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켜놓고 딴 일을 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라 방송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온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가 맑고 청아하게 들려온다. 어느 순간 그 가운데 낮고 부드러운 음성이 섞인다. 목소리가 나를 잡아끈다. 귀가 번쩍 뜨여 화면으로 눈을 돌리니 눈을 지그시 아래로 깔고 알 수 없는 엷은 미소를 짓고 있는 성악가는 검은 턱시도 차림에 나비 타이를 매고 있다. 외형은 순간, 점점 목소리에 빨려든다. 가슴이 콩콩 뛰기도 한다. 홀린 듯 목소리에 빠져있는데 노래가 끝나자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지며 사회자가 나와 안드레아 보첼리라고 소개한다.

이미 꽤 이름이 나있었던 성악가였나본데 난 그때 그가 누군지도 몰랐고 노래도 처음 들었다. 그 다음날로 레코드 가게로 달려가 '로만자'란 카세트 테입을 샀다. CD도 있었지만 카세트 테입으로 듣는 걸 더 좋아해 테입으로 샀다. 아마도 테입이 늘어질 때까지 들었던 거 같다 ㅎㅎ. 그뿐인가 인터넷에서 그의 노래 파일을 얻을 수 있으면 무조건 다운받아 모아두었다. 듣고 듣다가 좋아진 곡들은 한 장의 CD로 구웠다. 1번 트랙에 오른 곡이 '대지의 노래(Canto della terra)'다.

Time to say goodbye는 그 당시 방송 연예, 도전 골든벨 프로에서 수도 없이 들을 수 있었고 거리에 나가도 흔하게 들려오던 곡이다. 이 곡도 멋지긴 하다. 하지만 나는 '대지의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 때면 이 곡을 틀어놓고 캄캄한 방에 울려퍼지는 노래 감흥을 홀로 즐겼다. 아마도 6개월 이상 오랜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들었을 것이다. 잠들기 전까지 반복해서. 어느 날은 왜 이 곡에 빠지는지 이유를 나름 찾기도 했는데 이 노래와 사랑에 빠졌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이없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진정이었다. '대지의 노래'란 곡과 보첼리 목소리의 궁합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나를 사로잡아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든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래서 사랑에 빠졌노라고.

노래는 처음에 여리고 부드럽게 시작한다. 동이 트고 태양빛이 서서히 열리는 것처럼. 그러다 막바지에 이르면 보첼리의 목소리도 최고조에 이르고 빛이 터져나와 온누리에 퍼져 대지를 뒤덮는 곡절에서는 숨이 막힐 듯하다. 그리고 보첼리의 고음 클라이맥스와 뒤를 잇는 합창의 어울림은 극적이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처럼.
 

보첼리의 '대지의 노래' 동영상을 찾다 또 하나의 진주를 발견했다. 정필립이 부른 '대지의 노래'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ssooky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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