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내부자들>을 보고 -

내부자는 여하튼 조직에 속한 사람이다. 조직은 관계망이되 단순한 관계망보다 체계적이다. 목표가 분명하니 그렇다. 내부자의 정체성은 그 목표를 지향할 때 선명하다. 때로 선명한 정체성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영화 <내부자들>은 웹툰이 모태다. 인터넷 한겨레 오피니언 매거진 ‘훅’에 연재되었다. 2010년 연재를 시작해 2012년 8월에 올라온 73회를 마지막으로 3개월 만에 연재를 중단했다. 대선에 참여한 용들이 꿈틀대는 데서다.

http://www.hani.co.kr/arti/cartoon/insider/547855.html

그러니까 영화 <내부자들>은 미완성 웹툰을 개량하여 마무리한 완성작이다. 정치 드라마에서 범죄(정치인, 재벌, 조폭이 합세한) 드라마로 확충된 셈이다. 저자 윤태호는 <이끼>와 <미생>을 각각 영화와 드라마로 차원 이동시켜 주목 받은 전력이 있다.

“어떤 조직에나 조직의 정서와 반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보수 신문에도 꽤 진보적 정서를 가진 기자가 있습니다. 반대로 진보 신문에서 보수적 마인드를 가진 기자도 있죠. 그런 사람들이 조직에 순응하는 것은 현실적 선택 때문입니다. 살기 위해서죠. 이런 사람들을 내부자들이라고 봤습니다.”(윤태호, 한겨레 인터뷰 중에서)

영화 내부자들의 면면은 다종다양하다. 모든 세포가 변종으로 증식할 수 있듯 조폭, 검찰, 언론, 정치 등의 토양에서 같은 듯 다르게 돋아난다. 조직의 성격과 그들이 처한 현실적 입지가 제각각인 탓이다.

차세대 내부자의 형질은 살아남은 내부자가 관건이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살아남은 내부자는 누구인가.

초중반까지 ‘뛰는 놈 위의 나는 놈’은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였다. 그는 한때 민주화운동을 했다. 그러나 내부자가 된 그의 훈수는 과거의 행적과 별개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뭐 하러 개, 돼지들한테 신경을 쓰고 계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그의 독주를 겨냥한 게임이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와 무족보 검사 우장훈(조승우)의 결탁으로 행해져 반전이 일어난다. 이강희를 의형(의리로 맺은 형)으로 믿었다가 손목이 잘린 안상구가 “복수극으로 가자고, 화끈하게”를 외친다.

비자금 스캔들 파일을 안상구에게 뺏겨 물먹고, 매번 인맥에 밀려 “저 진짜 조직을 위해 개처럼 살았습니다.” 항변하던 우장훈이 안상구에게 제안한다. “넌 복수를 원하고, 난 정의를 원한다. 그림 좋잖아?”

역사에 일방적인 진보란 없듯 영화의 결말은 열려 있다.

이강희는 안상구에게 손목이 잘리고, 우장훈에 의해 범죄자로 노출된다. 이강희의 원격조정으로 대선 후보자가 된 장필우(이경영)는 칩거모드로 전락한다. 엔딩 장면은 강남에 진입하지 못한(않은) 채 변호사로 뛰는 우장훈을 방문한 안상구가 함께하는 시시거림이다. 그 이후는 관객의 몫이다.

문득 찾아온 의문 하나! ‘내부자’와 ‘꼭두각시’의 다른 점은? 안상구를 병신 만든, 재벌 오현수 회장(김홍파)의 심복 조 상무(조우진)는 내부자가 아닌 꼭두각시일까? 내부자는 꼭두각시와 달리 자기선택권이 있다고 봐야 할까?

먹고사니즘에 충실할수록 내부자와 꼭두각시의 경계는 스러질 수 있다. 선한 방식으로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25일 째 은신 중이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경찰 출두를 위해 나서는 걸음에 주목한다.

▲ 10일 10시 30분경 경찰 출두를 위해 관음전을 나서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과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경향신문 이준헌 기자)

영화 <내부자들>의 볼거리는 필름느와르의 잔혹함이 아니었다. ‘악~’하는 놀람으로 흥미롭게 지켜 본, 강도 센 19금 밀실 연회 장면이었다. 백윤식&이경영&김홍파의 알몸(뒷모습)과 여배우들의 가슴노출로 진행된 폭탄주 제조는 예상 못한 파격이었다. 퇴폐의 사실감을 전하면서 내부자에 혹하는 본능적 욕망을 짚어보게 했다.

현재(20151210, 11:00) 확인한 바, 영화 <내부자들> 관객 수가 525만명을 돌파했단다. 사람들이 많이 보니까 자기 돌아봄이 증가해 "서로 구린 놈"이 줄어들까?

관계망에 얽힌 인간은 유한성 탓에 내부자나 꼭두각시 역할에서 완전히 놓여나지 못하리라. 그래도 지금 여기에서 꿈틀댐을 멈출 수는 없다. 먹고사니즘이 엄중할수록 인간은 정신적 물질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해야 인간다울 수 있으니까.

김유경 편집위원  newcritic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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