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가을임에도 동거문이 오름에는 당잔대, 꽃향유, 벌노랑이, 남오미자 등을 만날 수 있었다
11월 6일 오전, 물매화를 만나기 위하여 동거문이 오름을 찾았다. 그날도 역시 창희 친구의 차를 이용하고 안내를 받으면서 밀양에서 온 배수철 선생과 함께 동거문이 오름을 오를 수 있었다.
동거문이 오름을 가기 위해서는 제주시에서 5.16도로를 향해서 가다 보면 교래리로 빠지는 1112번 도로가 나온다. 그 길을 따라가다 거슨새미 오름 앞에서 우측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백약이 오름을 만날 수 있다. 그 백약이 오름 동쪽 700~8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유난히 봉오리 뾰족하게 솟은 다음 약간 경사가 옆으로 완만하게 뻗은 오름을 볼 수 있다. 그 오름이 생김새가 거미와 같다고 하여 ‘거미 오름’, ‘동거문이 오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창희 친구는 말한다. 영주일보 오름 칼럼에는 세 개의 분화구를 따라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간 오름의 능선 모습이 마치 거미줄을 연상케 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위치한 동거문이 오름은 높이 340m 오름으로 서쪽인 선흘리에 있는 검은 오름과 대비해서 동검은이 오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오름을 오르려면 <높은 오름> 앞에 있는 구좌공원묘지 앞을 지나는 길을 따라가다 작은 포장도로를 이용하여 들어가면 된다. 그런데 우리 일행은 백약이 오름 방향에서 동거문이 오름을 찾아가려면 멀리 돌아야 하기 때문에 백약이 오름 주차장 옆으로 난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찾아들어갔다. 얼마 들어가지 않아서 동거문이 오름 안내판이 나오고 오름을 오르는 길이 나 있었다. 길 건너 맞은쪽에는 높이가 낮은 문석이 오름이 있었지만 시간 때문에 그 오름을 오르는 것은 생략했다. 오늘 우리 일행은 동거문이 오름에서 물매화를 만나기 위해서 왔기 때문이다. 오름을 오르기 시작하여 정상에 이르는 데까지의 길은 많이 가팔랐다. 그렇지만 그 거리가 그렇게 길지 않아서 쉬엄쉬엄 걷는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오름을 오르기 시작하여 한 70m를 가니 오름 길 양 옆 풀밭에 하얗게 피어있는 물매화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여기저기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 다섯 송이 등 여러 개의 꽃들이 다양하게 모여 피어있는 모습이 연신 카메라를 눌러대도록 우리를 유혹했다.
오름 정상을 지나 남쪽 방향으로 내려오다 제주 특유의 묘들이 많이 있는 새끼 오름과 그 밑에는 산담으로 둘러쳐진 묘들이 즐비했다. 저 멀리 바다에는 성산 일출봉이 보이고, 종달리에 있는 지미봉과 바다 건너 우도도 보였다. 요즘 제주도는 제2공항 문제로 도민들은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제2공항 예정지인 대수산봉 서쪽의 넓은 지역도 눈에 들어왔다.
하와이와 같이 관광객이 많이 모이고 땅 면적도 제주의 8배나 되는 지역에도 공항 하나로 운영하는데, 제주와 같이 좁은 땅에 공항 둘을 짓겠다는 것은 참으로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있는 공항이 좁으면 약간 확장하여 쓰면 된다는 용역 결과도 나와 있는데 말이다. 원희룡 제주도정과 개발업자, 해당 지역에 땅을 갖고 있는 일부 주민 등을 중심으로 약 150만 평 정도의 땅을 밀어 활주로와 부대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에 찬성하고 있다. 그런 시설이 들어와서 비행기가 수시로 뜨고 내리면 인근 주역 주민들은 소음공해에 시달리고,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다. 제2공항 예정지에서 가까운 곳에는 유명한 철새도래지 하도리도 있고, 공항 예정지 지하는 ‘숨골’이라 해서 비가 오면 지하수들이 스며 흐르고 저장이 되는 곳들도 다 파괴가 된다. 현재도 제주는 넘쳐나는 관광객들 때문에 쓰레기 문제와 지하수 고갈과 오염, 주변 바다 오염 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 제2공항을 만들면 제주 자연과 환경 파괴는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도 제주가 바둑판처럼 많은 도로들이 동서남북으로 뚫려 차들이 씽씽 달리고 있다. 제주시 지역은 대기오염도 심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개발과 사람들이 몰려들면 머지않은 장래에 제주의 자연과 환경은 걷잡을 수 없이 파괴되어 사람들이 외면하는 지역으로 바뀌지 않을지 크게 걱정이다. 그래서 지난 2월에는 제주에 내려가 제2공항 반대 운동을 하는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분들과 제주도를 일주하면서 마을을 찾아다니면 제2공항 반대 전단지를 돌리면서 제주 제2공항 반대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1월 초에 도의회가 중심이 되어 도민 여론 조사를 하기로 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제주는 잘 보전되어 한국은 물론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세계 자연유산으로 길이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변에 피어있는 들꽃들을 찾아보았다.
물이 있는 곳을 좋아하는 식물로서 매화처럼 생긴 꽃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물매화’가 물기도 별로 없는 동거문이 오름에 그렇게 많이 피어있는 것이 신기했다. 따라비 오름에서도 만날 수 있는 것을 보면 꼭 물이 많아야 하다는 해석은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제주는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기 때문에 오름에도 물매화는 잘 서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복숭아, 매화, 사과 등 장미과 식물들의 꽃잎이 주로 5장인 것처럼 물매화는 장미과는 아니지만 장미과 식물들의 꽃잎 모양을 하고 5장이 둘러 나있다. ‘장미목<물매화과>물매화속’에 속한다고 도감에 적혀있다. 물매화는 단일 종으로 단일 과와 속으로 분류되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꽃인 것이다. 몇 년 전 강원도 평창에서 습기가 많은 물가 가까운 곳에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렇게 물매화에 넋을 잃고 있다가 걸음을 재촉했더니 이번에는 자주색 꽃이 수줍게 피어있는 <당잔대>를 만날 수 있었다. 남이 볼세라 수줍게 고개를 푹 숙이고 종모양의 꽃을 달고 있는 초롱꽃과의 <당잔대>는 우리 일행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런가 하면 국화과 식물인 취나물의 한 종류의 <미역취>와 진한 자주색의 작은 꽃들이 이삭꽃차례로 많이 달려있는 꿀풀과의 <꽃향유>가 유난히 등산로 주변에서 많이 피어 있었다. 그 외에도 제주 오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개쑥부쟁이>, 미나리과의 <기름나물>, 남부 지방의 숲에서 많이 자라는 덩굴식물인 <남오미자> 열매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그 외에 수목으로는 <해송>, <쥐똥나무>, <꾸지뽕나무>, <이대>, <윤노리나무> 등은 말굽형으로 생긴 굼부리 골짜기에서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오름을 내려와 오름 굼부리를 지나 출발했던 안내판이 있는 입구를 향해 걸으며 동거문이 오름의 나무와 풀, 들꽃, 열매 등을 확인하였다. 역시 제주의 중산간과 오름은 어디를 가나 가을을 밝히고 있는 것은 벼과식물로서 은빛 향연의 억새와 누런 새(띠)들이다. 물매화와 당잔대, 꽃향유 등 제주의 가을 들꽃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불과 1~2주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섭섭하였다. 동거문이 오름의 물매화는 내년에 다시 한 번 만날 기약을 하면서 오름을 내려왔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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