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시오노 나나미의 15권짜리 ≪로마인 이야기≫ 읽으며 로마제국 흥망사를 공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새해인사 드렸더니 몇 분이 그 책에 관심 보이더군요. 책을 다 읽은 데다 모든 책을 정리하는 중이라 책값 마련이 쉽지 않을 듯한 사람에게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책을 많이 읽진 못했지만 조금 모으기는 했습니다. 1970년대 대학 다닐 때부터 사거나 얻고 또는 훔치기도 하면서 버리진 않고 모았더니 5천권쯤 되더군요. 소설 읽으면서도 밑줄 긋는 버릇 때문에 남의 책 빌리지 않고 헌책이라도 사는 게 편하고, 차비 아끼려고 걸어다녀도 책값은 별로 아끼지 않거든요.

1986년 미국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얼굴도 모르는 처녀를 소개받아 “나는 물려받은 돈 한 푼 없고 물려받을 땅 한 줌 없이 가진 거라곤 책 보따리 몇 개뿐”인 가난한 유학생이라며 편지를 보냈는데 다행히 회답해주더군요. 부잣집 딸이라 돈과 땅엔 욕심 없어도 책에는 관심 있었나 봅니다. 그랬던 아내가 언제부턴가 제발 책 좀 치우라고 성화를 부립니다.

꼭 20년 전인 2001년 아내에게 써놓은 유서에 내가 죽으면 집과 연구실 책 모두 원광대학교 도서관에 보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나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준 곳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다면서. 죽을 때까지 미룰 것 없이 작년 정년퇴임 앞두고 학교 도서관에 책 좀 기증하겠다고 했더니 보관 공간이 부족하다며 몇십 권만 골라가더군요.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떠맡기듯 천권 남짓 나눠줬습니다. 폐지 수집하는 이웃 할아버지에게 헌책방에 팔거나 고물상에 넘기라며 천몇백 권 처분했고요. 책을 버린 뒤 원고청탁 받은 글 쓰면서 같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는 멍청한 짓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토지의 무대가 된 경남 하동 최참판댁 전면.              사진 : 위키백과
토지의 무대가 된 경남 하동 최참판댁 전면.              사진 : 위키백과

그렇게 책장을 비우다보니 10여년 전 사놓고 분량이 많아 읽기를 미루어둔 책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앞에 얘기한 ≪로마인 이야기≫와 박경리의 21권짜리 ≪토지≫였습니다. 1월 내내 앞책에 푹 빠졌고, 2월엔 뒷책에 빨려들고 있습니다. 계획에 따라 독서하는 게 아니라 손에 잡히는 대로 읽는 거죠. 동학혁명 이후 해방 무렵까지 반세기 근대사를 엿볼 수 있는 ≪토지≫를 꼭 읽고 싶지만 20만원 정도 책값 마련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넘기고 싶으니 필요하신 분은 알려주시겠어요? 늦어도 2월 말까지는 다 읽을 테니까요.

그런데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성경을 완독하고 기독교 역사도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품지 않을 수 없더군요. 로마제국 치하에서 예수가 처형되고 300년쯤 지난 뒤 제국이 망하기 시작하며 4세기 초 기독교가 공인되고 4세기 말 로마 국교로 지정되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그 이전 유대교와 기독교의 결별 및 그 이후 이슬람교의 발흥도 읽어볼만할 것 같고요.

또한 많은 퀘이커교도들과 기독교인 톨스토이뿐만 아니라 힌두교인 간디도 비폭력저항의 뿌리를 예수의 가르침에서 찾았거든요. 제가 평화학을 공부하며 비폭력저항에 관한 글을 쓸 때마다 ‘산상설교’라 불리는 <마태복음> 5장 39-40절을 인용하는데, 성경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고 그 대목만 쏙 골라 논문에 써먹는 게 학자의 얌통머리 없는 짓이라고 생각해온 터였습니다.

게다가 올해 봄학기엔 통일부 지원으로 <명사초청 통일대담>이란 교양과목을 원광대학교에 개설해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여성과 종교의 역할”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할 텐데 성경을 한 번이라도 읽어보고 목사님과 신부님을 모시는 게 예의겠지요. 물론 불경, 원불교 교전, 천도교 동경대전도 읽어야할 테고요.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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