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돌문화공원>에서 만난 다향한 모습의 제주 동자석을 감상하면서

<제주돌문화공원> 제주 동자석 코너를 돌다보면 만날 수 있는 동자석들이다. 개별적으로 모아진 동자석들을 마치 회합을 하는 모양으로 배치해 놓았다. 민머리를 한 동자석들만 모여 있다.
<제주돌문화공원> 제주 동자석 코너를 돌다보면 만날 수 있는 동자석들이다. 개별적으로 모아진 동자석들을 마치 회합을 하는 모양으로 배치해 놓았다. 민머리를 한 동자석들만 모여 있다.

돌을 떠나서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집을 지을 때도 돌을 쌓아서 지었고, 밭의 경계를 표시하고 방목하는 소와 말들이 밭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울타리와 방풍의 구실을 하는 밭담, 죽은 자의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산담, 연자방아, 맷돌, 정낭, 돌하르방 등 제주만의 독특한 전통과 문화를 보여주는 상징물들이다. 특히 그중 하나인 무덤 앞에 세워놓았던 제주 동자석의 독특한 조형미가 보는 이들의 관심을 끈다. 이 동자석을 통하여 당시 제주인들의 삶의 모습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제주돌문화공원>에는 이런 동자석들만 모아놓은 <제주동자석> 코너가 있다. 다양한 형태의 동자석들이 있어 서로 비교하면서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제주돌문화공원>에 가면 지하에 있는 돌 박물관으로 가기 전에 만날 수 있는 '하늘 연못'이다. 둥글고 넓게 조성된 연못에 비치는 주변의 오름 그림자, 저 멀리 보이는 한라산, 억새 등이 물에 잠긴 모습이  환상적이다.
<제주돌문화공원>에 가면 지하에 있는 돌 박물관으로 가기 전에 만날 수 있는 '하늘 연못'이다. 둥글고 넓게 조성된 연못에 비치는 주변의 오름 그림자, 저 멀리 보이는 한라산, 억새 등이 물에 잠긴 모습이 환상적이다.
지하에 있는 돌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동물의 모양, 사람의 모양 등 다양한 형태의 화산암들이 일품인 것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지하에 있는 돌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동물의 모양, 사람의 모양 등 다양한 형태의 화산암들이 일품인 것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지난 11월 6일 밀양에서 제주를 찾은 배 선생과 나는 고향의 창희 친구의 안내를 받으며 돌문화 공원을 찾은 것이다. 창희 친구는 제주 여행을 오는 사람들에게는 <제주돌문화공원>은 꼭 들러보라고 권한다고 하면서 우리를 그곳으로 안내했다.

<제주돌문화공원>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인사말이 있다..
“우리 제주돌문화공원은 문화의 21세기를 맞아 제주생성과 제주인류문화의 뿌리가 되어온 돌문화를 집대성한 역사와 문화의 공간입니다.
제주 섬을 창조한 여신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의 돌에 관한 전설을 주 테마로 3,269,731㎡ (100만 평)의 드넓은 대자연의 대지 위에 총 1,855억 원을 투자하여 2020년까지 장기적으로 지속 조성되는 공원으로 제주돌문화의 면면과 제주민의 생활상 등을 직접 접하고 관람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될 계획입니다. 2006년 6월 3일 개원한 제주돌문화공원은......“

제주에서 수집된 연자방아들이 억새와 어우러져 마치 설치미술품을 보는 것 같다.
제주에서 수집된 연자방아들이 억새와 어우러져 마치 설치미술품을 보는 것 같다.
수집해 놓은 절구통들
수집해 놓은 절구통들

<제주돌문화공원>은 백운철 ‘탐라목석원’ 원장이 1971년 설립해 38년 동안 운영하던 것을 1998년 <제주돌문화박물관>에 사업 계획을 제안하고, 이듬해 협약을 체결하여 2000년에 12,000여 점의 전시물을 기증하면서 오늘날의 <제주돌문화공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11월 6일 오전에 다랑쉬오름 등을 오른 다음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 오후 2시경에 돌문화공원에 입장할 수 있었다. 일반인들은 5,000원, 청소년들은 3,5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65세가 지나면 입장료도 면제다.

<정낭> 삼무도인 제주에는 도둑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집 대문을 따로 만들어 단속하질 않았다. 올레에서 마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와같은 돌기둥에 구멍을 뚫은 것을 세워서 장대로 끼워놓아 간이족 소말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정도였다.
<정낭> 삼무도인 제주에는 도둑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집 대문을 따로 만들어 단속하질 않았다. 올레에서 마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와같은 돌기둥에 구멍을 뚫은 것을 세워서 장대로 끼워놓아 간이족 소말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정도였다.
<디딜팡> 제주에서는 옛날에 돼지들이 사람의 인분을 먹었다. 돼지우리에 이 디딜팡을 놓고 그 위에서 용변을 보았다.
<디딜팡> 제주에서는 옛날에 돼지들이 사람의 인분을 먹었다. 돼지우리에 이 디딜팡을 놓고 그 위에서 용변을 보았다.
무덤가에 세웠던 망주석을 모아놓은 것들이다.
무덤가에 세웠던 망주석을 모아놓은 것들이다.

<제주돌문화공원>은 1~30번까지의 관람코스들을 제1코스(하늘연못, 제주 돌박물관, 두상석 야외전시장, 오백장군 갤러리, 어머니의 방), 제2코스(선사 탐라시대의 돌 문화, 고려시대의 돌문화, 조선시대의 돌문화, 제주의 민간신앙, 제주의 동자석), 제3코스(세거리집/두거리 집, 돌한마을)로 꾸려져 있다. <제주돌문화공원>은 곳곳에 숲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가을에는 억새꽃이 만발하여 ‘돌문화공원’으로서의 가치 못지않게 숲과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어 산책길로서의 기능 또한 그 어떤 휴양림이나 자연 공원 못지않은 곳이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가족들과 함께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고 가서 온종일 여유롭게 둘러보면서 즐기고 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행이 처음 찾은 곳은 넓은 원형 연못을 조성하여 주변의 오름과 멀리 한라산까지 연못에 그림자 지는 풍광이 아름다운 ‘하늘 연못’이다. 다음으로 지하에 있는 돌 박물관을 찾았다. 화산섬 제주 탄생과 관련된 각종 자료들, 자연에서 수집한 기묘한 형상의 돌들이 전시된 곳이다. 이곳을 둘러보고 지상으로 나와서 야외 전시장을 순서에 따라서 둘러보았다. 우리 일행이 찾았던 곳을 다 소개하는 것은 쉽지 않아서 특별히 우리의 눈길을 끌었던 <제주 동자석>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제주돌문화박물관>에 마련되어 있는 가묘. 제주 묘의 형태를 보여주기 위하여 만들어진 묘이다. 산담, 비석, 상석, 동자석 등을 볼 수 있다.
<제주돌문화박물관>에 마련되어 있는 가묘. 제주 묘의 형태를 보여주기 위하여 만들어진 묘이다. 산담, 비석, 상석, 동자석 등을 볼 수 있다.
<방묘> 네모진 묘이다. 방묘는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제주에서도 볼 수 있다. 돌로 네 귀퉁이를 두른 무덤이다.
<방묘> 네모진 묘이다. 방묘는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제주에서도 볼 수 있다. 돌로 네 귀퉁이를 두른 무덤이다.

<제주 동자석>을 이야기하려면 제주의 장묘문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제주를 여행하다 보면 제주도는 다른 지역과 다르게 밭 가운데에 묘가 있기도 하고, 오름 비탈에 많은 묘를 볼 수 있다. 특히 제주는 다른 지역과 달리 묘 주변을 제주에 흔한 화산석인 돌을 이용하여 사각형 모양의 담을 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산(묘)의 담이라 하여 ‘산담’이라 부른다. 보통 산담은 겹담으로 둘러놓았는데, 가끔 외담으로 둘러놓은 곳도 볼 수 있다. 옛날에 산담을 겹담으로 쌓으려면 많은 돌이 필요하고 돌을 쌓는 석공의 품삯도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가세에 따라 산담의 크기가 결정된다.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는 외담을 쌓은 것이다.

전체코스 조감도

                                  <제주돌문화공원> 홈페이지 자료입니다.

- 제1코스(신화의 정원, 1~20)
- 제2코스(제주돌문화전시관, 21~26)
- 제3코스(제주전통돌한마을, 27~30)

산담을 쌓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제주에는 옛날에 소나 말을 방목하였기 때문에 소나 말이 무덤에 들어가서 몸에 붙어있는 진드기 등을 떨어내기 위하여 비비는 경우가 많다. 무덤에 있는 봉분은 소들이 비비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산담을 쌓았다. 그리고 제주는 옛날부터 이른 봄에 산에 불을 놓아 진드기 등 해충을 구제하기도 하지만 불을 놓아야 새로 돋아나는 풀들이 소나 말이 잘 먹기 때문에 산불을 놓았다. 그러다 보면 산불이 다른 곳으로 옮겨 붙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수가 있다. 그럴 때 산담은 산불이 무덤을 태우지 못하게 하는 방화벽 역할을 했던 것이다.

제주에서도 사람이 죽으면 장사를 지낼 때 풍수적으로 좋은 명당을 찾아 묘를 쓰는 풍습은 육지와 다르지 않았다. 지관을 데리고 다니며 좋은 묏자리를 찾아 묘를 쓰는 것이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북 현무(주산), 남 주작(안산), 좌 청룡, 우 백호의 지형을 갖추고 있으면서 장풍득수(藏風得水)할 수 있어 기(氣)가 모이는 곳인데, 실질적으로 이런 지형을 오롯이 갖춘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제주의 묘들이 오름을 등지고 있는 곳이 많은 것은 오름이 묘의 주산이 되고 좌우로 산줄기가 뻗어나간 지형, 그리고 그 앞에 물이 흐르고 그 물 건너 낮은 산이 앞에 버티고 있고 멀리 조산이 있는 아늑한 분지형의 지세를 갖추고 있는 곳이 좋은 곳이다. 그렇지만 제주도 한가운데 높은 한라산이 버티고 있고 사방으로 경사가 급하게 바다 쪽으로 흘러내리고 있어 이런 지세를 갖춘 곳을 찾기는 쉽지 않은 조건이다.

 조선시대 제주도 묘의 석물 배치도

<제주 동자석>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제주의 묘를 살펴보면 묘 앞에 혼유석과 상석이 놓여 있고 묘를 향해서 보았을 때 상석 오른쪽에 묘비를 세워놓았다. 그리고 그 앞에 1~2m 정도의 공간 앞에는 ‘제절돌’이라는 돌을 길게 박아놓아 상계와 하계로 구분하였다. 아래 지역은 좀 낮게 조성하여 하계를 이루게 하였다. 그 하계에 30~100cm 높이의 동자석을 마주보게 세워놓았다.

민머리를 하고 있는 제주 동자석 한 쌍. 현무암을 조각하여 만들어졌다. 눈이 유난히 튀어나온 것이 돌하르방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고, 코는 양각을 하였지만 돌하르방은 벙거지를 쓰고 있는데, 이 동자석은 민머리이다.
민머리를 하고 있는 제주 동자석 한 쌍. 현무암을 조각하여 만들어졌다. 눈이 유난히 튀어나온 것이 돌하르방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고, 코는 양각을 하였지만 돌하르방은 벙거지를 쓰고 있는데, 이 동자석은 민머리이다.
현무암에 조각된 동자석이 마모가 되어 형체가 많이 훼손되었다. 이목구비가 확실하게 구분이 되어 있지 않아 달걀귀신을 보는 듯하다. 코는 떨어져 나갔는지 거의 형체가 없고, 눈은 유난히 왕방울만큼 크게 표현한 것이 흥미롭다.
현무암에 조각된 동자석이 마모가 되어 형체가 많이 훼손되었다. 이목구비가 확실하게 구분이 되어 있지 않아 달걀귀신을 보는 듯하다. 코는 떨어져 나갔는지 거의 형체가 없고, 눈은 유난히 왕방울만큼 크게 표현한 것이 흥미롭다.
옅은 웃음기를 머금은 것 같은 표정이 눈길을 끌고, 귀의 표현이 많이 생략되었다. 손가락 5개가 유난히 눈에 띄게 표현이 되었는데, 엄지와 인지 등 크기 굵기 등 구분이 별로 없는 투박한 손의 모습이 특징이 있다.
옅은 웃음기를 머금은 것 같은 표정이 눈길을 끌고, 귀의 표현이 많이 생략되었다. 손가락 5개가 유난히 눈에 띄게 표현이 되었는데, 엄지와 인지 등 크기 굵기 등 구분이 별로 없는 투박한 손의 모습이 특징이 있다.
눈, 코, 입 등은 분명하게 표현이 되었지만 귀는 보이질 않는다. 앞의 동자석과는 달리 꽃을 받쳐 든 손가락 모양을 좀 더 섬세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눈꼬리를 위쪽으로 치켜뜨고 있고, 비대칭인 점이 특징이다. 그럼으로써 약간 험상궂은 모습을 하여 묘를 잘 기키는 장승과 같은 느낌을 받게 하고 있다.
눈, 코, 입 등은 분명하게 표현이 되었지만 귀는 보이질 않는다. 앞의 동자석과는 달리 꽃을 받쳐 든 손가락 모양을 좀 더 섬세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눈꼬리를 위쪽으로 치켜뜨고 있고, 비대칭인 점이 특징이다. 그럼으로써 약간 험상궂은 모습을 하여 묘를 잘 기키는 장승과 같은 느낌을 받게 하고 있다.
제주 현무암을 매끈하게 잘 다듬어서 전체적으로 양순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편안한 느낌을 주는 여성상이다. 받쳐 든 것이 술잔 같기도 하다. 손가락의 모양을 섬세하게 표현하여 더 안정감을 주고 있다. 매끈하게 돌을 다듬은 것으로 보아 제작년도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제주 현무암을 매끈하게 잘 다듬어서 전체적으로 양순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편안한 느낌을 주는 여성상이다. 받쳐 든 것이 술잔 같기도 하다. 손가락의 모양을 섬세하게 표현하여 더 안정감을 주고 있다. 매끈하게 돌을 다듬은 것으로 보아 제작년도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한 쌍의 동자석이 서로 쌍이 맞는지 밸런스가 맞지 않은 것 같다. 제작년도가 오래되어 보인다. 마모가 심하고 지의류 등이 많이 끼어 있다. 왼쪽이 남자 동자 같은데 여자보다 작게 표현된 것도 특징이다.
한 쌍의 동자석이 서로 쌍이 맞는지 밸런스가 맞지 않은 것 같다. 제작년도가 오래되어 보인다. 마모가 심하고 지의류 등이 많이 끼어 있다. 왼쪽이 남자 동자 같은데 여자보다 작게 표현된 것도 특징이다.

<제주돌물화공원> 홈페이지에는 <제주동자석>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동자석은 평균 신장 1m 이하의 작은 석상을 말한다. 다공 현무암이라는 재질의 특수성과 단순하면서도 영적 분위기를 잘 살린 표현 방법은 제주 동자석만이 갖는 독특한 특징이다. 문인석과는 달리 민머리이거나 머리를 길게 땋은 모양, 쪽진 모양 등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상반신만 표현된 신체와 앞가슴에 촛대, 술병, 술잔, 꽃, 부채, 표주박, 홀 등의 물건들을 두 손 모아 받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죽은 사람을 위한 살아있는 사람들의 지극한 정성의 징표로 보기도 한다. 무덤을 이장할 때 동자석은 보통 그 자리에 묻어 놓는 경우가 많고, 일부는 신당 등에 옮겨져 신앙의 대상이 된다. 동자석에는 무속신앙, 불교 및 유교적인 요소들이 융합되어 제주인들의 심성이 잘 반영되고 있다.”

신랑, 신부가 쪽진 머리모양을 하여  쌍을 이루어 세워진 모습들이다. 코는 양각을 하여 강조한 것들이 특징이고, 안산암에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안산암은 산방산 등에서 채집할 수 있는 화산암의 일종이다.
신랑, 신부가 쪽진 머리모양을 하여 쌍을 이루어 세워진 모습들이다. 코는 양각을 하여 강조한 것들이 특징이고, 안산암에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안산암은 산방산 등에서 채집할 수 있는 화산암의 일종이다.
쪽진 머리에 눈, 코, 입이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고, 눈은 아래를 내려 보는 모습으로 양순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 안산암을 조각하였는데, 지의류가 많이 끼어 있다.
쪽진 머리에 눈, 코, 입이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고, 눈은 아래를 내려 보는 모습으로 양순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 안산암을 조각하였는데, 지의류가 많이 끼어 있다.
현무암에 조각이 되어 있는데, 남성이 여성보다 작게 표현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남자는 왼손을 올려 잡았고, 여자는 오른손을 올려 잡은 것이 다른 동자상과 차이가 있다.
현무암에 조각이 되어 있는데, 남성이 여성보다 작게 표현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남자는 왼손을 올려 잡았고, 여자는 오른손을 올려 잡은 것이 다른 동자상과 차이가 있다.
이 동자상 한 쌍은 다른 동자상보다 좀더 세련되게 조각되어 있고 손모양도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온화하게 미소 짓는 모습이 특징적이다.
이 동자상 한 쌍은 다른 동자상보다 좀더 세련되게 조각되어 있고 손모양도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온화하게 미소 짓는 모습이 특징적이다.

동자석은 17~20세기 중엽까지 세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자석은 망자를 지키는 역할을 하면서, 망자의 심부름을 하는 일종의 시종 역할을 하는 상징의 조형물인 것이다. 동자석들 대부분은 양손을 가슴 앞에 다소곳이 모아서 묘주의 시중을 받들기 위하여 대령하고 있는 모습이다. 동자석은 묘의 좌우 양쪽에 세웠기 때문에 남녀가 한 쌍을 이루어 세워진 것들이 많다. 이것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음과 양, 남녀 합일의 다산과 다복을 바라는 우리 고유의 민간 신앙의 요소들이 깃들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 동자석에 일정한 정형은 없다. 동자석의 형태를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민머리를 하고 있는 어린 아이를 표현하고 있는 것과 신랑, 각시의 혼례 복습의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제주 동자석을 살펴보면 세련미는 없다. 조각을 처음 공부하는 학생들이 자유분방하게 표현한 습작이라고나 할까? 상상력을 발휘하여 창의적으로 표현하였고, 균형미가 없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신체 부위들의 좌우 균형이 맞지 않거나 코나 눈 등 특정부위를 특별히 강조하여 표현된 것들도 있다. 특히 음각을 하여 표현한 눈 모양들을 보면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간 것에서부터 일자형 눈꼬리를 하거나 밑으로 쳐진 눈꼬리를 하는 등 아주 다양한 형태다. 돌하르방과 같이 코는 양각을 한 것들이 많지만 가끔 코나 입도 음각을 한 것들도 있다. 세련되게 조각이 되지 않고 단순하면서도 보면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표정, 신체부위의 표현 등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서민적이며 세련되지 않은 이런 해학적 동자석의 표정들이 보는 이들의 눈길을 끄는 이유다. 당시 제주는 육지와 교류가 힘들었기 때문에 육지에 있는 동자석들과 다른 제주만의 독특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 동자석을 조각했던 석공들은 앞선 동자석들을 모방하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을 담았을 것이다. 이런 동자석을 통해서도  당시 사람들의 생과 사에 대한 시대적 인식들이 녹아들어 있었을 것이다. 이를 통하여 당시 제주인들의 내세관이라든가 돌다루는 기술, 돌 문화 등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두상석야외전시장''의 웅장한 모습이다. 거대한 바위들과 돌을 이용하여 거대한 설치 예술적 표현이 보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두상석야외전시장''의 웅장한 모습이다. 거대한 바위들과 돌을 이용하여 거대한 설치 예술적 표현이 보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우리 일행은 시간이 많지 않아 <제주돌문화공원>을 다 둘러보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방'을 찾았다.
우리 일행은 시간이 많지 않아 <제주돌문화공원>을 다 둘러보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방'을 찾았다.
'어머니의 방' 안에서 만날 수 있었던 바위가 마치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림자에 비친 모습이 압권이다. 창희 친구는 이것을 꼭 보고가야 한다고 강추를 한 곳이다. 사람이 저렇게 조각을 하라고 해도 힘들텐데, 자연에서 저련 현상을 구할 수 있다니 그것 또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머니의 방' 안에서 만날 수 있었던 바위가 마치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림자에 비친 모습이 압권이다. 창희 친구는 이것을 꼭 보고가야 한다고 강추를 한 곳이다. 사람이 저렇게 조각을 하라고 해도 힘들텐데, 자연에서 저련 현상을 구할 수 있다니 그것 또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주 동자석들이 <제주돌문화공원>에 이렇게 많이 수집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한편 씁쓰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창희 친구는 말한다. 제주 동자석들이 1970년 대 이후 본래 있어야 할 무덤 앞에 있지 않고 많은 수가 육지로 반출이 되어 거래가 되었기 때문에 개인들이 소장하는 것들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제주 사회에서도 이것이 형사사건으로까지 번져 언론에 보도되는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동자석들 하나하나가 문화재로 지정되어있지는 않았지만 엄연히 이것은 묘를 쓴 그 자손들의 소유물인 것이다. 이것을 훔쳐다 파는 사람들의 행위는 절도범이다. 그에 못지않게 나쁜 것은 이런 문화재급에 해당하는 동자석 같은 것을 구입해 주는 수집상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들은 절도와 장물 취득죄로 다스려 엄히 처벌해야 한다. 동자석들이 원래 있던 무덤 앞에 자리 잡고 있을 때 동자석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김광철 주주통신원  kkc08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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