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한 개에 담긴 제자의 마음

계란 한 개의 정
계란 한 개의 정

필자는 손(孫)이 귀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부모의 품이 아닌 할아버지 할머니의 품에서 자랐다. 1950년대만 해도 교사직 근무자는 군대에 가는 것이 면제 되었기에 행여나 다칠세라 학교역시 부모의 권유로 사범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시골에서는 이른 일곱 살에 국민학교(초등학교)를 입학 했으니 사범학교 졸업은 열아홉 살 때에 했다. 그때 교사 발령을 받았으니 너무 앳된 선생님이 된 것이다.

1960년대 초만 해도 도시와는 달리 시골 국민학교 교사가 정규학교인 사범학교 출신 교사가 소수였다. 그러기에 고학년을 담임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6학년을 맡아 가르친 후 중학교에 진학하는 원서를 내는 시기가 돌아 왔다. 가난에 쪼들리는 시골 학교 학생들이고 당시 학부모의 교육열이 그리 높지 않아 중학교 진학을 무작정 포기하는 학생이 많았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진학을 권유하러 가정 방문을 했다.

그런데 철수(가명)란 학생은 부모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20대 중반의 형 밑에서 자라고 있어 중학교는 엄두를 내지 못할 처지였다. 활달하고 영리한 철수의 얼굴에는 서글픈 그림자로 가득했다. 담임교사로써 너무나 안타까워 철수의 형을 다시 찾아 갔다.

여러 가지로 권유하는 동안 철수는 형에게 애원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어렵고 힘들겠지만 부모 대신으로 용기를 내 주라’고 설득하자, 부모가 계시지 않는 동생 철수가 애처로워서 이었는지 큰마음 먹고 동생 철수 진학 결정을 내렸다. 철수의 얼굴은 환하게 밝아 졌다. 담임교사인 나도 도리를 잘했구나 싶어 마음이 흐뭇했다. 철수의 형에게 어려운 결정을 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고 한참을 걸어왔다.

그런데 뒤에서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 돌아 보니 철수다. 한 손에 무언가를 쥐고 달려오는 것이다. ‘철수야 무슨 일이야?’ 했더니 헐떡이며 공손히 내미는 두 손안에는 계란 한 개가 보였다. ‘선생님 이거’ 하며 내민다. ‘아니 이거 너나 먹지’ 했더니 ‘선생님이 너무 고마워서요.’ 하는 것이다. 철수의 마음을 알아 차렸기에 ‘그래, 잘 먹을게, 고맙다’ 하고 받았다. 철수는 환한 얼굴로 뒤돌아 갔다. ‘그래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 되어라!’하고 중얼거리며 길을 재촉했다.

이 계란 한 개를 만지작거리면서 생각했다. 남이 보기에는 하찮은 계란 한 개이지만 철수는 마음의 전부를 주는 선물로, 갖은 자가 주는 어떤 선물 보다 뜨거운 마음의 선물로 받아 들였다.

진학을 권유한 결과 대다수의 학부모가 호응하여 학교 개교 후 처음으로 유래 없이 많은 학생이 진학 하게 되었다. 

교장은 겁을 먹었다. 이유는 교육청에서 교장의 평가항목 중, 중학교 합격률에 의한 점수도 가산되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전 학생 합격으로 온 학교가 밝은 표정과 웃음으로 떠들썩했고 교장도 미소를 지었다.   

세월이 흘러 필자는 교직을  퇴임하고 고향에 와있을 때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저, ㅇㅇ학교 다녔던 철수입니다. 잘 계시지요? 저는 선생님 고향 전신전화국 지점장으로 발령받아 왔습니다.’ 하는 것이다.

40여 년 전 철수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초임지 학교이고 정성을 쏟아 부었던 곳이어서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 자네는 업무에 바쁠 테니 내가 한번 찾아 감세’ 하고 며칠 뒤 찾아갔다. 제자는 열심히 노력하고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마련하여 대학 졸업 후 이 직장에 입사했다. 천직으로 알고 남달리 노력한 결과 현재 직책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코 흘리게 어린 철수의 애절한 얼굴이 떠올랐다. 제자가 손수 따라주는 커피 한잔이 어찌나 정이 흐르는지 고맙기만 했다. 그 때 더 도와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이렇게 성장한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자칭 교직 생활에 후회 없이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사랑을 더 베풀지 못한 점이 부끄럽기만 하다. 미처 생각지 못한 행동을 뒤에야 후회하며 사는 것이 인생인가 싶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전종실 주주통신원  jjs627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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