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송건호언론상’ 역사학자 정용욱 서울대 교수

정용욱 서울대 교수는 1980년대부터 현대사 연구자이자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일관된 활동을 통해 ‘청암 송건호 선생의 언론 정신’을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 김봉규 기자 bong@hani.co.kr
정용욱 서울대 교수는 1980년대부터 현대사 연구자이자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일관된 활동을 통해 ‘청암 송건호 선생의 언론 정신’을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 김봉규 기자 bong@hani.co.kr

1979년 ‘10·26’ 11일 앞서 처음 나온
‘해방전후사의 인식’ 초판 구해 읽어
“80년대 사상의 질풍노도시대 길잡이”
‘미군정기’ 사료 발굴·연구에 매진
‘미국의 대한정책과 과도정부 형태’
박사논문 비롯 수많은 미 문서 발굴
한국역사연구회·서울대 민교협 등
‘비판적 지식인’으로 사회참여 앞장

올해 19회를 맞은 ‘송건호언론상’은 현대사 연구가인 정용욱(61)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에게 돌아갔다.

송건호언론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이해동 청암언론문화재단 이사장)는 17일 “사상과 학술의 자유가 억눌리던 시기, 한국현대사를 외면하는 학계 현실을 개탄하며 앞서 연구에 나섰던 송건호 선생은 ‘엄정하게 사실(史實)을 구명(究明)하고 논평을 하는 사학자는 언론인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런 이유로 언론인이나 언론학자만이 아니라 한국현대사 연구가에게도 상을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정 교수는 수상 소감문에서, 신입생 시절인 1979년 ‘10·26’ 직전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인식>(1권·한길사 펴냄)을 통해 청암 선생을 처음 알게 됐다고 회고했다.

“이른바 ‘해전사’로 널리 알려진 시리즈의 첫권에 실린 첫번째 글이 송건호 선생님의 ‘해방의 민족사적 인식’이었습니다. 지금도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의 표지 안쪽에 ‘79년 12월7일 관악에서 샀다’고 써놓은 걸 보니, 금서로 판매가 막히기 이전에 운 좋게 구해서 읽었던 셈입니다. 책의 내용은 지금은 중·고교 교과서에서도 배울 수 있는 역사 상식의 일부가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신입생의 눈에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책이었고 쿵덕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읽어야 할 내용이었습니다.”

‘해전사’ 시리즈는 1권에서는 청암을 비롯해 10명의 필진이 모두 일제와 해방을 경험한 세대였다면, 1985년 나온 2권부터 전후 세대가 필진으로 참여해 89년까지 모두 6권이 나왔다. 그는 “사상적으로 ‘질풍노도의 시대’였던 1980년대 ‘해전사’ 1권의 충격은 나를 포함한 젊은 연구자들에게 현대사 입문서가 됐다”고 고백했다.

정용욱 교수가 서울대 1학생 때부터 지금껏 서재에 소장하고 있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1권 초판의 표지(왼쪽)와 ‘79년 12월 7일 관악에서’ 서명을 써놓은 속지(오른쪽).
정용욱 교수가 서울대 1학생 때부터 지금껏 서재에 소장하고 있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1권 초판의 표지(왼쪽)와 ‘79년 12월 7일 관악에서’ 서명을 써놓은 속지(오른쪽).

정 교수는 서울대에서 학·석사를 거쳐 박사 학위까지 받은 순수 국내파 역사학자다. 1997년부터 6년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를 거쳐 2003년부터 지금껏 모교 교수로 재직 중이고, 1996년 이래 국사편찬위원회 현대사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특히 그는 1996년 박사 논문인 ‘1942~47년 미국의 대한정책과 과도정부형태 구상’을 비롯해 해방 전후사, 특히 ‘미군정기’ 사료 발굴과 연구의 선구자로 꼽힌다.

심사위원회는 “1945년 9월 미군이 38선 이남에 진주하여 실시한 3년간의 군사통치는 한국 사회의 방향과 성격을 정한 중요한 시기로서 이념을 벗어나 사실에 기초한 실증적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었으나 한국전쟁 전후 사료의 폐기·분실·소실과 역량 부족 등으로 제대로 시대를 기록·보존하지 못한 실정이었다”면서 정 교수가 국내외에서 사료 조사와 정리에 많은 공력을 기울였다고 공적을 평가했다.

석·박사 시절부터 그는 국내 문서와 구술자료 수집에 참여했으며, 수차례 미국으로 건너가 문서고를 뒤져 한국 관련 사료를 발굴해냈다. 1992년 하버드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객원연구원으로, 2001~2002년에는 하버드-옌칭연구소 객원교수로 파견돼 미국립문서관을 집중 조사했다. 그 결과, 그는 <주한미국대사관 주간보고서>(JOINT WEEKA), <해방 직후 정치사회사 자료집>, <해방 직후 미국 대한정책사 자료집> 등의 문서 자료집과 구술사 자료집인 <내가 겪은 해방과 분단>, <내가 겪은 민주와 독재> 등을 엮어 낼 수 있었다. 2006년에는 미국립문서관에서 1947년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특사로 방한한 ‘웨더마이어 사절단’이 받은 ‘한국인들이 보낸 편지’ 450여통을 발굴했다. 남한 주둔 미 육군 24군단 정보참모부 군사실에서 편찬한 <주한미군사>를 수년에 걸쳐 분석해 여러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2003년에는 미 하버드대 러몬트도서관 지하서고에서 발굴한 미외교협회의 ‘한반도에 대한 전후구상’ 기록을 바탕으로 완성한 박사 논문을 <해방 전후 미국의 대한정책>으로 출간했다. 또 미국 자료에 대한 비판과 성격 분석을 시도한 본격 사료 연구서인 <미군정 자료 연구>도 펴냈다.

지난 2015년 9월 정용욱 교수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반대하는 역사·역사교육 연구자 1166인 선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한국역사연구회장으로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김봉규 기자 bong@hani.co.kr
지난 2015년 9월 정용욱 교수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반대하는 역사·역사교육 연구자 1166인 선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한국역사연구회장으로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김봉규 기자 bong@hani.co.kr

심사위원회는 또 정 교수를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청암의 삶을 본받아왔다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서울대민주화교수협의회 소속으로 사회 현안에 대한 발언을 해왔고, 현재는 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다. 특히 2015년 9월에는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으로서,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반대하는 역사·역사교육 연구자 선언’과 집필거부 결의를 이끌었다.

올해 들어서는 미국 독립언론의 신화적 인물인 이지 스톤의 <비사 한국전쟁>의 편찬 경위와 미 육군의 <한국전쟁사> 시리즈의 편찬 경위를 함께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정 교수는 “과분한 큰 상을 받은 만큼, 앞으로 청암 선생님의 활동과 사상도 한국 언론사와 지성사라는 보다 너른 맥락에서 살펴보고 싶다”고 다짐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  심창식 편집위원

김경애 편집위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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