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의 크기는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이름 거북선, 말만 들어도 이순신을 떠 올리는 이름이다이러한 거북선을 두고 아직도 이렇다 할 배를 못 만들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해군사관학교에서 3번째 거북선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거의 끝나는 단계로 알고 있다이번만은 '아 그래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거북선에 관한 기록은 1795년에 쓰여 진 이충무공전서의 기록이 표준이 되고 있다이 기록에는 배의 밑판 길이가 64,8척이고, 배의 전체 길이는 113자라고 기록 되어 있다.

그런데 신경준(1712~1782)의 병선론에는 밑판의 길이가 50척으로 되어있다또한 호좌수영지나 이충무공 본가 소장 그림에는 배 밑의 길이가 10발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10발이란 보통의 남자가 양팔을 벌리는 길이를 말하는데 통상적으로 5척으로 잡는다그렇다면 신경준의 병선론과도 일치한 점으로 보아 1795년대 거북선에 밑판의 길이는 모두가 50척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그런데 왜 이충무공 전서에는 64,8처이라고 기록 하였을까?

영조27(1751)221일 왕명에 의하여 박문수는 전선을 돌아보고 보고하는 내용에는 배를 만들 때 마다 배가 점점 커져서 포혈이 한쪽에 8개가 되었다고 보고를 했다.

그러던 것이 배가 더 커졌는지 1795년 이충무공전서가 써질 때는 한쪽에 포혈이 10개가 되었다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은 포혈이 한쪽에 6개였다고 이분은 행록에 기록하였다.

이상의 기록에서 배밑판의 길이가 신경준의 병선론, 이충무공 본가 소장본, 호좌수영지 모두 50척으로 되어 있는데, 그 기간 동안에 배가 그만큼 커졌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것 같다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분이 행록을 쓰면서 임란 당시의 거북선의 크기를 기록하지 않았고 한쪽에 포혈이 6개라고만 기록한 점이다.

필자는 임란 당시의 거북선 크기를 유추해 보는 방법으로, 1795년에는 포혈이 10개였으니 이 포혈수로 계산한다면 임란 당시의 거북선 크기는 1795년의 거북선 크기의 60%가 된다고 볼 때,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의 밑판 길이는 38,88척이 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러한 계산법은 생각해보지 않고 신경준 병선론의 수치인 50척이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 밑판 길이가 절대적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포혈은 포를 쏠 때 장애가 되지 않는 간격을 두고 포를 설치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본다면 결코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경남 고성의 당항포에 전시되어 있는 배로 필자가 만든 것임.
경남 고성의 당항포에 전시되어 있는 배로 필자가 만든 것임.

편집 : 김태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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