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신년 벽초에 어르신도 선배도 아닌 7~8년 후배의 부고가 떴다.

예상치 못하던 비극이었지만 소식을 접한 순간 짚이는 바가 있었다.

몇 년 전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지금 기억이 확실하진 않아도 ‘몇천만 원 빌려주면 월 몇십만 원의 이자를 주겠다’는 내용 정도, 자타가 공인하는 월급쟁이 아니면 은행에 담보물이 있어야 가능할 액수였다. 문자 내용으로는 딱 스팸 같았는데 번호는 지인, 번호를 도용한 스팸인가 하고 전화를 해보니 본인이 보낸 게 맞았다. 휴대전화기를 바꿔서 지금은 그 문자가 없어졌다

집안에 회복이 어려운 환자가 있었고 아이 둘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였으니 상당한 경제적 여력이 있는 집 아니면 가정경제가 바닥을 치는 건 순간일 테니까. 그러나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당장 쓰려던 소액이 있었고 단기간 대여는 가능하다는 정도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늦은 듯한 조언이지만 일은 계속해야 하니 일터에서는 동료 등에게 돈과 관련한 거래는 안 해야 한다고 했다. 일터는 밥줄이니 그 줄은 절대로 놓으면 안 되고 동료들에게 돈을 빌린다는 건 동료에게 약점을 잡힌다는 의미였다.

사람이란 게 나이를 먹게 되면 사람 중한 것도 알지만 사람의 저렴성도 알게 되는 것, 누군가 어려워 아쉬운 소리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앞에서는 위로하지만 돌아서면 뒷담화로 마타도어하는 게 얼마나 일상화된 일인지 익히 보았던 터였다. 얼마 후 그는 내게 그 소액을 요구했고 나는 빌려줬다가 써야 될 때 돌려받았다. 늘 그랬지만 가끔씩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확인하며 지냈는데 그 후로 다니던 일터는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그는 다른 일터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삶은 살아온 세월만큼 생존법도 쌓이는 것, 죽을 것 같던 시간도 세월이 가면 해법을 찾느라고 부득불 요령을 부리며 어찌어찌 살아남는 게 사람 아니던가. 혼자만의 경험과 노하우도 있겠지만 이웃과 친지들을 통한 간접 경험들 또한 얼마나 많던가. 그는 나름대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예전과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삶을 지탱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 다름은 애써 모르는 척 안녕만 확인하며 지난해 연말을 보냈다.

각종 수단의 발달은 거리가 멀어도 거리를 못 느낄 정도로 소식이 빠르고 도시의 익명성은 이웃해서 몇십 년을 살아도 목례 만하고 지내거나 이조차 없을 때도 많다. 가까이 살아도 얼굴만 익지 내용을 모르고 지내는 이웃이 대다수 *안물안궁인 것이다. 이런 이웃들이 어느 날 서로 말을 트면서 어떤 이는 본인이 신용불량자임을, 어떤 이는 파산상태임을, 또 다른 이는 채무로 고민 중인 속사정을 이야기한다. 이 중 파산을 선택했던 이가 했던 말은 빚은 불어나는 것을 미처 몰라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파산까지 왔는데 파산을 진행하면서는 또 이 '파산 절차가 얼마나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지'도 이야기했다.

녹녹한 삶이 어디 있던가. 그러기에 당장 묘안이 없으면 시간에 기대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어느 한쪽을 접어 포기해야 할 때도 있는 것. 이렇게 하나하나 해결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현재를 많은 이들이 사는 방법일 테고.

그러나 별문제 없어도 대부분이 힘든 때가 갱년기이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금은 코로나19 펜데믹 세계다. 갱년기는 몸의 변화로 늘상 수행하던 일과도 부담으로 다가오고 코로나19 펜데믹은 행동반경에 제약이 가해지니 누구나 억압을 느끼고 경제적으로 보통인 사람조차 보통 이하로 주저앉히고 있다. 이젠 IMF를 능가하는 어려움이란 말도 회자되고 있다. 이런 때 누적된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치면 절망은 발등의 불이다. 이 발등의 불로 출구를 찾지 못해 극단을 선택한 한 생명.

그는 계층을 넘나들며 공감 능력이 좋았고 소통을 잘했다. 정의롭고자 애썼으며 게다가 밝고 둥글둥글했던 그였기에 더 충격이 컸던 사건이었다.

급강하했던 영하의 날씨로 띵하던 머리가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아 한 번 더 띵하고 멍했던 신년 벽초였지만 나는 남은 자들에 대한 생각을 한다.

요즘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여러 상담소가 있고 사설 상담소도 많다. 성폭력, 가정폭력상담소 등은 오래전에 생겨 지금은 나름대로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고 정부에서 운영하는 법률구조공단도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 문제는 끊임없이 생기기 마련, 이젠 가정경제로 위기와 난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가정경제상담소가 있으면 어떨까. 정부 차원에서라도 만들어 운영해야 하지 않겠나.

*안물안궁: 안 물어본 것, 안 궁금한 것의 준말

 

편집 :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신성자 시민통신원  slso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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