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행 교원평가는 국가주의 교육행정의 낡은 잔재

2020년 7월 9일  교원능력개발평가 유예 및 폐지 촉구 기자회견(출처 : 전교조)충남 부여리조트에서 개최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총회장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과 1인 시위, 전교조 위원장이 교원평가 폐지를 촉구하는 의견서를 전달하는 모습.
2020년 7월 9일 교원능력개발평가 유예 및 폐지 촉구 기자회견(출처 : 전교조)충남 부여리조트에서 개최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총회장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과 1인 시위, 전교조 위원장이 교원평가 폐지를 촉구하는 의견서를 전달하는 모습.

매년 연말이 다가오면 교사 다면평가가 시행된다. 박근혜 정권 말기에 대통령 명령으로 다면평가가 교원승진규정에 명문화된 탓이다. 기존 교원평가는 전체 교사를 수우미양으로 평가하는 근무평정인데 학교장에게 절대적 권한이 주어졌다.

글자 그대로 다면 평가는 동료교사가 다른 교사들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학습지도와 생활지도를 점수화하여 평가 결과를 근무평정과 교사 차등성과금에 반영한다. 학교장의 절대적 권한을 약화시켰다는 진일보한 측면도 있고 동료교사들이 상호 평가에 참여함으로써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했다는 긍정적 측면도 일부 없지 않다.

그러나 현행 교원평가는 학교교육을 ‘시장의 논리’로 포획한 결과물이다. 신자유주의 교육사조가 쓰나미처럼 학교 사회를 점령해 들어가던 시절에 도입되었다. 바로 2000년 김대중 국민의 정부 시절, ‘교원평가’란 단어가 교직사회에 나돌았다. 그리고 이듬해 2001년 차등성과급제도가 극심한 논란 끝에 학교현장에 강제되었다.

2005년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엔 명칭을 ‘교원능력개발평가’로 바꿔 48개교에서 시범운영했다. 학습지도와 생활지도에서 교사의 전문성을 신장시킨다는 그럴싸한 논리였다. 그러나 전교조 등 교사단체의 격렬한 반발 속에 유야무야되었다.

교원능력개발평가(이하 교원평가)가 학교현장에 전면화된 것은 2010년 이명박 정권 시절이다. ‘교원의 전문성 신장’이란 미명 아래 전국 초중고 1만 개가 넘는 모든 학교현장에 획일적인 일제고사와 함께 교원평가를 강제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아예 2011년 <교원 연수에 관한 규정>에 교원평가 관련 조항을 신설하기도 했다.

이후 전교조의 강력한 반발로 학교 간 S급, A급, B급 평가가 2014년도에 사라졌다. 그들 교육 관료들이 보기에도 반(反)교육적인 것은 둘째 치고 객관성과 공정성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똑같은 교사가 똑같이 열심히 교육활동을 했음에도 어느 학교에 적을 두었는가에 따라 등급이 달라진다는 것은 자신들이 보기에도 불합리하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 내 교사 평가는 여전히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아 한편으론 교사들을 유혹하고 또 다른 한편으론 교사의 영혼을 잠식시킨다.

일부 교사들 중엔 교원평가를 옹호하는 이들도 없지 않아 존재한다. 그러나 자신들도 평가를 받는 처지로 전락한 교장, 교감 등 학교관리자들조차 교원평가에 회의적이거나 부정적인 분위기가 역력한 게 우리교육이 처한 현실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엔 황국신민교육의 주체인 교사들을 총독부가 직접 통제했다. 1911년 1차 조선교육령을 제정 공포한 이래 세 번에 걸쳐 자신들이 만든 법을 뜯어고쳐가면서 조선어 교육을 금지시키고 국어 수업을 일본어 수업으로 대체했다. 역사도 조선사가 아니라 일본사로 대체했다. 내선일체를 강요하고 ‘국민(國民) 학교’를 통해 황국(國)신민(民)을 양성했다.

당시 사범학교 입학생들에겐 수업료와 등록금을 면제시켜줬다. 일제강점기 사범학교는 조선의 수재들이 모여들었던 공간이다. 더구나 장차 교원이 될 사범학교 학생들 가운데 우수한 성적을 거둔 30% 관비 사범학교생들에겐 총독이 매달 15원을 하사했다. 그들 우수교원들은 졸업과 동시에 대부분 도회지로 발령이 났다. 대구 사범학교 재학시절, 73등/73명(4학년), 69등/70명(5학년)으로 거의 꼴찌 수준이었던 박정희가 경북 문경 어느 시골 훈도로 발령이 난 것과 달랐다.

당시 15원은 식민지 조선 사회에서 중산층 한 달 생활비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일제 식민 통치에 적극 협력하는 교사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승진시키는 구조를 창출한 것이다. 그들 제국주의 식민당국이 의도한 것은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함이었다.

조선의 독립의지를 원천적으로 꺾어버리고 민족의식을 거세시키려는 집요하고도 교활한 술책이었다. 일제강점기 국가주의 교육행정은 교육을 예속화하고 교사를 통제함으로써 조선 사회를 영구히 식민 상태로 묶어두려는 의도였다. 해방 후 역사청산이 좌절된 현실에서 교육계는 친일 일색이었고 그 흔적은 오늘날 국가주의 교육행정으로 여전히 잔존해 있다.

대학시절 듀이의 ‘민주주의와 교육’을 배우고 ‘교육자치’, ‘학교자치’를 이야기하지만 학교민주주의는 여전히 바닥수준이고 교사회와 학생회의 법적 위상은 매우 낮다. 전라북도 교육청은 선구적으로 자신들이 만든 조례에 근거해 전북도내 초중고 교사회의가 일정 부분 심의기구 역할을 수행하도록 시도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 초중고 교사회의는 자문기구의 성격에도 미치질 못한다. 위상 자체가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그럼에도 교직원회의를 줄기차게 반복한다. 오죽했으면 진보교육감이 들어서면서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를 강조했을까! 이 대목에서 우리교육의 부끄러움을 마주하게 된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 대학에 하나둘씩 생겨난 ‘교수협의회’는 오늘날 권한이 적지 않다. 적어도 비리사학들은 교수협의회를 의식한다. 수원 00대학처럼, 그리고 원주 00대학처럼 깡그리 무시했던 대학들도 없지 않지만 이사장들이 적어도 그들 교수협의회의 존재를 의식한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에서 대학 학과장이나 심지어 단과대 학장조차도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아마도 교수협의회라는 자치기구의 존재, 그런 학교생태계와 관련이 깊다.

그러나 보통교육을 담당하는 초중고 교사회의는 의결기구도 심의기구도 아니다. 그저 학교관리자가 볼 땐 ‘민주적인 학교운영을 하고 있다’는 요식행위를 위한 기구이자 지시와 협조를 요구하는 전달기구에 멈춘다. 오늘날 학교장, 교감들이 수업을 하지 않아도 당연시하는 그 모습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교육자라면 아니, 젊은 시절 교직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교사라면 아이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이들에게 정신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일정 부분 교사로서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글을 쓰는 나부터, 그리고 적지 않은 교사들이 교육노동으로부터 소외된 상태에 놓여 있다. 아이들 만나는 게 힘들고 어렵다. 그리고 수업이 본업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어느 순간 수업 자체가 힘들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런 측면에서 학교사회 민주주의는 참으로 요원하다.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할 학교사회이지만 교장을 정점으로 위계질서에 갇힌 계급사회 같고 상하 수직적인 문화가 강하게 잔존하는 사회 같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교원평가는 별 저항 없이 학교현장에 뿌리를 내리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평가’라는 미명 아래 교육활동에 점수를 매겨 모래알처럼 흩어진 교사들을 통제하고 나아가 교육을 통제하는 행태는 오늘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1964년 대통령 명령으로 <교육공무원 승진 규정>을 처음으로 제정했다. 교직사회가 교감, 교장으로 승진을 욕망하는 공간이 아님에도 일제강점기 시절처럼 점수로 매겨 승진 규정을 공포했다. 그리고 역대 어느 정권보다 가장 많이 승진 규정을 손질했다. 자신들이 만든 교사 승진 규정을 무려 9번이나 뜯어고쳤다. 교육을 정치의 도구로 통제하기 위한 선행조치였다.

두 번째로 많이 개정한 시기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학교 현장을 쓰나미처럼 덮치던 시절이었다. 바로 차등성과금으로 교직사회를 갈가리 분열시켰던 김대중 국민의 정부 시절이다. 과거사 청산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게 울려 퍼졌던 최초의 민주정부 시절이었으니 역설도 그런 지독한 역설이 없었다.

2020학년도 <다면 평가 계획>에는 이렇게 평가 목적을 명시하고 있다.

“1. 공정한 업적 평가(다면 평가)를 통한 교원의 승진 인사 활용 및 개인 성과급 지급 근거 확보.

2. 객관적이고 신뢰성 있는 다면 평가를 통하여 창의적이고 능동적으로 일한 교원의

인센티브 제공 및 전문성 신장 기회 제공.”

“교사인 나는 학생들과 얼마나 친밀하게 지냈는지, 아이들 내면 깊이 들어가 얼마나 긴밀한 관계를 맺었는지, 아이들의 인간적 성장을 위해 얼마나 수업 연구를 하였는지, 아이들의 지적인 발달과 정신적 성숙을 위해 수업설계를 얼마나 반복해서 정교하게 다듬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처한 극심한 입시경쟁교육이라는 모순된 교육 현실을 해체하고 학교를 행복발전소로 만들기 위해 교사인 나는 얼마나 노력했는지, 불의에 저항하고 분노할 줄 아는 정의로운 시민으로 길러내기 위해 교사인 나는 얼마나 노력했는지, 사회적 약자나 타인을 배려하고 그 고통에 공감하려는 능력을 얼마나 길러주었는지...”

끝도 없이 이어지는 교육활동에 대한 단상과 교육의 목적에 대한 성찰은 평가 요소로 전혀 반영되지도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는 학교마다 전국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교사 스스로 한없는 자괴감을 안겨다주고 교육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이런 반(反)교육적인 정책은 책상머리 관료행정이자 국가주의 교육행정의 전형이다. ‘협력과 배려, 자율과 존중’이라는 교육 원리를 파괴하고 ‘경쟁’이라는 그럴듯한 논리로 학교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제도이다. 그런 점에서 교원평가제도는 교육적으로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 할 것이다. 학교장 근무성적평정(약칭 근평)이든 교원평가든 교사의 교육활동을 저해하는 낡은 교육정책은 역사 속으로 하루빨리 사라지는 게 답이다. 교육적폐 중의 적폐이기 때문이다.

2020년 7월 2일  교원능력개발평가 시행 철회를 위한 시위장면(출처 : 전교조)전교조 인천지부  조합원 교사들이 인천교육청 앞에서 <교원평가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장면.
2020년 7월 2일 교원능력개발평가 시행 철회를 위한 시위장면(출처 : 전교조)전교조 인천지부 조합원 교사들이 인천교육청 앞에서 <교원평가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장면.

수십 년 존속했던 학교장의 근무평정이 ‘교사의 전문성과 동기 유발 기능이 미약하다’는 이유로 2010년 이명박 정부는 교원능력개발평가를 전면 시행했다. 천박한 경쟁지표를 학교현장에 들이밀고 교사를 욕보이는 현행 교원평가제도는 하루빨리 박물관 창고로 들어가야 마땅하다.

주당 수업시수, 부장 보직 여부, 담임 여부, 업무의 강도 등 정량평가와 정성평가라는 그럴듯한 평가지표만으로 학교현장을, 학교공동체를 더 이상 흔들어 대서는 안 된다. 가치를 지향하는 교육활동을 꿈꾸는 교사라면 점수를 따서 승진하려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교사가 되기 위한 첫 출발점이자 진정한 교육활동을 위한 첫 발자국이다. 우리의 눈이 위를 향하기보다 학생들을 향할 때 교사로서 자존감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교사는 교수-학습활동과 학생생활교육(‘생활지도’란 말은 교육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을 통해 학생들로부터 부단히 평가받고 인정받는 존재이다. 교육활동 자체가 평가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교사평가는 충분하다. 저 선생님이 친절하고 좋은 선생님인지, 사무적이고 불친절한 교사인지 언행이 불일치한 교사인지, 본받을 만한 점이 있는 선생님인지 아닌지, 학생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선생님인지 사랑하는 시늉만 하는 교사인지, 얼마나 수업연구와 준비를 해오는 분인지 아이들은 학교생활 속에서 느낌으로 알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회에서 통과된 적도 없는, 다시 말해 법적 근거도 불투명한 교원평가제도에 마냥 생각 없이 순응할 일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학교현장을 점수와 성과금 지급 격차를 벌려 천박한 경쟁시스템으로 퇴행시키더니 박근혜 정부 들어선 성과금 지급 격차 비율을 더욱 확대하고 대통령 명령으로 다면평가로 분장질한 현행 교원평가제도를 두둔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인데 어떻게 1년 단위로 교육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올해 바이러스 상황에서 교원평가는 거의 코미디 수준으로 이해된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올해도 교원평가란 잡무더미가 교사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한 개 학교에서 교원평가가 이루어지려면 해당 학교 교사들은 ‛교육활동 소개’ 자료를 만들어서 올려야 한다. 그리고 자기실적평가서, 정량평가서를 제출해야 하고 공개수업을 준비하거나 동료교원 평가체크리스트를 작성하고 능력개발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마지막에 학생 학부모들에게 교원평가를 안내하고 교원평가관리위원회 구성과 관련 업무에 참여를 요구받기도 한다. 학교마다 교원평가업무를 전담하는 교사를 따로 두기도 한다. 모두 교육활동과 무관한 것으로 교사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잡무덩어리들이다.

우리학교 교사는 68명이다. 다면평가자로 선정된 교과대표 7명과 학교장이 추천한 4명을 합해 모두 11명이 전체 교사를 1등부터 67등까지 점수를 매겨 일렬로 세운다. 일선교사에게 잡무와 함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정신적 고충을 떠넘기고 선생님들에게 끝없이 상처만 남기며 폭주하는 교원평가 열차를 이젠 멈춰 세워야 한다. 교육을 교육답게 만들고 학교를 <교육이 가능한 공간>으로 만드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지금 당장 교육 통제를 멈추고 학교자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핀란드는 장학감사제도가 없다. 아예 강제, 의무연수제도가 없다. 모든 연수는 자율에 맡긴다. 그럼에도 스스로 연구하고 연수를 자청하는 교사들로 가득하다. 어느 연구논문을 보면 핀란드 교사의 90% 이상이 스스로 연구하고 연수를 즐긴다고 한다. 핀란드 사회에서 교사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존경심이 매우 높은 것은 교사 자율, 바로 교육 자치에 있다. 얄팍한 교원평가를 통해 교육당국이 교사를 통제하려고 하기보다 교사의 자율성을 극대화하고 존중한 결과이다. 우리 한국의 교사들이 핀란드 교사보다 못할 게 무엇인가!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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