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 셋이서 강화도를 찾았다. 소풍 전 날 밤같이 잠을 설치고 맛있다는 동네 커피 집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3잔을 텀블러에 담아 약속장소로 갔다. 코로나시대 여행을 위해 1톤 장난감을 몰고 나온 안전무는 입이 심심할까 웨하스를 준비했다. 둥글게 생긴 웨하스가 질기다. 이렇게 질긴 웨하스를 먹고 난 후에는 꼭 이를 닦아야한다고 종합병원 치과 한과장이 한마디 한다. 날이 참 좋다. 옆에서 달리던 쌍용서 만든 군용 지프를 보고는 군대시절 이야기가 한참 오고갔다. 먼저 강화전쟁박물관을 찾았다. 실내관람은 제한되어 밖만 보고는 고려궁지로 향한다.

고려궁지

한과장이 고려 무신정권 말기 대몽항쟁역사를 자세히 설명해 준다. 드라마 무인시대에 나온 박노식 아들이 무슨 역을 맡았다고 하면서 재미나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 시절 대기업 해외주재원이었던 안전무는 신기하게 듣는다.

고려궁지
고려궁지

아쉽게도 강화성공회 성당도 출입이 제한되어 담 너머로 구경하고 강화도령 철종이 살았던 용흥궁으로 발길을 옮겼다. 여기서도 한과장은 철종과 흥선대원군 촌수를 비롯해서 조선왕조 가계도를 알려주었다.

강화성공회성당
강화성공회성당

왕자정에서 고려궁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었다. 묵밥, 콩비지, 젓국갈비가 다 맛나다. 다음 행선지를 이야기 하다가 대구 교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내가 원래 향교가 있던 동네를 교동이라고 했다고 대구도 그렇고 강화도 서울도 그렇다고 하니 문경출신 한과장이 문경읍에서는 교촌이라 한단다. 지석묘를 잠시보고 교동도로 향했다.

지석묘
지석묘

운전하는 안전무대신 내가 그의 폰으로 듣고 싶은 노래를 찾아 같이 들으며 갔다. 서유석의 가는 세월을 듣다가 내가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를 선곡했다. 비슷한 시기에 퇴직한 안전무와 나는 삼십 년을 일하다가 직장에서 튕겨 나와 길거리로 내몰렸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백수라 부르지 월요일에 등산 가고 화요일에 기원 가고~~~ ‘란 가사에 공감하며 따라 부른다. 한과장은 물레방아의 순이생각이 듣고 싶단다. 고등학교 시절 명절 때 고향 가서 여자 친구에게 들려주려고 열심히 연습한 노래란다. ’물가에 마주 앉아 사랑을 그리며 속삭였네 우리 꿈을 내일이면 만날 그 날이 돌아오건만 얼마나 변했을까나 우리 순이야 설레임에 내 마음은 벌써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네 순이 생각에~~~~‘ 이렇게 정겨운 옛 노래를 흥얼거리며 교동 대룡시장에 닿았다. 황해도 연백분들이 바다 건너 고향이 보이는 이 곳에 정착하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오랜 시장골목이 오늘 보니 관광객이 몰리면서 많이 변해 있었다.

교동도 대룡시장
교동도 대룡시장

작은 시계방은 그대로였다. 주인 할아버지는 2016년 돌아가셨지만 가게는 그대로 두었다. 안전무가 나에게 아버지 생각나겠네 한다. 우리 아버지는 황해도 벽성군에서 대구로 피난 나와 교동시장에서 시계방을 하셨다. 교동도 시계방보다도 좀 작은 조그마한 시계방에서 손님들 시계를 수리해 주셨다.

2015년 대룡시장 시계방
2015년 대룡시장 시계방

진열장안에 보이는 늘어나는 시계줄로 시계는 없는 팔찌를 만들어 작은 손목에 채워주시곤 하셨다. 2년 전 이사하며 다시 찾아 울먹했던 아버지 시계공구 주머니가 생각났다. 꿈에도 그리시던 고향에 못가보시고 돌아가신 지도 이제 30년째다.

아버지가 쓰시던 시계공구
아버지가 쓰시던 시계공구

망향대에서 바다 너머로 북한이 보였다. 저리 가까이 같이 사는데 자유로이 오고갈 때를 손꼽아 기다려 본다.

교동도 망향대
교동도 망향대

교동도를 떠나 전등사를 찾았다. 전등사 매표소 아저씨가 표 3장 달라는 말만 듣고 나에게 고향을 물어보신다. 대구라니 자기도 대구라며 어디에 살았냐고 다시 물어보신다. 한과장이 교동이라고 대답했다. 아저씨는 불로동에 사셨단다. 아저씨는 매표소 안에서도 늘 고향이 그리웠던가 보다.

전등사
전등사

무싯날인데도 전등사를 찾은 사람이 많았다. 아버지가 무싯날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셨다. 난 그제 평일을 말하나보다 했는데 얼마 전 장이 서지 않는 날 즉 無市이란 걸 알았다고 했더니 안전무가 무시로와는 다르구나 한다. 고구려 때 처음 만들어진 고찰과 큰 나무들을 보고 나오며 매표소 아저씨께 늘 건강하시라고 인사하고 전등사를 떠났다.

전등사 큰 나무
전등사 큰 나무

아름다운 석양이 보이는 횟집에서 아쉬운 소풍을 마무리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일상으로 돌아왔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박효삼 편집위원  psalm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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