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서초구 경원중 사태를 지켜보며

최근 서초구 반포에 위치한 경원중학교(서초구 잠원동 소재)가 혁신학교 몸살을 앓았다. 2년 전 ‘마을결합 중점학교’로 지정돼 교육적 성과가 컸다. 그에 기초해 경원중학교는 올해 학부모(69.7%)와 교사(80.6%)의 동의를 받아 ‘마을결합 혁신학교’를 교육청에 신청했다.

혁신학교는 교육주체인 교사나 학부모의 50% 이상 동의를 얻으면 신청 자격이 주어진다. 물론 사전에 온라인 설명회를 개최했고 e-알리미를 통해 학부모 대상으로 투표도 진행했다. 마지막 관문인 학교운영위원회도 통과했다. 서울시 교육청은 혁신학교 신청 절차에 이상이 없기에 10월 26일 경원중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했다.

교육청 예산 3,000만원을 지원받던 ‘마을결합 중점학교’에 비해 ‘마을결합 혁신학교’는 최대 7,700만 원까지 더 많은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다. 교육에 좀 더 생기를 불어넣고 아이들 성장을 꾀하고자 시도했던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11월 30일 서울시 교육청 청원게시판엔 경원중 혁신학교 지정을 철회해 달라는 청원이 쇄도했다. 며칠 만에 1만 명이 넘었고 교육감이 답변을 해야 하는 사안이 돼버렸다. 지정 철회를 촉구하는 청원에는 “주민설명회도 공청회도 제대로 없었다” 고 주장했다. 일부 학부모는 혁신학교 지정 철회를 촉구하는 학교 앞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12월 7일엔 300명 가까운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이 가세해 학교후문에서 혁신학교 지정 철회 집회를 강행했다. 저녁 7시부터 자정 무렵까지 무려 5시간에 걸친 항의시위였다. 바이러스 2.5단계 상황에서 서울시는 11월 23일부터 연말까지 ‘천만 시민 긴급 멈춤’을 선포했다. 서울 전역에서 10인 이상 집회도 금지시켰다. 12월 4일엔 서울지방경찰청 역시 10인 이상 신고된 집회에 대해 모두 금지 통고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12월 7일 경원중학교 후문 야간집회는 바이러스 2.5단계가 무색할 정도로 밀집된 집회였다. 거리에 나앉은 사람이나 서 있는 사람이나 시민들 간 2m 거리두기는 지켜지지 않았다. 경원중 후문에 200명이 모여들었고 길 건너편에 100명이 운집한 집회였다. 서초경찰서 경찰관들은 방역수칙 위반이라는 경고 방송만 했을 뿐 해산시키지도 않았다.

12월 4일에 있었던 민주노총 9인 이하 집회 때완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민주노총 집회 참가자를 체포하는 등 당시 경찰권 행사는 매우 적극적이고 강경했다. 경원중학교 주변에는 혁신학교 지정 철회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30개 넘게 펄럭거렸다. 그중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현수막도 등장했다. 학교장 실명을 공개하며 “내로남불 졸속행정, 000(학교장 이름), 나는 너를 죽어서도 잊지 않겠다”, “졸속 밀실행정, 000교장 물러가라” 는 문구가 ‘00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이름으로 내걸렸다.

심지어 경원중 학교장이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이라는 가짜뉴스가 나돌았다. “전교조 해직교사 000, 무자격 낙하산 공모교장 구속 수사하라”고 부르댔다. 한 마디로 전형적인 가짜뉴스였다. 경원중 교장은 전교조 해직교사도 아닐뿐더러 전교조에 아예 가입한 적도 없다. 그저 교장 자격증을 지닌 교육청 장학관 출신 교장일 뿐이다.

부동산 카페나 맘 카페 등에선 ‘집값 하락’이라는 불안 심리를 부추기며 평범한 시민과 학부모들을 흔들어댔다. 어떤 이는 “경원중이 혁신학교로 지정되면 아이들 학력이 저하되고 전교조 빨갱이 선생들이 학교를 장악하면 집값이 떨어진다” 고 선동질을 일삼았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2010년도 조전혁(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전교조 교사 명단을 공개한 사태를 연상시켰다. ‘전교조 교사가 많은 학교는 입시성적이 낮다’ 는 근거 없는 흑색선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집권여당인  조전혁 의원(한나라당)은  법원의 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전교조 교사 명단 공개를  시도했다.  당시 대법원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과 집단적 단결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결하였다.  전교조가 제소한 소송에서  법원은 조전혁 의원에겐 3억 4310만원을 , 그리고 동아닷컴엔 2억  7512만원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다.  (출처 : 한겨레 신문)
2010년 이명박 정부 집권여당인 조전혁 의원(한나라당)은 법원의 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전교조 교사 명단 공개를 시도했다. 당시 대법원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과 집단적 단결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결하였다. 전교조가 제소한 소송에서 법원은 조전혁 의원에겐 3억 4310만원을 , 그리고 동아닷컴엔 2억 7512만원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다. (출처 : 한겨레 신문)

혁신학교 입시성적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나 자료제시도 없이 ‘혁신학교 학력저하’를 운운하는 것은 전형적인 가짜뉴스이다. 그들이 의도하는 저의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혁신학교 학력저하 = 집값 하락’ 이라는 등식을 광범위하게 유포하고 각인시킴으로써 혁신학교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행태이다. 그러나 이는 조작된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까지 혁신학교 관련 논문들이나 연구보고서 어느 곳에서도 혁신학교와 학력저하가 정비례한다는 연구결과는 단 한 편도 없다. 오히려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 혁신학교 교육활동이 일반학교보다 교육만족도가 높다는 연구보고서나 논문은 여럿 있었다. 학교생태계와 교육과정 운영, 그리고 학생자치활동 등 몇 가지 측면에선 혁신학교에 대한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적어도 “혁신학교가 들어서면 학력이 저하된다” 는 주장은 근거가 박약하다 못해 조악하고 천박하다 못해 선동적이기까지 하다.

아마도 혁신학교가 입시성적이 낮을 거라는 생각은 두 가지 이유에서 생겨난 왜곡된 편견임이 분명하다. 하나는 혁신학교가 처음 생길 때 대부분 변두리 낙후된 지역이었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이다 보니 한국 사회 계급 격차가 사교육 격차, 바로 학력 격차를 반증하듯이 그런 예단에서 편견이 조장되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혁신학교 교육과정이 단순 지식을 많이 암기시키는 교육이 아니라 학생 주도형 토론수업과 발표수업, 그리고 체험활동 중심에서 비롯된 오해에서 그러한 편견이 조장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극히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오히려 혁신학교가 자사고, 특목고보다 대학입시에 유리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학입시의 대세가 수시전형이고 수시전형의 대세가 학생부종합전형이기 때문이다.

학생부 종합전형(이하 학종)은 성적만 보는 게 아니라 성적과 함께 학생이 수행한 다양하고 풍성한 활동(탐구보고서, 봉사활동, 독서활동, 동아리활동...)을 중시한다. 당장 고교 시절 획득한 내신점수도 중요하겠지만 그와 함께 대학 입학 후에 학생이 앞으로 수행할 학문적 가능성과 전공 적합성, 그리고 학문에 대한 열정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학입시가 아직은 상대평가인 만큼,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와 혁신학교에서 내신 성적을 받기가 훨씬 유리하다. 더욱이 혁신학교는 여느 학교보다 학생들로 하여금 다양한 탐구활동과 체험활동을 수행하게 한다. 다시 말해 혁신학교에선 어느 정도 공부하면 높은 내신 등급을 받을 수 있고 학종 전형으로 쉽게 세칭 상위권 대학을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이다.

자사고나 특목고로 진학한 학생들은 상대평가인 현실에서 오히려 내신 성적을 잘 받기가 하늘에 별 따기 만큼 어렵다. 다시 말해 현행 대학입시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선발하는 학종 전형으로는 대학 가기가 그만큼 어려운 게 현실이다.

혁신학교는 2009년 최초로 탄생된 진보교육감!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선거공약으로 내건 정책이었다. 최초의 혁신학교는 2009년에 지정된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초등학교이다.

진보교육감의 선거공약인 무상교육과 함께 혁신학교 운동은 들불처럼 서울-광주-전남-강원-전북-충북-충남 등 전국으로 번져갔다. 현재 서울에 230개 가까이 혁신학교가 존재하고 전국적으로 1,800개가 넘는 혁신학교가 있다. 전국 초중고 가운데 15%에 해당한다. 혁신학교로 대표되는 혁신교육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서울시 교육청은 2017년도에 서초구를 혁신교육지구로 지정한 적도 있다. 아이 한 명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듯이 학교와 지역사회 인적 ‧ 물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교육활동과 결합시키려는 의도였다. 이미 구로구에서 마을결합형 혁신교육지구가 성공한 사례를 기반으로 진보교육감이 이를 확산시키려는 시도였다.

혁신학교로 대표되는 혁신교육은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기반으로 꿈과 끼를 최대한 발굴하고 길러내기 위한 학생주도형 교육이 특징이다. 교사가 지식을 주입하며 끌어가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기획하고 참여하며 교육활동을 주도해 나가는 방식이다.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마을결합 혁신학교>를  홍보한 교육청  자료 (출처 : 서울시 교육청)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마을결합 혁신학교>를 홍보한 교육청 자료 (출처 : 서울시 교육청)

따라서 프로젝트 수업은 기본이고 토론과 발표, 관찰과 체험 활동이 중심을 이룰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교육운동이다. 배움의 기초가 지적 호기심과 자발성에 있음을 명심하고 교사는 최대한 학생들의 자발성과 자치활동을 돕고 지원하는 위치에 선다. 진리를 터득해 가는 배움 속에서 아이들은 인간적으로 성장해간다. 학교가 저절로 행복발전소로 변화하는 이유이다.

혁신학교운동 10년을 돌이켜보건대 입시경쟁교육으로 질식된 한국 교육 현실에서 혁신학교는 최적의 대안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혁신학교가 들어서면 학력이 저하된다(?)”는 황당한 사회 인식이다. 이러한 비틀린 인식의 밑바탕에는 왜곡된 이데올로기와 불안 심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이를 부추기는 것이 주류언론들이고 뒷받침하는 게 학벌사회이다.

‘학교를 학교답게’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혁신학교운동을 ‘교육 아닌 것’으로 비난하며 모질게 물어뜯는 실체가 누구일까? 필자는 감히 한국 사회 지배집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야말로 ‘살아 있는 권력’으로 한 번도 역사 속에서 단죄되지 않았다.

‘살아 있는 권력’은 문재인 정부가 아니다. 민주정부의 꼴을 바로 세우기 위해 애쓰는 허약한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매일같이 악다구니와 가짜뉴스를 퍼뜨리며 대중의 이목을 흐리게 하는 집단들이다. 그들이야말로 한국 사회 ‘살아 있는 권력’이자 단 한 번도 정죄된 적이 없는 괴물들이다.

구체적으로 주류 언론들이고 주류언론이 되지 못해 안달하는 새끼 언론들, 그리고 그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립학교를 포함하는 거대한 사교육 자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학교사회 이데올로기를 지배할 뿐 아니라 확대재생산하고 전 국민을 상대로 의식화를 자행한다. 그 강고한 이데올로기 앞에 개별화된 시민, 바로 학부모들은 불안하게 흔들릴 수밖에 없고 내재된 불안의식에 갇힐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서초구 반포 맘카페와 부동산 카페를 중심으로 경원중 혁신학교 지정에 대한 압력이 가해졌다. ‘혁신학교 지정 = 학력저하 = 집값 하락’을 주장하는 일부 이기적인 학부모들에 둘러싸인 채, 학교 관료와 교육청은 12월 7일 밤, 합의문을 발표하면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며칠 뒤 12월 10일 경원중 학교운영위는 ‘혁신학교 지정 철회’를 투표로 결정했다. 학부모의 의견을 다시 충분히 수렴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전과 모순된 비극적인 결과를 자초했다.

혁신학교 신청은 교사나 학부모 두 집단 가운데 어느 하나가 50%를 넘게 동의하면 추진할 수 있다. “혁신학교로 지정되면 집값이 떨어진다” 는 허무맹랑한 흑색선전에 흔들리는 학부모들이 일부 있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학부모 찬성비율이 아무리 낮게 잡아도 30%는 넘었을 것이다. 이미 경원중 전체 교사 62명 가운데 50명(80.6%)이 혁신학교 신청에 찬성했다.

그렇다면 학교장은 혁신학교 신청요건을 충족시킨 만큼, 교육의 중심키를 움켜잡고 학부모들을 설득하면서 견결하게 앞으로 나아갔어야 했다. 그러나 경원중 현실은 ‘혁신학교=집값 하락’이라는 가짜뉴스 앞에 너무도 쉽게 굴복했다. 2018년 이후 2년 동안 ‘혁신학교=집값 하락’ 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혁신학교 지정이 무산된 학교가 2018년 송파구 헬리오 시티 혁신학교 사태, 강서구 하늬중, 강동구 강동고, 서초구 경원중을 포함해 서울에서만 벌써 10번째에 이른다.

‘혁신학교 지정 취소’로 참된 교육의 기반을 박탈당한 해당 학교 교사들과 학생들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는 아예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집값하락’을 앞세워 집단행동을 부추긴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들과 지역주민들, 그리고 교육철학도 없이 부동산 겁박세력에 쉽게 무릎꿇은 채 편한 길을 가기로 결정한 학교관료와 서울시 교육청 관료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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