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하루 전날, 그러니까 지난 2월 25일 장인어른 기일을 맞아 경남 산청에 다녀왔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데 하늘은 온갖 잡것으로 시야가 부옇다. 미세먼지까지 자욱해서 더 흐릿흐릿하다. 비룡 분기점을 지날 때쯤 빗방울이 보이더니 덕유산 휴게소에 이르자 빗살이 제법 굵어졌다. 아무래도 아버님은 몹시 헝클어진 삶터를 보고 싶지 않으신가 보다. 환한 보름달은 이미 글렀다. 청승맞기도 하지, 이튿날 아침까지 밤새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처남은 방앗간으로 시장으로 전전하더니, 병풍과 제례기를 준비한다. 아내와 처남댁은 제물(祭物)을 마련하느라 종일 부산하다. 그 와중에도 육전에 막걸리를 내온다는 것을 한사코 물렸다. 특별히 할 일도 없고 우두커니 앉아 있으려니 괜히 민망하다. 마을 한 바퀴 돌고 오겠다고 밖으로 나왔다. 여기에서도 선생 노릇을 하려면 준비를 해야 한다. 먼저 차 안에서 상차림과 제법(祭法), 그리고 지방 쓰는 법을 두루 검색했다. 두세 번 더 되짚고 나서 차 밖으로 나왔다. 오후 3시께, 봄비인 줄 알았더니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고 어째 좀 스산하다.

 

문 닫힌 마을회관

마을회관이 보인다. 마을의 한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 눈에 띈다. 문이 잠겨 있다. 태극기를 중심으로 왼쪽에 새마을기, 오른쪽에 노인회기가 나부낀다. 정면 상단에 ‘점촌마을회관’이란 글자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고 ‘점촌경로당’이란 나무 명패도 걸려 있다.

현관 옆에는 ‘무더위 쉼터, 한파 쉼터 겸용’이란 말과 함께 연락처가 적혀 있다. 여느 집보다 냉난방 시설을 고루 갖춘 모양이다. 무턱대고 전화를 걸었다. 이장이나 노인회장을 떠올렸는데 뜻밖이다. 산청군청 안전건설과 직원이라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쉬는 날이 따로 없을 정도로 바쁘다면서도 귀찮아하지 않고 친절하게 응대해 준다.

 

다목적 회관이다. 경로당이요, 무더위 쉼터요, 한파 쉼터요, 독거노인들의 또 다른 삶터이다.
다목적 회관이다. 경로당이요, 무더위 쉼터요, 한파 쉼터요, 독거노인들의 또 다른 삶터이다.

 

산청군 오부면 내곡리 점촌마을.

그러니까 법정리는 내곡리(內谷里)이고, 행정리가 점촌(店村)이다. ‘점촌’이란 지명은 점토를 많이 생산하던 데서 유래한다. 약탕관이나 질솥 등을 만드는 옹기 공장이 있었다는데, 구체적으로 어디쯤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산청은 아직까지 질 좋은 세라믹용 고령토의 70% 정도를 생산하고 있다. 산청은 전통적으로 조선백자와 같은 도자기를 만들던 곳으로, 이곳의 고령토는 점토의 수축과 점력이 좋아 ‘산청토’라고도 불린다. 산청군에서는 2011년부터 특별히 고령토를 활용하여 ‘항생제 대체용 미네랄 블록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즉, 고령토를 활용하여 소의 염분 보충에 필요한 나트륨 블록을 생산하고, ‘튼튼소'라는 자체 브랜드를 개발함으로써 농가 소득을 증대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산청 고령토와 듀라힛이 결합한 나노점토 1800, 소에 좋은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 튼튼소 고령토 미네랄 블록 등 다양한 고령토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출처 : 고령토RIS사업단 홍보용 영상(2016. 1. 25.) 캡처
산청 고령토와 듀라힛이 결합한 나노점토 1800, 소에 좋은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 튼튼소 고령토 미네랄 블록 등 다양한 고령토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출처 : 고령토RIS사업단 홍보용 영상(2016. 1. 25.) 캡처

원래 각종 장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며 생산 활동을 한 마을을 점촌이라고 했다. 자연스럽게 점촌은 토기·유기·철기·옹기를 생산하는 마을이나 광산촌이 많았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지금도 옹기점 등이 많아서 ‘점촌(店村)’ 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 많다. 산청군 단성면의 또 다른 점촌마을을 비롯하여, 문경•함양•경산•진주•울산•아산•청원•옥천•보령•공주•진안•화순 등 전국 곳곳에 점촌(店村 또는 粘村)이 있다. 서울의 강동구 암사동에도 광주분원과 함께 도자기 생산으로 유명한 ‘점말’이 있었다. 강동문화원에 따르면 점말에서는 시대에 따라 필요한 술독, 장독, 새우젓 독, 항아리, 화분, 화로, 연탄 박스, 토관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점말’은 곧 점촌의 다른 이름이다.

 

또 다른 쉼터, 머구실정

회관 옆에 ‘머구실停' 이 있다. 정자 안쪽에 적힌 ‘신축 내역'을 보니, 2011년 5월 31일 준공한 것으로, 조점순 할머니가 오래 살던 집터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딸 권옥식이 마을에 희사하여, 그 집을 헐고 면에서 지었다. 토지는 민씨 문중에서 희사했다. 종이에 적어 코팅해서 걸었지만, 결코 그 뜻이 바래지진 않는다. 코팅이 벗겨지면 새로 달려나….

머구실은 오동나무를 뜻하는 경상도 말이다. 이곳에서는 오동나무를 머귀나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머귀나무의 열매를 머구실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실제로 머귀나무는 오동나무와 전혀 다른 나무다. 아무튼 점촌마을이 예전에 머구실이었는지, 아니면 집터를 내놓으신 할머니 호가 머구실 댁이었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

값진 교훈을 되새긴다. 어머니 사시던 터 기꺼이 내놓으니 후손 모두 걱정 탐욕 사라져 좋고, 먼저 가신 어머니는 머잖아 점촌 사람들 다시 만나 인사받기 바쁘시겠다. 전생에 무슨 연 있어 내가 오늘 예서 비를 피하는구나.

 

마을회관 바로 옆에 있는  쉼터, 머구실停
마을회관 바로 옆에 있는 쉼터, 머구실停

 

오부면사무소 직원은 필요 이상으로 까탈스럽게 반응했다. 무엇인가 물으면 다짜고짜 ‘모른다.’, ‘개인 정보다.’ 라면서 마지못해 이장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이분도 코로나 때문에 지쳤나 보다. 뿌루퉁히 볼멘 표정이 역력하다. 이에 견주어 유진기 이장은 목소리부터 굵고 나지막하다. 궁금한 것 일체를 조근조근 알려주다 말고, 당신이 73세라고 했다. 점촌에서는 가장 젊다는 걸 강조한다.

 

여기에도 사람이 산다

주민이 상주하는 집은 13호다. 4~5명이 사는 집도 있지만, 대개 한두 분만 살고, 그중에서 세 분은 요양원에 계신다. 주민 총수는 대략 25명인데, 두 채를 소유한 사람도 있다고 덧붙인다.

 

보아하니 빈집이다. 마늘은 누가 심었을까? 생리 장해가 제법 심하다. 잎 끝에 황백색의 반점이 보이고 말라죽어 간다. 지금 한창 웃거름도 주고 관리를 해야할 텐데…. 벽도 담도 마늘도 모두 고단해 보인다.
보아하니 빈집이다. 마늘은 누가 심었을까? 생리 장해가 제법 심하다. 잎 끝에 황백색의 반점이 보이고 말라죽어 간다. 지금 한창 웃거름도 주고 관리를 해야할 텐데…. 벽도 담도 마늘도 모두 고단해 보인다.

 

평소 군에서 얼마간의 보조금이 나온다. 회관 운영비와 기름값이다. 마을 행사 때 모여서 회의도 하지만, 주로 혼자 사는 노인들끼리 함께 밥을 지어먹을 때 이용한다. 그런데 오나가나 코로나 탓이다. 특별히 군에서 열라 말라 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주민이 자율적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눈치가 보여 근 일 년 가까이 열지 않고 있다.

최고령 어르신은 92세다. 주민 대다수가 80이 넘는 분들이라 부녀회장 또한 그동안 80대가 맡았는데, 하도 말이 많아 지금은 젊은 사람으로 교체했다. 연세를 물으니 73세란다. 역시 점촌에서 제일 젊다고 했다. 이장과 부녀회장 모두 73세 청년들인 셈이다.

 

산청군 오부면 사회단체협의회는 2016년 11월 29일, 점촌마을 경로당에 TV와 냉장고, 전기밥솥 등 230만 원 상당의 가전제품을 기증했다. 사진 : 사진 경로당 기증 산청군청 누리집 갈무리
산청군 오부면 사회단체협의회는 2016년 11월 29일, 점촌마을 경로당에 TV와 냉장고, 전기밥솥 등 230만 원 상당의 가전제품을 기증했다. 사진 : 사진 경로당 기증 산청군청 누리집 갈무리

 

빈집이 빈집은 아니다

빈집이 더러 있다. 둘이 살다가 혼자 남고 그분마저 가시면 빈집이 된다. 나를 구매자로 아는지 매물은 없다고 했다. 개중에는 자식이 주말에 내려와서 텃밭을 일구기도 하나 한결같이 허름허름하다. 구멍 뚫린 지붕과 허물어진 담은 기본이요, 마당은 물론 집 안 구석구석 생전에 사용하던 살림살이들이 제멋대로 나뒹군다.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너나없이 고작 노인 내외가 살거나 독거노인들이다. 손포가 있어야 집도 고치고 할 텐데 그럴 여력도 기력도 없어 보인다.

 

 

대밭이 우거진 언덕바지 집.

폐가처럼 보이지만 사람이 사는 흔적이 보인다.

경운기가 보인다. 본체는 어디로 갔을까? 논밭은 물론 마실을 갈 때 애용하셨겠지. 어쩌면 게이트볼을 치러 가실 때도 늘 함께하던 다목적 자가용이었을 텐데....

 

저녁 연기가 피어오른다

비 오는 날, 밥 짓는 연기가 솔솔 피어오른다. 누가 사실까? 영감님 내외가 사는 집이라면 좋겠다. 영감님은 켜켜이 쌓아 둔 장작을 한 개씩 빼서 불을 지피고, 할머니는 오곡밥에 갖은 묵나물을 무쳐 저녁상을 내는 정재를 그려본다. 이 집에도 감나무가 보인다. 생전에 장인어른은 “집집이 고종시(高宗杮) 한두 그루씩은 다 있다.”고 하셨다.

“고종시는 보통 감보다 알이 잘고 씨가 없으며 맛이 달다. 잘 익으면 껍질이 선명한 홍색을 띤다. 지리산 자락의 차가운 기류가 흘러 들어와 밤에는 얼고, 낮에는 녹는 현상이 반복되는 특수한 자연환경으로 당도가 한층 증가되어 맛 좋고 질 좋은 곶감이 생산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조선 시대에 고종황제에게 덕산곶감을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도롯가를 개인 주차장으로 활용하다

마을 어귀에 다목적 광장이 있다. 제법 널찍하다. 운동기구도 서너 개가 보인다. 대형버스가 돌릴 수도 있는 공간이지만 평소 거의 텅 비어 있다.

길가에 트럭이 서 있다. 누가 밭에 일하러 나온 줄 알았다. 가까이 다가서니 아니다. 갓길에 버젓이 차를 세워 두었다. 간이 주차 창고에 차량용 그늘막까지 씌운 걸 보니 어엿한 차고지다. 하늘도 바람도 암말 하지 않는데 깜냥에 서울물 좀 먹었다고 예까지 와서 웬 뻘짓인가. 그래, 그게 무슨 대수냐? 누구처럼 요리조리 기웃기웃 밑두리콧두리 들춰보다니……. 아서라, 서울놈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넉넉한 시골 정경이렷다!

 

나만의 주차장에 차를 모셔 놓고 주인장은 어디 가셨나? 마늘, 쪽파, 시금치, 상추 모두 파릇파릇하다.
나만의 주차장에 차를 모셔 놓고 주인장은 어디 가셨나? 마늘, 쪽파, 시금치, 상추 모두 파릇파릇하다.

 

모교는 25년 전에 사라지고

걸어서 10분 거리에 오성분교가 있었다. 1954년 3월 1일 개교하여 졸업생 1,818명을 배출하고, 1996년 3월 1일 오부초등학교로 병합된 뒤로 폐교가 됐다. 그날 이후로 아이들 보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벌써 24년 전 일이다. 현재는 주민복지회관과 보건소로 사용하고, 주민들이 풋살이나 게이트볼을 즐기는 곳으로 바뀌었다.

 

오성분교(폐교). 출처 : 두산백과(두피디아 포토커뮤니티) 갈무리
오성분교(폐교). 출처 : 두산백과(두피디아 포토커뮤니티) 갈무리

 

 

타고 남은 재는 다시 퇴비가 되고

공용 소각장이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아마 쓰레기는 각자 해결하는 모양이다.

타다 만 비닐이 날리고 있다.

 

 

담벼락에 걸려 있는 그리움

객지 나간 자식한테 편지라도 오려나?

하마 올까 학수고대하던 주인은 어디 가고

까치발 들고 혼자 담 밖을 기웃거린다.

기다리다 망단해서 목이 빠졌나?

오늘도 해는 저물어 가는데

기다리는 체부(遞夫)는 오지 않고

뱃속 속창시 훤히 드러나도록

머리 풀고 가슴까지 풀어 젖힌 우편함!

묵직한 돌멩이가 어미 가슴을 짓누르는구나.

 

 

사다리가 세워진 집이 보인다. 주춤거리며 기웃거리는데 매애애애 소리가 들린다. 생각 없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니 흑염소다. 밥 주러 온 주인인가 싶었던지 고개를 내밀고 앞발을 들어올리면서 격하게 반긴다. 덩달아 새끼 두 마리도 함께 반긴다. 줄 게 없어 미안했다.

 

묵은 고춧대는 절로 생울타리가 되고, 염소들이 오르내리던 둔덕은 반질반질하다. 애처로이 날 바라보던 아이들이 삼삼하다. 풀밭에서 맘껏 뛰놀면 좋으련만 배는 곯지 않았는지... 어미, 새끼 제발 헤어지지 말고 오래도록 함께 살아가면 좋겠다.
묵은 고춧대는 절로 생울타리가 되고, 염소들이 오르내리던 둔덕은 반질반질하다. 애처로이 날 바라보던 아이들이 삼삼하다. 풀밭에서 맘껏 뛰놀면 좋으련만 배는 곯지 않았는지... 어미, 새끼 제발 헤어지지 말고 오래도록 함께 살아가면 좋겠다.

 

소도 가고, 영감님도 가고

마구간이 있던 곳으로 보인다. 한쪽이 탁 트여 있고 밖에는 쇠죽을 쑤던 가마솥과 양은솥이 보이고 풀을 나르던 삼태기도 그대로 온전하다. 안쪽을 들여다보니 시멘트로 만든 구유가 보이고 쇠파이프 3개가 박혀 있다. 아마 소를 3마리까지 치셨는가 보다. 여물을 썰던 녹슨 손작두가 벽에 서 있다. 아직은 예리하다. 볏짚은 물론 어지간한 콩대•깻대 모두 단숨에 잘렸으리라.

좁은 마구간에서 새끼라도 낳는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노인 내외가 밤잠 설쳐 가며 마른 볏짚 깔아주고 군불 지피고 외투 입히고 초유 받아 먹이는 등 갖은 뒤치다꺼리 하느라고 아무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당신들 아침은 거르더라도 새벽부터 쇠죽을 쑤고 해끝에 또 쑤어 여물바가지로 퍼먹였을 것이다. 그래도 송아지 팔아 자식들 부쳐 줄 생각에 두 내외는 잠자리에서 오지게 웃었을 것이구만. 주인 없는 텅 빈 마구간으로 빗물이 흐른다.

 

소 3마리를 치던 곳으로 보이는 마구간. 여물을 쑤던 가마솥, 볏짚을 썰던 손작두, 각종 풀을 나르던 삼태기가 보인다. 
소 3마리를 치던 곳으로 보이는 마구간. 여물을 쑤던 가마솥, 볏짚을 썰던 손작두, 각종 풀을 나르던 삼태기가 보인다. 

 

절로 빛을 뿜는 고샅길

고샅길 뛰놀면서 순사 놀이를 즐겼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지면 순사, 이기면 도둑놈이다. 무작정 뛰어다녔다. 시작부터 얼척없는 짓이다. 순사가 술래니, 도둑놈이 상전이다. 순사는 혼자고 도둑은 여럿이다. 짓궂은 도둑들은 순사를 따돌리고 행패를 부렸다. 니 집 내 집이 따로 없었다. 남의 집 칫간에 숨다가 오줌통에 첨벙 가랑이가 빠지고, 대밭으로 도망가다가 나무끌텅에 걸려 넘어지고, 벗겨진 고무신 한 짝을 찾아 온동네를 누비다가, 신작로 옆 또랑에 빠져 허우적대던 어린 시절!

격세지감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고샅길 샅샅이 포장하고 페인트를 칠했다. 흰색 선이 선명하다. 좁은 길, 경운기를 끌다 보면 빠지기 쉬운데 달 없는 한밤중에도 나동그라질 일 없겠다.

 

왼쪽 축대의 돌은 점점이 흰색투성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새똥이다. 길가에도 새똥 천지다. 자그마한 관목 더미 속에 동네 새들이 다 모이나 보다. 동그라미는 길에 떨어진 새똥을 확대한 것이다.
왼쪽 축대의 돌은 점점이 흰색투성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새똥이다. 길가에도 새똥 천지다. 자그마한 관목 더미 속에 동네 새들이 다 모이나 보다. 동그라미는 길에 떨어진 새똥을 확대한 것이다.

 

아담한 저택, 오부교회

점촌에서는 아마 가장 큰 집인가 보다. 아담한 교회가 아주 크고 넓어 보인다. 신도가 몇 분이나 될까? 이 마을 분 모두 다녀도 25명이니 10명 안팎일 것이다. 그것도 70~80대 노인들뿐이리라.

오랫동안 조치원에서 개척교회를 일구던 친구가 떠오른다. 생활이 안 돼 야간 대학에 강사로 나가면서 외국 서적 번역하고, 종교음악을 전공한 부인까지 가내 부업에 매달렸다. 말년엔 큰 교회 부설 요양원장으로 그때가 제일 여유로웠다고 했다. 일 년에 200여 명이 소천하시니, 날마다 눈 감겨드리는 일이 일상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불의의 사고로 재작년에 하늘로 돌아갔다. 정년 70을 걱정하더니 왜 그리 빨리 갔는지....

 

 

표고버섯일까? 뒤란에 버섯이 자라고 있다. 영감님은 경운기를 타고 농업기술센터에 가서 버섯 재배 기술을 익혔을 것이다. 종균 얻어다가 온 정성 다해 기르시겠지. 아무렴, 혼자 드시려고 그랬을까? 할멈 주고, 자식 주고, 손주들에게 먹이려고 나름 저렇게 정성을 다하는 거겠지. 저리도 곤약스럽게 가꾸는 거겠지....

 

할머니, 내 더위 사 가세요

할머니께서는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하셨다. 날밤을 새워야 한다고 하면서 등잔불을 환하게 켜고, 마루랑 헛간에까지 밤새 호롱불을 써놓으셨다. 이튿날 아침 눈썹이 하얘졌다면서 울상을 짓던 동생은 이내 밀가루를 털어내면서 씩씩거렸다. 잠투정 섞인 동생을 놀리면서 도망 다녔다. 머리카락 위에 앉은 실지렁이같은 그스름은 유난히 까맣고 자르르르 윤기가 돌았다. 입으로 불거나 손으로 털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동생이랑 마당으로 나가 그스름을 떼어 준다고 머리를 드밀다가 막판에 서로 밀치면서 제 손으로 북북 문지르고 말았다. 그 손으로 바지를 털어냈다. 소매로 훔친 콧물까지 시커멨다. 하얀 광목 베갯잇을 비롯하여 횟대에 걸어둔 옷가지까지 사람이든 뭐든 모두 그스름투성이였다. 우리는 밤마다 담배 연기를 맡으면서 지독한 석유 냄새에 시달려야 했다.

할머니께서는 볶은 땅콩과 깍둑썰기한 무를 내셨다. 사정없이 깨물어 먹어야 일 년 내내 부스럼도 안 생기고 무사태평하다고 일러 주셨다. 밤이 되자 집 안에 있던 몽당빗자루 한데 모아 모깃불을 놓으셨다. 불길을 뛰어넘으면서 “성황님네 당산님네, 성주님네 조왕님네, 지발 우리 새끼들 더위 좀 사 가시오이.”라고 주문을 외셨다. 우리는 멋모르고 그저 “내 더위 사가라.”고 외치면서 불놀이를 즐겼다.

꿈의숲 아트센터에서 지역 두래패들이 참여하는 전통한마당사진 : KBS 뉴스(입력 2013.02.23. (07:35)
꿈의숲 아트센터에서 지역 두래패들이 참여하는 전통한마당사진 : KBS 뉴스(입력 2013.02.23. (07:35)

 

모두가 엊그제 같은데 아련하다.

풍요의 원점으로 여기던 대보름날이다. 비구름 속에 숨어버린 보름달처럼 동제니 줄다리기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쥐불놀이를 즐기던 아이들은 씨가 마르고, 달집을 태울만한 볏짚도 보이지 않는다.

 

사료용 볏짚 덩어리로 ‘곤포 사일리지’라고 한다. 곤포(梱包)란 “거적이나 새끼 따위로 짐을 꾸려 포장하는 일 또는 그 짐”을 말한다. 사일리지(silage)는 “농작물을 베어서 저장탑(silo)이나 깊은 구덩이에 넣고 영양제, 소화제, 발효제를 섞어서 만든 사료”이다. 한 개의 무게가 보통 500㎏ 안팎인데 농가에서는 사룟값 부담을 덜고, 내다팔 수도 있어 2000년대 초반부터 빠르게 확산했다고 한다. 한편, 볏짚을 논에 뿌려두면 유기물 함량이 높아져 땅심을 회복함으로써 수확량이 증대된다.
사료용 볏짚 덩어리로 ‘곤포 사일리지’라고 한다. 곤포(梱包)란 “거적이나 새끼 따위로 짐을 꾸려 포장하는 일 또는 그 짐”을 말한다. 사일리지(silage)는 “농작물을 베어서 저장탑(silo)이나 깊은 구덩이에 넣고 영양제, 소화제, 발효제를 섞어서 만든 사료”이다. 한 개의 무게가 보통 500㎏ 안팎인데 농가에서는 사룟값 부담을 덜고, 내다팔 수도 있어 2000년대 초반부터 빠르게 확산했다고 한다. 한편, 볏짚을 논에 뿌려두면 유기물 함량이 높아져 땅심을 회복함으로써 수확량이 증대된다.

 

인사성 밝은 길냥이

개 짖는 소리는커녕 닭이나 돼지를 치는 집도 없다. 들리는 건 그저 빗소리뿐이다. 그런데 유난히 고양이가 많다. 알고 보니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녀석들은 때 되면 기웃거리고 헛간에 누워 주인 행세를 한다고 한다. 아침을 먹고 있는데 봉창 너머로 고양이가 어른거린다.

'나, 여기 있어요.

여기에도 목숨이 있다구요.

혼자 먹지 말고 나눠 주세요.

남은 거라도 달게 먹을 테니...'

 

 

아침을 먹고 있는데 봉창에 고양이가 보인다. 쫓지 않고 두고 보니 가지가지 포즈를 연출한다. 밥을 먹다 말고 숨죽이며 찍었다. 녀석은 마치 모델이라도 된 것처럼 한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측 맨 아래는 실제 주인공, 길냥이.
아침을 먹고 있는데 봉창에 고양이가 보인다. 쫓지 않고 두고 보니 가지가지 포즈를 연출한다. 밥을 먹다 말고 숨죽이며 찍었다. 녀석은 마치 모델이라도 된 것처럼 한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측 맨 아래는 실제 주인공, 길냥이.

 

시골 정경은 언제 봐도 평온해 보인다....

저 아랫녘에도 마을이 보인다. 듬직하고 포근한 산자락 아래 행여 누가 떼어놓을까 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멀리서 보니 스무 채 남짓 겉보기엔 모두 제법 근사하다. 그런데 동북 방향 붉은 지붕은 축사로 보인다. 하필이면 왜 저리 높은 데다 지었을까? 아무리 소규모 축산 농가라고 해도 나오는 폐수를 어찌할까? 말로는 자체 퇴비화 어쩌구 하면서 공공 처리시설에서 수거한다는데 과연? 게다가 사람들이 알뜰한지 콤바인이 살뜰한지 모르지만 논들이 참 맑다. 어쩌면 이삭 한 모숨 보이지 않고 마냥 정갈해 보일까?

비구름에 가려진 이웃 마을은 평온해 보인다. 사람들 모두 온화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조용 살아가지 않을까? 내가 서 있는 점촌마을도 요정들이 사는 동화마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멀리서 보면.

 

 

편집 : 박춘근 객원편집위원(keun728@hanmail.net)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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