어가 살 집 구할 길 없는데 어떡해?) 머릿속에서만 맴맴 돌고 대놓고 말은 못 꺼냈다.

이 책이 불러온 잊힌 기억 하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전학 왔다. 아버지 어머니는 시골에 계시고 나만 큰형님 집으로 왔다. 그때 대식구였다. 큰형님, 큰형수님, 작은형님, , 큰형수님 여동생, 조카 둘 7명에다 수시로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어느 날 한 방 모여서 누군가 아버지를 고집 센 촌 노인으로 말하자(또렷이 기억나지 않으나 어린 내가 듣기에 살짝 조롱기가 섞인 말이었지모두들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큰 소리로 따라 웃었다. 시골에 내려가 아버지 볼 때마다 미안했다. 아버지 근력이 떨어질 때마다 가슴이 아려왔다. 그때 웃지 않았더라면. '우리 아버지를 그렇게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는 말은 못 꺼냈어도 그 자리에서 조용히 나왔으면 아버지한테 덜 미안했을 텐데.

 

물고기한테 물이 전부이듯이, 사람한테는 말이 그렇다. 저마다 흘리는 땀방울로 존재하는 노동자들이지만, 땀도 말로 바꿔야 나를 드러낼 수 있다. 차별주의자는 말로 존재를 희롱하고, 땀을 모욕하는 사람들이다.

 

전유(reappropriation) - 적극적으로 스스로 호명하는 단어로 사용하면서 긍정적 의미를 부여해 버리는 전략이다. 대표적인 단어가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퀴어’queer이다. 퀴어는 본래 기괴한이란 뜻으로, 성소수자를 조롱하는 말이었다. ‘기괴하다는 뜻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기괴함을 나쁜 것이 아니라 특별하고 독창적인 것이며 다양성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오히려 자랑스런 특징이라고 선언해 버렸다.”

 

노동자를 조롱하고 희롱하는 말을 바꿔서 오히려 세상을 꼭 틀어쥐는 말 없을까. 내가 불쑥불쑥 내뱉는 말을 톺아본다. 약자를 술자리 안주로 삼는 말은 없나. 넘쳐나는 시간 죽이는 농담 따먹기로 노동자를 불러오는 말은 없는가. ‘웃자고 한 말 죽자 살자 달려들지는 못하더라도 함부로 웃음 내어주지는 않아야지 다짐도 해본다.

한 가지로 찍어 누르는 건 말뿐이 아니다. 학생들한테는 오로지 공부로만 판단하고. 어른은 돈 잘 버는 한 가지 능력만 보고, 여성은 아름다움이란 잣대로만 평가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열반이 있었다.

1학년이 8학급이었는데, 1반과 5반은 우등반, 나머지 6개 반은 취업반이었다. 우리는 돌반이라고 불렀다. 선생님이 들어오는 시간도 달랐고, 보충수업도 1반과 5반은 더 열심히 가르쳤다. 취업반은 우등반이 수업하는 도우미 구실을 했다. 우등반 교실에 형광등이 나가면 취업반 친구들이 와서 갈았다. 2학년 올라가자 이 제도는 없어졌다.

취업반 친구들 마음속에 돌반이란 차별 잔상이 지워졌을지 모르겠다. 진로를 일찍 결정해서 학생 개개인에 걸맞은 진로 지도를 해준다는 명분으로 시작했는데, 우리는 따로 진로에 대해서 상담 받은 적도 없고, (나중에 들었지만) 1학년 때부터 취업하겠다고 마음을 결정한 친구들도 없었다.

이 책에서 말했듯이 (돌반 친구들은) ‘열등한 지위에서 겪어야 하는 모욕과 무시를 피하고자’ 1반과 5반 친구들의 인정을 받거나, 선생님들을 놀라게 할 만한 성취를 이루어야 했을 터이다. ‘불평등한 사회가 주는 삶의 고단함을 고 1때부터 몸에 새긴 것이다. 고등학교 입학 성적 하나만으로 학교에서 들씌운 열등 학생이란 족쇄는 오롯이 개인이 풀어야 했다.

 

학교는 선량한(차별을 몰랐던/차별이 머릿속에 없었던) 나를 차츰차츰 공부가 최고인 성적 차별주의자로 몰아갔다. 고등학교 졸업한 지 39년 만에 내가 차별주의자였음을알려줬다. 생각지도 못했던 생각 불쑥 찾아오게 만들고, 께느른하게 늘어진 몸 팽팽하게 일떠서게 만들어준 책.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김시열 주주통신원  abuk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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