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서울집값

0.     이 글은 수필이다

이것은 전문적 분석이 아니다. 이것은 그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그 효과를 보며 내가 느꼈던 절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제 내가 말하는 것은 아마도 높은 확률로 틀린 분석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글의 종류는 수필이다.

1.     절망적인 전제, 절망적인 결론

A.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들, 그 중에서 분양가 상한제

문재인 정부는 수립 후 많은 부동산 정책들을 쏟아냈다. 그 목적은 모두 <서울권 집값의 유지>였다. 여기에서 나는 ‘전국 부동산 가격의 안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1. <전국>이 아니다. 이 정책들이 노린 것은 오직 서울권뿐이다. 지방의 집값을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2. <부동산 가격>이 아니다. 땅값이나 상가 값이 문제가 아니라 오직 집값, 그 중에서도 특히 아파트 가격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3. <가격의 등락>이 아니다. 집값은 상승해서도 안 되지만, 하락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상승해도 되고 하락해도 되지만, 둘 다 급격 해서는 안 된다.

하여,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했는가?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이론이 있다는 건 알지만, 전적으로 실패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나 역시 그러하다. 집값은 문재인 정부 초창기에 급등했고, 잠시 주춤했다가, 또 다시 급등했다. 이 정부은 그럴 때마다 상당히 강력한 서울 아파트 가격 규제안을 쏟아냈다. 내가 보기에 그 정책들은 그 크기와 중요성에 비해 너무나도 신속하게 입안되고 시행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 중 가장 신속하게 시장 상황에 반응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 집값은 계속 올랐다. 그 정책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렇다면 문 정부의 정책이 틀렸단 말인가?

분양가 상한제를 보자.  이 분양가 상한제의 이론적인 바탕은 이러하다.

<국토부의 분양가 상한제 홍보 포스터>
<국토부의 분양가 상한제 홍보 포스터>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지만, 그래도 핵심은 모두 담겨 있다. 분양가 상한제의 이론적인 바탕은 저 포스터 그대로이다. 주변 아파트의 시세가 100%이라고 쳤을 때, 신축 아파트의 분양가가 120%으로 책정이 되면, 주변 아파트는 그에 따라 120%로 오른다. 즉, 신축 아파트가 집값 상승의 첨병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때, 분양가를 억지로 70%로 규정한다면, 그 아파트는 분양 후에 급격하게 가격이 오르겠지만, 그래도 가격 상승의 첨병 역할은 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될 소위 “로또 맞은 분양자”들은 이 정책이 ‘당연히’ 감수하는 하나의 파생효과이며, 그를 완화하기 위해 전매제한 등의 추가적 조치를 시행한다.

좋다. 이 이론에는 문제가 없다. 나는 이 이론에 이론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물론 분양가 상한제에 반대하는 이론들도 있다. 분양가 상한제는 공급을 위축시켜서 결과적으로 집값을 더욱 상승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반박은 밑에서 다시 설명하기로 하고, 일단은 이 분양가 상한제가 이론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나의 판단 하에 좀 더 진행해보자.

 

B.      믿음은 현실이 된다

문재인 정부의 분양가상한제는 실패했다. 집값은 올랐다. 이 현상에 대해 우리는 양가적인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첫 번째 감정은, ‘당연하다’라는 느낌이다. 두 번째 감정은, ‘왜 이러는 거야?’ 라는 감정이다. 사실 이론적으로만 생각해보면, 분양가 상한제는 굳이 집값을 상승시키지 않는다. 공급을 축소시킨다는 비판을 받아 들여도, 분양가 상한제가 지정된 지역(29개동)만 올라야 마땅하다. 하지만 분양가 상한제 발표 이후, 그 지역과 무관하게 서울이 전반적으로 올랐다. 시세가 100인 지역에서 70인 아파트를 분양하자고 하니, 정책이 시행되기도 전에 그 주변 시세가 130이 되어버린다면, 사실 이 정책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정책이 된다. 로또청약의 당첨 금액만 더 커진 것뿐이다. 분양가 상한제뿐이 아니다, 사실 이 정부가 취한 여러 정책들은 경제학적으로 봤을 때, 딱히 집값을 올릴만한 정책들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론적으로도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대체 왜? 이 이론들이 무언가를 빼먹고 있기 때문 아닐까? 예를 들어 이러한 전제 말이다.

서울의 집값은 항상 오른다고 모든 시장 참여자들이 믿는다.

이 믿음은 이렇게 빨간 글씨로 표시할 필요조차 없이, 너무 당연한 명제이다. 적어도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것은 언제나 실증적으로 참이었다. 이 믿음은 단 한 번도 깨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곳에 있다. 이 명제는 절망적이다. 만약 이 명제가 참이라면, 여기에서 도출되는 결론들이 매우 절망적이기 때문이다.

우선, 시장 참여자들이 저렇게 믿고 있다면, 서울의 집값은 실제로 항상 오른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이다. 비유하자면, 모든 삼성전자의 주식이 항상 오를 거라고 믿는 주식 시장에서는, 설사 삼성전자에 악재가 터져도 삼성전자가 오르게 된다. 왜 인가? 삼성전자가 안전자산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에 터진 악재는 주식 시장의 불안함을 증폭시키고, 그 불안한 시장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곳은 삼성전자이기 때문이다. 혹은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이는 60년간 지속된 서울의 부동산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 즉, 이 전제에서는 다음과 같은 명제가 따라 나온다.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은 부동산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지 않으며, 그것을 시장에 가해지는 추상적인 충격으로만 받아들인다. 그리고 충격을 받을수록 안전자산(서울)을 선호한다.

다시 말해, 현재 시장 참여자들은 분양가 상한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그것이 공급과 수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에 대해 전혀 분석하지 않고, 분양가 상한제를 단순히 부동신 시장에 가해지는 충격으로만 받아들이고, 서울에 부동산을 사기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일반 대중이 멍청하고 무식하다는 의미인가? 눈먼 두더지가 지면에 충격을 받으면 곧바로 더 깊은 지하로 들어가듯이?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은 매우 합리적인 판단이다. 만약 위에서 말한, <서울 집값은 항상 오른다>라는 그들의 믿음이 참이라면 말이다. 시장참여자들은 두더지라기보다는 유출된 답을 미리 알고 있는 수험생에 더 비슷하다. 답은 3이란 것을 알고 있다면 문제를 볼 필요가 있는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3을 찍으면 된다. 이 상황에서 문제를 보는 것 자체가 시간낭비다.

문재인 정부는 다주택자에게 매우 적대적인 정책을 펼쳤다. 정책의 의도는 다주택자를 압박하여 시장에 매물을 많이 풀리게 하여, 집값 하락을 노려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찌 되었든가? 일단 다주택자들이 자기 집을 잘 팔지도 않았지만, 모든 지방 자산이 서울로 쏠리는 현상이 매우 가속화 되었다. 뉴스에서는 그것을 소위 “똘똘한 한채”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똘똘한 집은 당연히 서울이다. 서울은 언제나 안전자산인 것이다. 즉, 충격이 가해지면 가해질수록 모든 시장 투자자들은 서울에 자본을 집중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이러한 서울 집값의 상승은 지방 집값의 파멸적인 하락을 대가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다시금 그 <믿음>을 실증적으로 입증한다. 지방은 위험하다. 서울은 안전하다. 사실 한국 부동산 계에서 이 믿음 말고 대체 뭘 더 알아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이런 식이라면, 완전히 절망적인 세 번째 명제가 도출된다.

그 내용과 무관히, 오직 정책의 숫자가 많을수록 서울 집값의 상승폭이 커진다.

정말 그런가? 만약 그렇다면, 한 정부의 집값 상승 폭은, 그 정부가 시행한 (시장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부동산 정책의 숫자와 비례한다.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투명했는데, 그녀는 정말 아무것도 안했기 때문이다. 그 덕일까? 박근혜 정부 내에서 부동산의 가격은 그냥 말없이 조용히 올라가기만 했다. 서울의 집값은 계속 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충격을 주지 않아도 그냥 오른다. 다만 문재인 정부로 들어서며 거듭되는 정책은 도리어 집값을 계단식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 굳이 덧붙일 필요도 없지만, 최초의 전제는 다음과 같은 최종 결론을 도출한다.

서울의 집값을 급격하게 상승시키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절망적인 전제에서 나온 절망적인 결론이다. 정말 이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완전히 무력한가? 그럴 수도 있다. 정말로 모든 시장참여자들이 서울이 항상 오른다고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면, 그 믿음은 언제나 현실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자기실현적 예언이다. 물론 이 이야기들은 경제학적으로 너무 엉성한 분석이다. 입증할만한 통계 자료도 없이 두루뭉술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정말 부동산 정책의 숫자와 서울 아파트값의 상승률이 정비례 관계를 이룰까? 모르겠다. 다만 이 결론들은 내가 겪어온 부동산 시장과, 내가 만나본 부동산 시장의 참여자의 마인드를 너무 잘 설명한다. 그들은 부동산 정책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무심했지만, 항상 모든 사유는 “그래서 서울의 아파트를 사자.”로 귀결되었다. 나는 이제껏 서울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을 (소수의 전문가와 유튜버들 제외하고)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모든 이들이 서울의 집값은 항상 오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나 역시 그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 결론은 항상 맞았다.

 

2.     절망적인 낙원, 서울

A.     절대적인 공급 부족, 절대적인 초과 수요

공급에 대해 말해보자. 문재인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이 “높은 분양가가 집값 상승의 첨병이다.” 라고 주장하였다면, 비판론자들은 “아니다. 공급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분양가 상한제는 도리어 공급을 위축시키기 때문에 도리어 집값을 상승시킨다. 이러한 사상적 바탕 하에, 많은 기자들이 <공급 감소 우려에 청약 몰려… 집갑 상승…> 라는 등의 제목으로 글을 쓴다. 하지만 정말 공급이 문제란 말인가? 이번 정책에서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을 살펴보자.

이것은 아주 한정적인, 동 단위의 분양가 상한제이다. 국토부는 이를 ‘핀셋 규제’라고 불렀다. 그리고 저 지역은 실제로 발표 이후 집값 상승과 청약 과열 현상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공급 감소 우려’ 때문일까? 나는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저 지역이 분양가 상한제 때문에 공급이 감소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한국에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급이 감소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공급업체가 저 지역에 개발 기회가 있는 경우에도 여러 규제 때문에 개발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지 않는가? 하지만… 개포동에 개발 기회가 있고, 개발할 수 있는데도, 공급 업체가 그걸 하지 않는다고?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사실 저 지역들의 공급량은 개발기회와 완전히 동일하다. 다시 말해, 저 지역들에서 업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하여튼 간에 재건축/재개발이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개포동이다! 모두가 군침을 흘리는 지역이란 말이다! 분양가 상한제가 공급을 위축시킨다는 경제학적 이론은 지방에서는 훌륭하게 잘 통하는 이론이지만, 개포동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으며,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또한, “공급부족의 우려가 집값을 상승”시킨 것이 사실이라면, 집값은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된 저 동들만 올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울 전역의 집값이 상승하고 있다. 수요 공급에 따라 부동산 시장을 바라보고자 할 때, 저 정책과 아무 상관도 없는 지역들이 계속 오르고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부동산 참여자들은 저 정책의 세세한 내용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시장이 흔들린다>라는 사실 자체만을 감지하기 때문이며, 그에 따라 안전자산(서울 아파트)으로 몰려가기 때문이다. 서울 집값이 오르니 어서 집 한 채 사야겠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시장 투자자 중, 이번 부동산 상한제의 구체적인 내용과 선정 지역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그 반증이 될 것이다. 그들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데, 세세한 문제의 풀이과정을 뭣 하러 알아야겠는가? 시장 참여자는 “그 지역의 공급이 부족해질 것이므로 그 지역 집값이 오를 것이다.” 라고 경제학자처럼 판단하는 게 아니라, “시장이 흔들리니까 서울 집값이 오른다.” 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경제학자들보다 그들이 맞다. 왜냐하면 저 지역들은 공급이 줄든 늘든 집값이 그냥 오르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 말이 경제학적으로 헛소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처음부터 생각해보자. 저 지역의 아파트들이 비싼 이유가 무엇인가? 단순하다. 저 곳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너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가락 헬리오시티를 보라. 9500세대가 공급됐지만, 그게 가락동 지역의 집값을 낮추었던가? 그냥 십수억짜리 아파트가 9500개 더 생긴 것뿐이다. 이것은 서울대 입학과 비슷하다. 서울대 입학 정원이 300명이고, 지원자가 30만명이라면, 입학 정원을 350명으로 늘리든, 250명으로 줄이든, 점수 커트라인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입학 정원을 10배로 늘린다면? 그 정도라면 점수 커트라인이 낮아지긴 하겠으나, 서울대의 위상이 유지되는 한 그것도 그리 많이 낮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송파구의 인구는 60만 명이다. 여기서 공급을 대체 얼마나 늘려야 의미 있는 집값 하락을 노릴 수 있을까? 100%를 더 공급하면? 즉, 60만 호의 아파트를 송파구에 추가로 공급하면? 경제학적으론 내려 가야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될까? 입증할 수는 없지만, 내 생각엔 그렇게 되면 송파구의 집값은 지금 보다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전국에 송파구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60만  명이 넘으니까 말이다. 송파구 인구가 120만이 되면 송파구의 위상이 지금보다 훨씬 더욱 높아지며, 집값도 더욱 높아질 뿐이다.  

다시 말해, 저 지역은 이미 절대적(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공급부족 지역이다. 경제학자들은 공급 부족이라고 말은 하지만, 결코 이것이 절대적 공급부족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송파구에 만 세대 아파트를 지어도 집값이 떨어지지 않고 올랐다면, 대체 얼마를 더 공급해야 한단 말인가? 이 절대적 공급 부족은 당연히 절대적 초과 수요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 절대적 초과 수요를 달리 표현하자면, 이것이 집값의 본질인데, 모든 국민이 그 지역을 갈망한다는 의미이다.  

지금껏 내가 한 말을 좀 더 단순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서울에는 더 이상 공급을 하고 싶어도 할 땅이 없으며, 한다 하더라도 유의미한 양의 공급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이에 대해 공급업자들은 보통 이렇게 반박한다.

 “그렇다면 서울 외에 공급을 더 늘리면 된다. 즉, 신도시다.”

나는 이 사고가 아직까지도 멸종하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쯤 되면 “공급이 증가하면 가격이 떨어진다”라는 명제가 경제학적 이론이 아니라 신앙이 아닌지 의심이 될 지경이다. 신도시가 서울의 집값을 떨어뜨린 적이 이제껏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판교가 생겨서 강남구의 집값이 떨어졌던가? 그 어떤 신도시도 서울 집값을 떨어뜨린 적이 없다.

신도시는 “집값을 안정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라는 관점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내가 보기에 신도시는 사람(정책결정권자)의 뜻이 아니라 서울의 뜻이다. 신도시가 계속 들어서야만 하는 이유는 다만 서울이 더 커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세월이 갈수록 서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즉, 신도시는 정책결정권자의 통제 하에 있는 계획이 아니라, 자연적 현상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서울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무의미하다. 경기권의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지 않는가? 그것은 서울이 점점 더 경기권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 이상을 말해주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 신도시를 짓지 말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신도시는 필수적이다. 다만 집값 하락과는 무관하다.  

서울권에 대한 공급을 늘리면 늘릴수록 집값은 상승한다. 원인은 절대적 초과 수요이다. 모든 수능생이 서울대를 바라듯이, 모든 국민이 서울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서울에 집을 많이 만들수록 지방이 죽어갈 뿐, 서울 집값이 낮아지지는 않으며, 도리어 그 증가된 인구수 때문에 서울의 위상이 공고해질 뿐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서울의 집값 상승으로 이어진다.

  

B.      적은 없다. 오직 사랑꾼이 있을 뿐.

내가 위에서 지적한 문제들은 본질적이다. 그리고 본질적인 문제에는 본질적인 해결책이 필요한데, 대다수의 경우 본질적인 해결책은 불가능한 해결책이다. 문재인 정부의 여러 부동산 정책들을 살펴보면 그를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들의 공통점은 ‘적’을 상정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 정부는 순차적으로 서울 집값의 상승이라는 죄를 따져 물을 죄인을 상정하고, 그 죄인을 옥죄기 위한 정책들을 펼쳐왔다. 처음에는 갭투기꾼들, 다주택자들, 아파트 분양 업체들…. 사실 내가 보기에 이 정부의  정책들은 상당히 피상적인 것들이 많았는데, 그것들은 그 정책들의 소위 ‘핀셋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그 정책은 매우 소수만을 공격했다. 그리고 이를 반증하듯, 관련 기사에 달린 네티즌의 댓글들은 어떤 투기꾼을 욕하는 것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은 서울 집값을 올린 ‘진정한 적’을 은폐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 집값 시장에서 ‘진정한 적’은 누구인가? 안타깝지만 그것은 국민이다. 우리는 흔히 과도한 집값이 투기꾼들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를 즐긴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마음 편히 욕할 수 있는 특정한 적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 적을 죽이면 문제가 해결된다면,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편하겠는가. 하지만 최근 파산 신청을 한, 집을 1000채 정도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주택수를 보유했던 투기꾼을 생각해보자. 그의 부동산은 전국에 흩어져 있었지만, 편의상 그가 오직 개포동에만 1000채의 집을 가지고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이 정부의 정책이 성공하여 그 1000채가 모조리 경매에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개포동의 집값은 어떻게 될까? 아무 변화도 없다. 우리는 가락동에 9500세대를 공급해도 집값에 변화가 없었던 것을 목격하지 않았나? 왜 집값이 변화가 없는가? 그 이유는 위에서 말한 것과 똑같다. 개포동 집을 사고 싶어 하는 자가 999명이 넘기 때문이다. 욕하기 쉬운 건 1명의 투기꾼이고, 999명의 일반인은 욕하기 어렵다. 하지만 서울의 집값을 버텨주고 있는 것은 바로 이 999명의 일반인이다.

 이 부동산 시장에서 투기꾼과 투자자를 구분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극소수는 오직 투기 목적으로만 부동산을 사고, 극소수는 오직 실거주 목적으로만 부동산을 사지만, 그 사이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은 실거주 목적과 투자의 목적이 뒤섞인 상태이다. 굳이 집값 상승의 원흉을 지적해야만 한다면, 청약을 하기 위해 밤을 새어 줄을 서고, 내 집 마련의 꿈을 위해 평생 모은 돈을 쓰고, 신혼집을 구하기 위해 모든 대출을 바닥까지 긁어모으는, 그 알알한 시민들, 그들이 주적이다. 투기꾼들은 서울 집값을 조절할 수 없으며, 다만 그 등락을 타고 단물을 빨아먹는 것뿐이다. 거대한 시장의 움직임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바로 국민이다. 한강이 보이는 한남동 한강 자이 아파트가 29억인 이유는, 어떠한 투기 세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29억을 주고서라도 그곳에 살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서울 집값의 정말 짜증스러운 문제점은 그것이 거품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의 결과물이라는 데 있다.

오, 하지만 누가 그를 이해 못할 것인가? 서울이 사랑스러운 것을! 서울은 사랑스럽다. 서울 강남에 살다가 천안에 내려와 살고 있는 나로서는, 그 격차를 훨씬 더 생생하게 느낀다. 어째서 <서울의 집값은 항상 오른다>는 이상한 전제를 모든 사람들이 믿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너무 쉽고, 너무 본질적이어서 항상 절망감을 안겨 준다. 국토불균형발전 때문이다. 서울은 한국보다 크다. 서울은 한국을 빨아들인다. 이제까지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인구 절벽이 와도, 경제 위기가 와도, 죽는 건 지방이지 서울이 아니다. 서울이 지방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 거대한 위상, 그 거대한 편리, 그 거대한 우월, 그 거대한 계급 격차를 여기에서 일일이 다 묘사하지 않겠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은 낙원이다. 서울이 오직 소수에게만 닿을 수 있는 절망적인 꿈이 되는 것은, 바로 그곳이 낙원이기 때문이다.

 

3.     대안은 없는가?

A.     “서울은 좋은 도시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나도 좋은 도시를 만들 줄은 압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아무런 도시계획 사업도 하지 않고 있는데도 이렇게 많은 인구가 전국에서 모여들고 있습니다. 만약에 내가 멋진 도시계획을 해서 서울시가 정말로 좋은 도시가 되면 더욱더 많은 인구가 서울에 집중될 것입니다. 농촌 인구가 서울에 모여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서울은 좋은 도시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서울에 도시 계획을 하지 않고 방치해 두는 것은 바로 서울 인구 집중을 방지하는 한 방안입니다.”

-       윤치영, 서울시 국정 감사 시 답변

 

“서울시의 현재 인구는 약 350만 정도입니다. 해마다 30만명의 인구가 증가합니다. 광주시 인구수와 맞먹는 인구가 매년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 인구 증가를 막아야 합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진출해 올 사람은 각 도지사의 사전허가를 받고 서울에 들어오기 전에 다시 서울시장의 허가를 받는, 그런 입법조치를 연구해 주십시오. 그런 법률이라도 만들지 않으면 누가 서울시장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       윤치영, 1964년 2월 6일 국회 내무위에서.

-       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서울 격동의 50년과 나의 증언 4, (한울, 2003), 180P

 

이상의 인용은 13대 서울시장, 윤치영의 발언이다. 지금 읽어보면 흥미로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서울이 ‘좋은 도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는 곧바로 박정희에게 경질 당했고, 그 후임으로 온 14대 서울 시장은 ‘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진 김치옥이었다.

“서울은 좋은 도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라는 기묘한 저 외침은, 국토불균형 발전이라는 너무 본질적인 문제점에 해당하는 너무 본질적인 해결책이다. 그 해결책은 너무 본질적이기에 실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당시에도 불가능했고, 지금에서는 말도 안 된다. 서울은 이미 너무 좋은 도시가 되었다.

서울 집값을 떨어뜨릴 수 있는 대안은 바로 이러한 윤치영의 관점에서만 가능하다. 서울을 살기 힘든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그저 장난삼아, 그러한 정책들을 공상하곤 했다. 서울 집값을 잡을 수 있는 정책 말이다. 열거 해보자면 이렇다. ㄱ. 서울권의 모든 대학을 경기권 바깥으로 이전할 것. ㄴ. 서울권 내에서는 모든 종류의 프렌차이즈를 금지할 것. ㄷ. 서울권의 모든 혐오시설들을 가능한 도심지에 집중할 것…. 한마디로 말해, 서울을 살기 어렵게 만드는 모든 조치들.

그렇다. 이 모든 조치들은 우스운 헛소리이며, 완전히 불가능하다. 그 물리적 실현 가능성은 제쳐두고서라도, 진심으로 이러한 조치를 취하려는 정권이 있다면, 한국 국민들은 당장에 정권을 교체할 것이다. 마치 박정희가 윤치영을 교체 했듯이 말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서울 시민을 적으로 상정하는 정책들이다. 그렇기에 있을 수 없는 정책이다. 서울 집값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근원적인 이유가 이곳에 있다. 적이 국민이라는 점. 피해자와 가해자가 하나라는 점. 높아진 서울 집값에 신음하는 가난한 신혼부부가 서울 집값을 올리는 주범이라는 점. 청약에 당첨된 자만 집값 상승의 주범이겠는가? 당연히 그곳에 몰려들어 줄을 섰던 모든 이가 주범이라 할 것이다. 그들의 사랑이 있기에 서울의 집값은 견고하다.

서울의 집값이 얼마나 견고한 지 알아보기 위해 사고실험을 한번 해보자. 서울에 대지진이 일어나 거의 모든 건물이 무너지고 서울 시민 대부분이 죽었다고 치자. 이 경우 서울 집값이 떨어질까? 물론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일시적일 것이다. 2000만 명 정도 죽었을 것이므로, 서울에는 소유자 없는 공지가 꽤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 주인 없는 땅들이 국가의 소유로 귀속된 후 공매로 나오게 된다면, 그 서울 땅들이 헐값으로 팔릴까? 아니면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입찰을 할까? 입찰할 것이다. 그 순간조차 대한민국 국민들은 “서울 땅은 오른다.” 라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며, 또 그 믿음에 따라 서울은 재건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은 엄청난 속도로 재건될 것이고, 집값은 다시 엄청나게 오르게 될 것이다. 현실은 사상의 그림자일 뿐이다. 물리적인 서울이 초토화가 되어도 사람들이 서울이라는 관념을 유지하고만 있다면, 대지진 이후에도 서울은 재건된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처럼 방사능으로 영원한 불모지가 되지 않는 한 말이다.

하지만 서울이 비싼 이유는 서울이 사랑스럽기 때문이라는 이러한 분석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것은 아마도 틀린 분석은 아니겠지만 무용한 분석일 것이다. 특히 대안을 마련하는데 말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탓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의 최선이기 때문이다. 이 정부는 역대 어떤 정부보다도 대중의 목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들은 대중을 적으로 돌리는 정책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서울 집값을 하락 시켜야만 한다. 이 양립할 수 없는 두 상황 속에서는 가상의 ‘적’을 만드는 것이 최선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들은 상기에서 말한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한다. 어차피 피상적인 방법이므로. 그럼 어찌 해야 하는가?

 

B.      천도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나는 무척 절망했다.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시장 참여자들이 서울 집값은 항상 오른다고 믿는 한, 서울 집값은 항상 오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진정으로 서울 시민을 적으로 돌리는 정책을 펼칠 수도 없다. 또한 이제와서 국토 균형 발전을 이룰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게 아무도 없단 말인가? 마치 궁지에 몰린 쥐가 유일한 탈출구를 찾듯, 결국 나는 천도에까지 생각이 미칠 수밖에 없었다.

천도는 계속해서 치솟을 서울 집값에 대한 유일한 완화책일 것이다. 물론 그것은 완화책이지 해결책이 아니다. 모든 관공서와 정부청사가 세종시로 이전한다고 하여도, 서울의 집값이 떨어지진 않으리라. 다만 수도라는 위상이 한풀 꺾이며, 그 오름세가 둔화될 가능성은 있다. 천도 역시 미봉책인 것이다. 천도라는 극약처방으로도 이러한 미미한 효과밖에 기대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 문제가 얼마나 견고한 것인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남은 방법이 천도뿐이다. 그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기이다. 천도 계획은 이미 세밀한 부분까지 모두 끝나 있지만 여러 정치적 이슈와 저항으로 인하여 그 실행이 미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결국 천도는 이루어지리라. 서울 집값 문제에 대한 이 절망어린 무력감을 나보다는 정책 입안자들이 훨씬 더 강하게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천도는 국토의 불균형발전을 해소할 것인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천도가 되어도, 향후 몇 십 년 안에 지방은 모두 소멸할 것이며, 서울과 대전을 잇는 경부고속도로 라인을 따라 거대한 도시들이 연쇄된 메갈로폴리스가 서울=한국이 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본다면, 천도란 규모가 큰 형태의 신도시 개발, 다시 말해 서울의 확장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서울은 다시 한 번 더 커지는 것이다.

 

4.     맺는 말

만인이 원하는 것은 늘 악취를 풍긴다.

- 니체

나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경제학적 바탕을 알고 있으며, 그 이론에 동의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 이론들이 실패하는 것을 보며 나는 절망했다. 이 글은 그에 대한 감상에 불과하다. 남에게 권할만한 의견이 아니다. 특히나 만약 정책 결정자들이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다면, 그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이 의견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외에 다른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내가 “모든 시장 참여자들은 서울의 집값은 항상 오른다고 믿는다”라는 명제를 피부로 느꼈던 순간은 역설적으로 재작년과 작년에 잠깐 있었던 대폭락의 공포가 팽배하던 몇 달이었다. 그 당시 문재인 정부의 강경한 여러 조치들로 인하여 서울의 거래가 완전히 동결되었다. 그리고 많은 전문가와 유튜버들이 서울 집값의 폭락을 예언하였다. 나는 그 예언을 믿지 않았지만, 묘하게도 엄마는 폭락을 믿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엄마의 믿음이란 아주 묘한 것이었다.

 “아파트가 곧 폭락한다고 하니 준비하고 있어야겠다. 수서 아파트가 4억까지만 떨어지면 참 좋겠구나. 하나 더 사게.”

 나는 엄마의 그 희망을 들으며, 서울의 집값이 절대로 떨어지지 않으리란 것을 확신했다. 그 당시 강남 수서아파트의 가격은 7~8억이었다. 난 저것이 4억으로 떨어지는 세계를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옆에 9500세대의 헬리오시티 공급 물량이 터지고, 폭락의 공포가 팽배하고, 문정부의 적대적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그 한가운데에서도, 수서아파트는 급등했다. 그 기간 동안 거래가 동결되었을 뿐, 가격은 유지되었다. 엄마는 아쉬워하셨다. 그리고 엄마야 말로 서울 아파트 시장의 참여자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아주 선명하게 보여준다. 폭락은 매수 기회일 뿐이다. 모두가 그렇게 호시탐탐 폭락을 기다리고 있는 시장에서 가격이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가 없다.

아아, 나는 서울에 올라가 강남을 거닐 때마다 이 땅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생각한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을 그렇게나 갈망하며 쳐다보고 있는지, 강남 땅에서 흘러 넘치는 황금은 그저 그 사랑의 물질적 구현체일 뿐이다. 나는 그 넘실대는 사랑을 막을 방법을 상상할 수가 없기에 절망하였다. 그렇기에 이것은 수필이다. 나는 내 의견이 틀렸길 바란다. 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이 많다. 어딘가 경제 붕괴를 수반하지 않으면서 서울 집값을 하락시킬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 양성숙 편집위원

임재영 주주통신원  epalflc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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