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인이 있었다. 운명적인 여인이다. 운명적인 여인과의 만남은 피할 수 없다. 그 여인은 날이면 날마다 찾아오지는 않지만, 반드시 육십 년 마다 한번씩 잊지않고 우리를 찾아온다. 보고 싶다고 불쑥 찾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보고 싶지 않다고 멀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여인은 육십 년 전에도 우리를 찾아왔다. 그 해에 지유당의  3.15부정선거로 나라가 시끄러웠고 기어이 4.19 의거로 이승만은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 여인이 경국지색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그 여인이 찾아올 때마다 사회는 어지럽기 그지없었으며 나라가 기울듯 말듯 풍전등화와도 같은 위기의 상황을 맞이하곤 했다. 그 여인의 이름은 다름 아닌 경자(庚子)였다.

이제 경자(庚子)라는 년(年)은 우리에게 숱한 문제점을 안겨준 채 우리 곁을  떠나갔다.  코로나 19로 인류사회는 혼돈을 거듭했고 검찰개혁을 둘러싼 소위 추-윤 갈등으로 대한민국은 국론이 극도로 분열되었으며 부동산 폭등으로 민심은 사납기 그지없었다. 이런 사태를 겪으면서 세상에서 행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경자년을 보내며 생각해본다.

흔히들 돈과 건강과 가족이 행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라고들 말하지만 세상과 사회를 생각해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어느 소장파 경제학자가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할 무렵 투자전문가그룹의 면접을 봤다고 한다. 면접관들의 질문은 이랬다.

"시장을 좌우하는 두 가지 요소는 무엇인가?"

 경제학자에게는 너무 쉬운 문제가 아닌가. 경제학자는 전문가그룹에게  망설임 없이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거야 수요와 공급이지요."

그 답을 들은 투자전문가그룹은 실망하여 면접을 중단했다. 초보 경제학자는 나중에야 그들이 기대하는 정답이 무엇인지를 알아냈다. 정답은 '탐욕과 두려움'이었다.

주식시장을 지배하는 요소는 투자가들의 마음이고 투자심리는 탐욕이나 두려움에 지배당하기 십상이다.  겉으로는 수요와 공급이 시장을 좌우하는 듯하지만 그 수요와 공급을 움직이는 요소는 따로 있는 것이다. 탐욕이 시장을 지배하는가 아니면 두려움이 시장을 지배하는가에 따라 주식시장은 폭등과 폭락을 거듭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제 세상에서 행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돈과 건강과 가족이라고 답한다면 초보 경제학자가 수요와 공급이라고 답변한 것과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그렇다면 전문가그룹은 무엇이 중요하다고 답할까. 수요와 공급의 이면에 인간의 탐욕과 두려움이 있듯이 돈과 건강과 가족 이면에서 행복을 좌우하는 것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2020, 안녕!…‘거의 모든’ 위로의 기술을 알려드립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976671.html#csidx95d395519f7d3609532a05585324e45
2020, 안녕!…‘거의 모든’ 위로의 기술을 알려드립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976671.html#csidx95d395519f7d3609532a05585324e45

다들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 대한민국 사회에서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단연  갈등과 상처와  불확실성일 것이다. 단군 이래 지금처럼 대한민국의 국격이 높았던 적이 없고, 요즘처럼 경제적으로 풍요한 적도 없지만 사회적  갈등  또한 단군 이래 이처럼  심했던 적이 없으며 진영 간 혹은 계층간에 이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은 적도 없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청년세대에게는 너무도 치명적이어서 결혼과 자녀출산도 미룰 지경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사회에서 우리의 행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바로 관계와 치유 그리고 존중이다. 아무리 돈이 많고 건강하며 가족이 다 잘 풀린다 한들 사회적으로 갈등이 심하여 친척이나 주변 지인들과 관계가 악화된다면, 이유와 명분이 어떠하든 간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것을 당연시여긴다면, 또한 이웃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면 아무리 돈이 많고 건강하며 가족이 번창한들 그를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태주 시인은 인생에 대해 이렇게 읊조렸다.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라는데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 나태주의 시, 그리움

시인의 인생에는 길이 있고 사람이 있으며 일이 있다. 길과 사람과 일에는 내면적인 갈등이 뒤따르기 마련이고 그 갈등을 이어가는 것이 바로 관계이다. 그러니 나태주 시인의 '그리움'은 아마도 내면의 갈등 관계와 치유의 마음을 노래한 것이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은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다 인식하고 있을 터이지만, 이웃이나 지인에게 말 한마디로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은 세심하게 주의하지 않으면 모른다. 흔히 자신이 무심코 입힌 타인의 상처에는 무관심하고 자신이 남에게 입은 상처만 앞세우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거기에 더하여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존중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그 어느 사회보다 밝고 희망찰 것이다. 

2021년 신축년 새해에도 세상이 그리 평화롭지는 않겠지만 이 세 가지를 유념하여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다 . 관계를 악화시키는 자가 되기보다는 관계를 조화롭고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기 위해 애쓰고,  무의식적으로라도 상처를 주는 자가 되기보다는 상처를 치유하는 자가 되고, 타인에게 존중받으려 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타인을 존중하는 자가 되려고 노력한다면, 행복을 최대화하고 불행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신축년 한 해를 잘 살아내면  2022년에는 기어이 평화와 안정을 구가하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