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옥 공주를 기억하며

- 페르시아, 혹은 조로아스터교의 전설에 따르면 신령한 하오마 나무는 위대한 가오케르나 mighty Gaokerena’라고 불리웠다. 가오케르나 나무에는 상처를 치료하는 힘 뿐 아니라 죽은 자를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하는 힘이 있었다. 특히 그 뿌리에서 나오는 액은 신들이 사용하는 영약에 버금가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 힘을 두려워한 악마는 도마뱀이나 개구리로 변해 나무를 없애려 했다. 그래서 가라 Kara’라는 이름의 물고기 열 마리와 여섯 개의 눈과 아홉 개의 입을 가진 당나귀가 나무를 보호했다. - 위키피디아 ‘Gaokerena’ 편에서*

 

아빠, 안녕

아이가 나를 꼭 안았다. 오래동안 뚫어져라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누가 들을세라 속삭였다. 항상 어른스런 척 하던 어린 딸이 언제부터인가 입에 올리지 않던 아빠’, 그리고 아이는 뒤돌아서서 마차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마차가 출발할 때까지 아이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올해 겨우 열 다섯 살, 아이는 마차를 타고 사막을 지나고 배를 타고 풍랑을 거쳐갈 것이다.  아이가 갈 곳은 내가 가보지도 못했고 앞으로도 갈 수 없을 멀고 먼 곳에 있다.  지금 내가 보는 아이의 모습이 내가 죽을 때까지 기억에 남아있을 모습이 될 것이다. 기억이 흐려지고 나면 나는 아이를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

고향인 아유디아 Ayudia 에서 이곳 중국, 험하디 험한 보주(普州). 당나귀 한 마리가 간신히 지나갈 좁은 길을 타고 아이를 태워왔다. 전쟁에 진 우리에게 달리 선택은 없었다. 조상대대로 두 마리 물고기가 지켜낸 신성한 나무는 말라서 쓰러졌고, 야음을 틈타 우리는 끝없이 도망쳤다. 갈 수 있는 곳이라야 옥과 귀금속을 무역하러 다닐 때 들렀던 옛 촉나라 땅, 사람들은 갈 곳 없는 우리를 내쫓지는 않았지만 환대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우리를 ()씨 일족이라 불러 구분지었다. ()라고 하는 것은 이곳 말로 샤먼을 일컫는 말이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금새 한족(漢族)의 문화에 적응해갔다. 아이들은 한족의 예법을 배우고, 한족의 풍속을 익혀 놀았지만, 결코 한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었다. 우리 뒤를 이어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밀려들자 주위의 시선은 갈수록 서늘해졌고, 일족을 책임지는 수장으로서 나는 새로운 방도를 찾아야 했다.

가락국의 왕이 혼처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그즈음이었다.

평소 동생처럼 여기던 신보(申輔)가 말했다. “그 나라는 나라의 이름도 없고, 임금과 신하가 서로를 부르는 호칭조차 없었다 합니다. 그가 질서를 잡고, 아홉 부족을 통합해서 나라를 세웠답니다. 건국은 했지만 부족간의 알력이 심해서 그들 중에서 왕비를 고를 수 없다 합니다. 가락은 철이 많이 나 부유한 곳인데다가 이제 힘있는 임금이 들어섰으니 한동안 평화가 지속될 것입니다.”

그는 말을 끊고 잠시 나를 바라보곤 말했다. “형님, 황옥을 가락국에 보내면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우리는 이곳에서 이방인이며 평생 저들의 뒷바라지를 하다 늙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다릅니다 그 아이는 우리의 고향에서 태어나 그곳과 이곳을  익혔습니다. 그 아이가 가락국의 왕비가 된다면 고향의 문화는 이어질 것이고, 이곳의 발전된 문화를 알려줄 수 있으니 나라가 더욱 굳건해질 것입니다.” 그는 다시 말을 끊고 한동안 나를 쳐다보며 또박또박 내뱉았다. “물론 형님과는 영원한 이별이 될 것입니다. 제가 형님을 대신하여 그 아이를 따라 평생 그 아이의 그림자가 되겠습니다.

 

탑은 심하게 훼손되어 더 이상 원형을 알아낼 수 없다. 오직  남은 존재감으로 옛 자태를 상상한다.
탑은 심하게 훼손되어 더 이상 원형을 알아낼 수 없다. 오직 남은 존재감으로 옛 자태를 상상한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니 며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 번 고향을 잃어버린 어린 딸아이에게 낯모를 타국 생활도 고통일진대 이제는 말도 통하지 않을, 한 번 가고나면 생사를 알 수 없는 먼길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그러나 이곳, 내 품에서 아이를 힘껏 보듬어 낸다 할지언정 그 끝은 한족 벼슬아치의 첩실 이상이 어려울 것이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가락국의 왕은 호의를 가득 담은 답장을 비밀리에 전해왔다. 울먹이는 아내를 다독이며 나는 남은 가산을 털어 비단과 보석 등 선물***로 보낼 것을 준비하고 출발 날짜를 잡아 알렸다.

아이는 끝내 웃으며 길을 떠났다.

아니 떠나기 전까지 나 몰래 눈물을 다 흘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를 떠나보내고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한인들의 착취는 더욱 심해졌고, 참다못한 우리는 무기를 들었지만 결국 무릎을 꿇어야 했다. 일족들은 자발적으로, 강요에 의해서 기껏 일군 정착지를 버리고 낯선 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 와중에 아이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반란의 수괴로 지목된 나 또한 떠나야 했지만 혹 아이가 돌아올 곳을 잃을까봐 간청하다시피 남았다. 나 말고도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몇 몇 일족과 함께 집성촌을 이루며 초라한 삶이나마 이어갔다. 간간이 들리는 소식에 아이는 열 두명의 아이를 낳고 건강히 지낸다 한다. 물론 이것은 내가 아직껏 구천을 떠돌고 있기에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이다.

끝내 아이를 다시 보지 못했다. 천 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내 혼은 아직도 구천을 떠돈다. 풍랑을 잠재워 달라고 아이가 싣고 갔던 탑은 사당의 한구석에 뭉툭하니 서 있고, 다시 단장되었지만 옛 형태를 잃어버린 신성한 물고기 두 마리는 아직도 마주보고 있다. 아이의 비석에 보주태후'**** 라고 선명하게 적혀있는 글자를 본다. 그때의 이별을 아이도 기억하고 있는 걸까. 나와 아이가 태어난 저 아유타가 아닌 헤어진 곳 보주를 아이는 잊고 싶지 않았던 걸까.

내 방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 탑이 무너지는 날, 그리고 마주보는 두 마리 물고기가 바래져 없어지는 날, 나 또한 영원한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임의로 발췌, 의역함
**기록에 의하면 신보와 조광(趙匡)이 동행했는데 그 아내의 이름이 각각 모정(慕貞)과 모량(慕良)이라고 알려져 있어 두 사람을 자매지간으로 추측하였음
***錦繡綾羅, 衣裳疋緞,金銀珠玉,瓊玖服琓器,漢肆雜物
****駕洛國首露王妃普州太后許氏陵


- 이 글은  김병모 지음,  '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 역사의 아침, 2008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해인 주주통신원  logca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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