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검찰 개혁과 역사 의식

요즘 코로나 확산세가 최고조에 이르렀고 공공방역과 공공의료 시스템에도 심각한 위기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경제적 자원이 급감한 가운데, 자원과 행정에 대한 의사 결정방식을 둘러싼 ‘권력 갈등’이 치열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제도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법적 소송으로 ‘권력’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도 검찰개혁을 둘러싼 정당성 문제는 역사적 성찰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처럼 고위공직자가 ‘사적 이해’를 추구하느라 ‘공적 질서’를 교란하는 것은 민주주의 근본 질서를 뒤흔들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개정안이 오랜 진통 속에 통과되었고 윤석렬 검창총장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15일 다시 진행된다. 검찰과 법무부 간의 갈등은 조국 전 장관 이래 해를 넘겨 계속되고 있는데, 최근에 수많은 언론은 “추.윤” 두 사람 간의 갈등을 부각시키고 있다. 친일과 군부독재에 뿌리를 둔 수구 기득권 세력과 보수언론의 “사적 대결 프레임”은 나무만 보게 만들고 숲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조장한다. 검찰개혁의 과제는 법치주의 사회에서 공정성과 절차적 합법성은 마땅히 지켜져야 하지만, 더 넓게 법의 정신과 실질적 민주주의를 포괄하는 역사의식에서 접근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로버트 벨라는 미국 사회에서 ‘시민 민주주의의 보편적 정신’을 국가 정부와 행정 기구가 복종해야 하는 ‘초월적 원리’라고 설명한 바 있는데, 이는 민주주의의 역사적 소명을 시대적 징표 안에서 꿰뚫어 읽고 참여하는 정신을 뜻한다. 이같이 보편적이며 역사적인 정신은 법리적 형식에만 얽매이는 ‘법귀 해석의 문제’에 고착되지 않고, 국가 권력기구의 민주적 집행과 실질적 재편에 관한 거시적이며 구조적인 안목을 우선 요청한다.
 

지난 10일 천주교 평신도 7470명이 참여한 검찰개혁 촉구 선언이 서울 명동 성당 앞에서 발표됐다. ⓒ김수나 기자(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
지난 10일 천주교 평신도 7470명이 참여한 검찰개혁 촉구 선언이 서울 명동 성당 앞에서 발표됐다. ⓒ김수나 기자(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

 

한편, 수많은 종교인이 ‘검찰 개혁’을 외치며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그들이 ‘문빠’라서도 아니고 ‘과거 기억의 고착’으로 패권주의(hegemony)를 지향하기 때문도 결코 아니다. 법조인과 정당인, 언론사와 기자단 역시 사리사욕, 당리당략과 같이 사적이거나 정파적인 이해관계에 종속될 수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종교 지도자와 평신도들은 자기들의 양심과 진리 앞에서 ‘보편적 인권과 공동선’이라는 초월적 가치를 직면하고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로 전진하도록, 개혁을 거부하는 검찰에 죽비를 든 것과 다름없다.

검찰은 그간 정치적, 선택적 기소, 제 식구 감싸기 등 불공정한 관행을 (‘검찰기자단’을 통해) 정당화하며 거세게 저항해 왔는데, 이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시대정신에 역행한다. 우리는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강물에서 검찰 개혁의 역사적 대의를 되새겨 볼 수 있다.

1987년 군사독재 정권은 ‘헌법 준수’를 강조하며 정당성을 내세웠지만 ‘호헌 철폐’를 외치던 민주 시민들의 외침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법으로 새롭게 제정됐다. 또한 국가적 책무성을 방기하고 역사교과서마저도 사적 관심으로 국정화하려 했던 박근혜 정권은 촛불혁명으로 인해 2017년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탄핵됐다. 그런데, 현대사에서 국가 정권은 민주적으로 교체되어 왔어도, 아이러니하게 검찰이 그간 행사해 온 권력기관으로서의 독점적 기득권은 공고하게 유지되어 왔을 뿐 아니라 넘보지 못할 성역처럼 되어 왔다.

법이란 본래 ‘물이 흐르고 지나가는 길’을 뜻한다. 법의 시대적 정신은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향해 과거에서 현재로, 또 미래로 흘러가는 길을 터 주는 역할을 한다. 법은 결코 특정 전문인 집단의 ‘소유물’이 아니며 법의 정신이 역사 안에서 실질적 가치로 구현되어야 민주주의가 실현된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파행에 뿌리를 둔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독점은 오늘날 검찰을 스스로 견제받지 않는 ‘살아 있는 권력’으로 만들었다. 공수처법이 통과되고 검찰개혁의 걸림돌인 윤 총장이 징계되면, 공명정대한 공직 기강의 대의가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의 정치판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이뤄지게 되면, 정치인, 고위공직자, 권력기관의 종사자들은 특권층 의식을 버리고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정치는 올바른 길”(정자정야, 政者正也)이라는 보편적 잣대 앞에서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앞으로 전진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편집자 주] 오세일 신부는 예수회 소속이며 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다

이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도 실린 글이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오세일 신부  han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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