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적이 묘연한 연두저고리 다홍치마!

                                                                                           필명  김  자현

초인종이 다시 쉴 새 없이 울었다.

또 누가 왔는 모양인가? 참 큰 애가 갈비 좀 재워온다고 했는데. 그럼 그렇지, 내가 애들을 그렇겐 안 가르쳤거든!

수방은 누운 채로 고갯짓을 하며 금방 의기양양한 표정이 된다. 다음 순간 지속적으로 울리던 벨소리가 뚝- 그쳤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던 그녀는 긴장했던 어깨를 바닥에 누인다. 아무도 아닌 게야. 잡상인이거나 세탁소에서 왔다 가는 걸까?

할머니는 다시 시큰둥 우울해졌다. 못 된 것들! 나만 두고 어디서 뭘 하느라고 아무도 안 오는 거야! 오늘도 해가 다 가는구나! 나 얼른 죽으라고 이것들이 짜고 남모르는 곳에서 푸닥거리라도 하는 거 아니야? 옳거니! 맞다 맞았어. 예전에도 부민관에서 내가 예식 올릴 때 시골집에서는 박수를 불러다가 푸닥거리를 했잖은가 말야! 그래, 맞았어! 어쩐지 언젠가부터 저희들끼리만 쑥덕대더라. 딸년들도 한통속인 거야.

수방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가슴을 자꾸 쓸어내린다. 허수아비는 내가 따로 빼놓은 연두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고 있었지. 허수아비가 다시 원술이로 바뀐다. 흰 고무신을 신은 허수아비는 가슴에 커다랗고 거무죽죽한 무쇠 칼을 꽂고 있었다. 칼을 가슴에 꽂은 원술이 수방에게로 돌진한다. 어억- 그녀는 외마디 소리를 치며 자지러졌다.

어머니- 어머니! 그녀의 귓속에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에 네가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할머니께서 주무시더란 말이지? 어머니 정신 차리세요. 무슨 일 있었니? 할머니 왜 그러신지 모른단 말이지? 항년아 엄마는?

아이는 잔뜩 겁을 먹고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수방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근심어린 표정으로 아들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아들을 빤히 올려다 본다. 어머니 때문에 산다던 아들이 며느리 편에서만 처신하는 꼴이 밉살머리스럽다.

별일 없었다. 옛날 생각하다가 가위에 눌렸었던 모양이다. 걱정할 것 없어. 시장하겠다 저녁 먹어야지?

괜찮으시겠어요? 어머니도 저녁 안 드셨지요?

괜찮지 않으면 죽기 밖에 더 하겠냐! 내야 뭐- 똥이나 싸고 누워 있는 인사가 한 끼쯤 안 먹으면 덜 싸니까 모두 좋지.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애들 엄마는 어디 갔어요?

낸들 그걸 알겠니? 아침만 뚝딱 먹고 나면 어디로 없어지는데. 신경 쓸 것 없어. 걔도 지겹지 않겠니!

형중은 어머니 방을 나서며 넥타이를 잡아당긴다. 이 무겁고 어둔 분위기를 언제까지 지고 가야 하는 거지? 생기라고는 어느 구석에도 찾아볼 수가 없어! 대체 노인네 저녁도 안 드리고 어디서 뭘 하는 거야?

갑자기 뒷목이 뻣뻣해져 온다 .

머잖아 부부금슬에도 금이 가겠지, 이대로 가다간. 허긴 나도 어머니께 잘하는 거 하나도 없는데 노인네 대소변 받아내는 사람에게 뭔 할 소리가 있겠나! 뭘 어째야 이 난국이 명쾌하게 해결될까? 그래 난국은 난국인데 제 어머니 모시는 걸 난국이라고? 하지만 이게 난국이 아니고 뭐가 난국이야. 살림하는 여자가 더구나 어른이 계신데 어디 가서 툭-하면 늦게 들어오니......회사는 회사대로 감원하라고 난리를 치고 하루종일 시달리다 들어오면 대체 쉴 수가 없이 더 무거워!

순애 어멈, 우리 작은 애기씨 정말 이뻤어, 꼭 봤어야 하는 건데......그 혼인식 올린 곳이 어디라 하더라? 아아—부민관! 하옇든 우리 애기씨꺼정 그날 거기서 혼인 올리는 쌍이 스물다섯 쌍인데 우리 샛골 애기씨가 제일 이뻤다는 거 아뉴! 사람들 입에 침이 말랐수. 머리에는 화관을 쓰구 면사포라나? 망사로 된 면사포가 머리에서부터 발꿈치도 넘게 치렁거리고 난 눈이 부셔서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다우! 마음씨도 착하시지, 얼굴도 빼어나시지 정말 작은 애기씨는 타고 나셨어!

그뿐이다겠어! 이렇게 친정 불일 듯 큰 부자 맨들고 시집 가시지. 그런데 대체 스물다섯 쌍이라니. 예식 올리는 집이 그렇게나 많어?

누가 아니래, 정신대 때문에 낭인들에 잡혀갈까 봐 다투어 시집을 보내는 거지 뭐! 우리 기숙이

 

는 어디로 잡혀갔을까. 가서 뭘하고 있는지. 기숙이도 잡혀가지 않았으문 소샘말 세진이네로 시집을 보낼 건데!

나두 기숙이 생각을 하문 가슴이 미어져. 우리 순애랑 단짝이었는데.....

순애 일찍 시집 보낸다고 내가 뭐라 했는데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볼 수가 없어, 그렇지?

간호사 공부도 시키고 병원에서 일하는 거래.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보자구. 자리를 잡고 나문 편지라도 띄울테지.

그러겠지? 그래야지 암문 그렇고 말고! 그나저나 푸닥거리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그래 새 서방님 얘기나 해 봐! 어떻게 생긴 분이야?

눈물을 찍던 기성 어멈의 얼굴이 환해진다.

새 서방님도 정말 근사했어. 얼굴이 너무 희어 폐병쟁이 같아서 흠이지. 어떤 사람들은 애기씨 인물보다 신랑 인물이 더 낫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 뒷모습이 제비추리 같은 검은 양복을 받쳐 입고 목에는 나비가 내려앉듯 댕기를 매고 훤칠한 키에 얼마나 멋졌다구! 그런데 난 문제가 그게 아니야!

뭐가 문젠데? 아니 입이 벌어져 왜 말을 못하고 난리야, 기성 어멈 그런 얼굴 난 첨 보네!

죽죽 빼어 입은 양복쟁이들이 어찌나 많은지 가슴이 울렁거려 죽을 뻔했다우. 어디로 눈을 돌릴지 몰라, 이리로 돌려도 두근두근 저리로 돌려도 두근두근. 왜 배운 사람들은 얼굴이 보드랍고 친절한 인상인지 몰라. 순애 어멈도 꼭 한 번 봤어야 하는 건데...... 우리네야 땡볕에 장독처럼 그을고 잠뱅이 입은 남정네들만 보다가 난 부끄럽기도 하고 창피하고 그래서 아주 죽을 맛이었어. 그리구 두 분이 정말 얼마나 잘 어울렸는지 몰라. 원술 큰 아가씨가 그 자리에 없었기에 망정이지 있었드라면 작은 아가씨 흰 면사포에다 물바가지 세례라도 퍼부었을거구먼, 아이고 재밌어라! 흐흐흐......그런데 왜 그렇게 안색이 안 좋아? 정말 그 얘기나 해 봐, 푸닥거리라고 했어, 아까? 무슨 푸닥거리야? 그리구 왜 원술 아가씨는 예식을 보러오지 않았던데?

푸닥거리 통 참견을 해야 하는데 어디를 가, 그것을 몰라 물어? 원술 아가씨 종내는 일을 크게 벌였더라구!

아아니, 그게 무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지 어서 해 봐, 무슨 일인데 그래?

그 심술첨지가 작은 아가씨 시집 잘 간다고 샘이 나서 벌인 일이지. 큰 올캐를 꼬드겨서...

웬일 이라우! 혼수 준비할 때도 서울루 시골루 다니면서 갖은 흑작질을 다 해대더니 그것도 모라자서? 언젠가는 하늘이 벌하실 거구먼! 자랄 때도 작은 아가씨 그렇게 못살게 굴더니 어쩜 끝끝내 마지막 가는 날까지 버릇을 못 고치는구랴! 명 짧은 사람 같으문 작은 아가씨 벌써 죽었을 수도 있었어. 우린 다 보고 살았잖아. 자세한 얘기 어서 좀 해 봐!

난 내 입으루 얘기 못 해. 딴 사람에게 들어. 눈물 나서 죽을 뻔했어. 모인 사람은 다 울었어!

그건 그렇구, 그 예식장에서 말유. 화장을 마치고 아가씨가 드레스 입구 나서 신고 들어갈 가죽신이 감쪽같이 사라졌구랴!

아니 그래서 어찌했대?

세상에나 바로 전날 여행에 들고 갈 가죽가방에 꼭 챙기셨다는데 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나와야 말이지. 큰 가방 손가방을 다 뒤집어엎어도 패물도 있는데 가죽신만 없는 거야. 신행 다녀와서 관례벗김 입으려면 고무신도 필요해 함께 넣었다는데 그것도 없구......

연두저고리 다홍치마는 안 없어지구?

아니 그것을 순애 어멈이 어찌 알어? 누구한테 벌써 얘기 들었구랴?

듣기는 누구한테 들어 다 아는 수가 있지.

순애 어멈이 한숨을 푸욱- 내쉰다.

이 집 아마도 망하고 말 거야.

순애, 그런 소리가 어디 있어. 누가 들을라. 왜 안 하던 해괴한 소리까지 해대고 그래! 샛골 마님네가 망하면 우리는 어쩌구! 우리는 이나마 어디서 목숨을 부지 해? 그런 소리 행여 말어!.

그렇게 끔찍한 일을 벌였는데 구신은 속여도 어떻게 하늘을 속여! 어쨌든 그래서 고무신도 못 찾아서 어찌했대?

난리도 아니었지. 아무리 찾아도 본 사람도 없고, 짐은 갈 때부텀 주욱 내가 들고 있었거덩. 도둑맞을 짬도 없었지. 한 번도 짐을 내려놓은 적이 없었으니깡. 괜히 나만 민망하더라구, 허지만 내가 어디 도망간 년이라야지.....샛골 마님이 역시 판가름을 잘 하시던걸. 남대문집 김서방이 아가씨 발을 재고서는 눈썹을 휘날리며 화신 백화점에 가서 가죽신을 사다가 대령했어. 아씨가 아주 언짢아 했다우.

왜 안그러시겠어. 새 출발 할 신이 없어졌는데......

좋지 않은 징조일까 봐 아주 안 좋은 기색이셨지.

기성어멈! 우리 지금 나눈 소리 아무한테도 안 하기유. 착한 애기씨 정말 안 좋은 일 있으문 마음 아파서 어째. 썩 듣기 안 좋아. 우리끼리만 이바구 하기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김승원 주주통신원  heajoe@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