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먹이의 천진한 웃음. 이 웃는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심신과 영혼까지 하해진다.

젖먹이 아이가 나를 보고 웃는다. 옹알이도 한다. '깍~' 소리를 내며 웃는다. 자다가 깨어나 희미한 어둠속에서도 내 얼굴을 보면 웃는다. 참으로 신기하다. 물론 나도 웃는다. 아이보다 먼저 웃기도 하고 나중 웃기도 한다. 아이 엄마가 자기보고는 잘 웃지도 옹알이도 않는다고 하면서 서운타고 '에~효~' 한다. 나도 그게 좀 이상하다.

나는 아이가 웃을 정도로 잘 생긴 것은 물론 아니다. 혹시 못 생겨서 그럴까? 나는 희극인 배삼용씨와 심형래씨를 좋아한다. 그 분들의 연기도 좋아하지만, 그 분들 연기와 얼굴에서 내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영아는 내 얼굴에서 그 희극인들과 같은 모습을 보는 걸까? 바보 얼간이처럼 어리바리한 모습을 말이다. 그럴 수도 있지만 내가 그렇게까지 웃긴 모습은 아닌데... 아무튼 나를 보고 웃어 주니 고맙다.

영아가 나를 보면 왜 웃을까를 생각해 본다. 이 또한 나의 생각이고 편견과 오해가 있을 수 있으니, 독자들께서는 그렇거니 하고 실소로 넘겨주시기 바란다.

젖먹이 아이(嬰兒, suckling infant)에겐 편견이 없을 것이다. 선입견과 오해도 물론 없다. 영아는 상대가 자신을 '좋아할 것이다, 싫어할 것이다' 또는 '저 사람은 이렇다 저렇다' 라는 생각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저 보는 대로 보고, 보이는 대로 본 후, 그를 아무 것도 섞임 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자기가 본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온 몸으로 표현하리라. 거기엔 어떤 가식도 없고, 더한 생각이나 상상도 불가하리라. 영아는 그리할 수 없고, 과거와 미래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자연은 어떤 외부의 영향도 그대로 받는다. 싫음도 좋음도 없다. 그러므로 자연이고 자연스럽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자연은 어떤 외부의 영향도 그대로 받는다. 싫음도 좋음도 없다. 그러므로 자연이고 자연스럽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어른들은 어쭙잖고 어설픈 과거와 어정쩡한 미래에 대한 지식이 편견과 오해를 불러오리라. 때로는 아니? 가능하면 영아처럼 살도록 노력하면 좋지 않을까? 그리하면 편견도 없고 차별과 오해도 없는 영아처럼 그런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누구를 만나든지 처음 만나는 사람 같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대하면 어떨까? 그러면 편견과 오해도 적어지고 미움도 원망도 감소하지 않을까? 세상은 한층 평화롭고 화평해지지 않을까?

어느 유명인사의 말이 생각난다. 자신은 고향이나 출신고교의 초청강의에는 전혀 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에 대한 어릴 적 선입견이 강의를 망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대로 생각하라 하고, 자신은 자신대로 사는 방법도 있다. 외부의 것에 좌우되지 않는 자신만의 삶을.

 

편집 : 김태평 편집위원

김태평 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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