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두 번씩 식물을 탐사하는 모임이 있다. 한 번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서울의 고궁이나 가까운 산 또는 수목원을 탐사한다. 그리고 버스를 대절해서 함백산이나 산막이옛길 등 조금 먼 거리를 찾아간다. 지난해에는 코로나 때문에 가까운 곳만 서너 차례 탐사했다. 40대부터 80대에 이르기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회원은 60여 명인데 탐사 때마다 보통 20~30명이 참석한다. 학생을 가르치던 교직자 출신이 많고, 지금도 글쓰기 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 , 제주도와 대구를 비롯해서 멀리 벨기에(Belgium)에서도 꽃소식을 전해 주는 분들이 있어, 앉아서 천 리를 꿰뚫어 보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예서 제서 꽃소식이 올라온다. 그중에서도 집 마당과 옥상에서 오만 가지 기화요초를 기르는 풀닢 식물연구가(, 고양고등학교 교사), 하루에도 두세 번씩 제주도 소식을 전해 주는 운풍 제주야생화연구가(, 제주 대정서초등학교 근무)의 알림이 도드라진다. 314일과 15일만 해도 서른 가지가 넘는 꽃이 올라왔다. 이쯤 되면 앉아서 천 리를 통찰할 수 있으니, 좌견천리(坐見千里)의 경지에 이르렀다. 무얼 더 바라랴.

 

1줄 : 동강할미꽃, 뿔족도리풀, 얼레지, 산자고(山慈姑, 까치무릇) / 2줄 : 중의무릇, 모데미풀, 분꽃나무, 현호색 / 3줄 : 나도바람꽃, 미선나무, 분홍노루귀, 청노루귀 / 4줄 : 섬진달래(섬만병초), 크로커스(crocus), 흰털괭이눈, 매화 / 5줄 : 개구리발톱, 돌단풍, 개별꽃, 탐라현호색(Hallasan corydalis), 향기별꽃(자화부추), 벌깨냉이(Hallasan bittercress, 제주황새냉이), 패모(貝母), 고사리.
1줄 : 동강할미꽃, 뿔족도리풀, 얼레지, 산자고(山慈姑, 까치무릇) / 2줄 : 중의무릇, 모데미풀, 분꽃나무, 현호색 / 3줄 : 나도바람꽃, 미선나무, 분홍노루귀, 청노루귀 / 4줄 : 섬진달래(섬만병초), 크로커스(crocus), 흰털괭이눈, 매화 / 5줄 : 개구리발톱, 돌단풍, 개별꽃, 탐라현호색(Hallasan corydalis), 향기별꽃(자화부추), 벌깨냉이(Hallasan bittercress, 제주황새냉이), 패모(貝母), 고사리.

 

위 사진은 314~15일 사이에 단톡방에 올라온 사진이다. 1~416종은 부천에 사는 풀닢 선생이 집 마당과 옥상에서 가꾸는 식물이고, 58종은 제주도에 사는 운풍 선생이 집 주변에서 담은 것이다.

 

평소 주변에서 보기 힘든 아이들이다. 그 가운데 몇 개만 특징을 간략하고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이하 국생종)에서 검색한 자료를 덧붙인다.

 

뿔족도리풀 : 꽃받침 갈래의 끝이 뾰족하게 꺾여 올라간 뿔 모양이다.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정명은 족도리풀로 통합되었다. 족도리풀을 검색하면 자생 식물은 8종으로 뿔족도리풀은 나오지 않는다.

 

산자고(山慈姑) : 파 모양의 비늘줄기와 2장씩 나는 줄 모양의 잎이 무릇과 닮았다. 또 꽃잎에 자주색 줄무늬가 있어 알록달록한 무릇이란 뜻으로 까치무릇이라고도 부른다. 일명 까추리’, ‘물구라고도 한다. 비늘줄기를 光慈姑(광자고)라 하고 약용한다.

 

섬진달래 : 일본에만 제한적으로 분포하는 일본 보호 식물로 알려져 왔으나, 2013년에 남해안 도서 지역에 수백 개체가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두드러진 특징은 꽃잎 외관에 털이 있고, 꽃잎 색깔이 노란색을 띠는 백색이란 점이다. 진달래와 달리 꽃눈에서 여러 개의 꽃이 함께 나온다(양종철, 국립수목원 소식지, 201310월호). 일반적으로 섬만병초라고도 하나, 추천명은 섬진달래이다.

 

흰털괭이눈 : 산지 숲속의 습지, 계곡 주변 및 사면의 돌이 많은 축축한 곳에 무리 지어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 하부에는 갈색 털, 상부에는 백색의 퍼진 털이 밀생한다. 잎 표면과 잎자루에 털이 있다. 우리나라 거의 전역에 분포하는 한반도 고유종이다. 이 종은 털괭이눈에 비해 옆으로 뻗는 줄기가 없고, 종자에 돌기선이 있어 구별되고, 8개의 수술과 열매의 맨 꼭대기에 화주(花柱 : 속씨식물에서 암술머리와 씨방을 연결하는 부분. 둥근 기둥 모양으로 정받이할 때 꽃가루가 씨방으로 들어가는 길이 된다.)가 남지 않는 점에서 털괭이눈 및 제주괭이눈과 구분된다(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 다양성). 국생종에서 괭이눈을 검색하면 자생이 총 12종으로, 흰털괭이눈을 따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탐라현호색 : 2013년에 우리나라 자생식물 표본 2만여 개와 슬라이드 필름 수백만 장을 후학을 위해 기증하고 가신 전의식 선생과 함께, 탐라현호색을 찾아 제주도를 두루 섭렵한 한봉석 선생은 말한다.

탐라현호색과 좀현호색은 배다른 형제로 보아야 한다. 탐라현호색의 분류 코드는 포에 선모가 밀생하는 특징이 있고, 제주에만 분포하는 종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한편 좀현호색은 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국생종에서 검색하면 추천명은 탐라현호색, 영명으로는 한라산현호색(Hallasan corydalis)이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북한명을 좀현호색으로 등재하고 있다.

 

벌깨냉이 : 추천명은 벌깨냉이(Hallasan bittercress), 일명 제주황새냉이라고 한다.

 

패모(貝母) : 패모는 추천명이다. 검정나리, 검나리, 조선패모라고 한다.

 

전의식 선생은 1991년에 초·중·고교 생물 담당 교사들의 모임인 한국식물연구회를 결성, 2013년 돌아가실 때까지 회장으로 봉사하셨다. 유족들은 선생의 뜻을 기려, 우리 자생식물 4천5백여 종 가운데 3천5백여 종의 표본 2만여 점은 대학에, 식물 1,000여 종의 슬라이드 필름 수백만 점과 장서 4천여 권은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에 무상으로 기증했다. 1984년부터 원로 식물학자 고 이창복 박사 문하에서 식물분류학을 익히고, 전국의 명산과 도서 벽지를 누비며 자생 식물을 연구해 온 오병훈 식물학자는 전의식 선생을 ‘우리 땅 풀포기 하나까지 사랑했던 식물학의 참스승’이라고 추념했다. 사진 출처 : 한겨레신문(2021. 3. 17.)
전의식 선생은 1991년에 초·중·고교 생물 담당 교사들의 모임인 한국식물연구회를 결성, 2013년 돌아가실 때까지 회장으로 봉사하셨다. 유족들은 선생의 뜻을 기려, 우리 자생식물 4천5백여 종 가운데 3천5백여 종의 표본 2만여 점은 대학에, 식물 1,000여 종의 슬라이드 필름 수백만 점과 장서 4천여 권은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에 무상으로 기증했다. 1984년부터 원로 식물학자 고 이창복 박사 문하에서 식물분류학을 익히고, 전국의 명산과 도서 벽지를 누비며 자생 식물을 연구해 온 오병훈 식물학자는 전의식 선생을 ‘우리 땅 풀포기 하나까지 사랑했던 식물학의 참스승’이라고 추념했다. 사진 출처 : 한겨레신문(2021. 3. 17.)

 

오늘 물향기 수목원에 나오신 회원 여러분, 참으로 즐겁고 고마웠습니다. 아름다운 꽃을 찍는 여러분의 모습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손수 만든 떡을 돌리신 분, 견과류 간식을 내놓으신 분, 헤어지기 아쉬워서 역 앞에서 빠짐없이 커피를 돌리신 분 등 모두 고맙습니다. ‘아직도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 줄 사람만 있다면 얼마든지 만들겠다.’라고 웃음을 짓던 분의 따뜻함이 전해옵니다. 진실로 아름다운 꽃은 우리 회원 여러분이었습니다. 시골촌노인 드림.”

 

올해 첫 탐사는 지난 13()에 있었다. 함께하지는 못했다. 간밤에 올라온 글이다. 자칭 시골촌노인을 표방하는 분은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가르치던 분이다.

 

왜 들어가세요? 그냥 여기서 찍어요.”

발밑에도 꽃이 있어. 안 보여요?”

사진쟁이도 품격이 있어요. 당신 때문에 우리가 욕을 먹는다니까. 좋은 카메라 들고 사람이 왜 그렇게 가벼워요!”

 

맨 뒤에서 무거운 사진기를 메고 따라오는 분이다. 허튼짓이라도 했다가는 여지없이 호통을 들어야 한다. 망구를 넘어선 어르신의 꾸지람 앞에 누군들 이기죽거리는 표정이라도 지을까? 그랬다가는 십상,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 격으로 된통을 당해야 한다. 굳이 어르신이라고 하지 말자. 생물학적인 나이로 가름할 일은 더욱 아니다. 이 시대의 어른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남의 잘못을 지나치지 않고 꾸지람할 수 있는 어른 말이다. ‘시골촌노인말마따나 어른답게 살았으면 좋겠다. 낫값도 못하는 노인이 많다. 80이 넘어도 손가락질 받을 짓을 한다면 그는, 애들이 대놓고 농지거리를 해도 할 말이 없는 늙은이일 뿐이다.

 

다음은 313~14, 단톡방에서 오간 말이다. 말한 이들을 편의상 바람꽃이라고 한다. 바람꽃은 그늘지고 습기가 많은 곳을 좋아하는 봄꽃이다. 참고로 국생종에 따르면 한반도에 자생하고 있는 바람꽃은 모두 17종이다. 바람꽃(Aenemone)의 어원은 그리스어 ‘Anemos’ 에서 온 것으로 바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해마다 꿋꿋이 꽃을 피워내는 바람꽃은 어딘가 우리네를 닮았다.

 

바람꽃 1 : “요즘 참새가 사라지고 없어요. 왜 그런지요? 직박구리가 잡아먹는 거 직접 보았어요.”

 

이런 경우를 멘탈 붕괴라고 해야 할까? 듣도 보도 못한 말이다. 갑자기 멍해진다. 직박구리가 참새를? 바람꽃 1은 그끄러께 여름, 선자령으로 탐사 갈 때 새로 펴낸 수필집이라면서 한 권을 나눠주던 작가다. 훤칠한 키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잠시나마 연세를 잊게 했다. 숨가쁘게 검색했지만 보이는 게 없다. 답답하다. 근데 왜 직박구리가?

 

그 순간 한 분이 사진을 올렸다.

산수유에 앉은 직박구리, 그리고 감을 쪼아 먹는 참새다. 멋진 순간을 아주 재치있게 잘 잡았다.

 

 

 

사진을 본 회원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바람꽃 2 : 사진 넘 잘 찍으셨어요^^ 꽃 잘 먹는 직박구리가 좋아하겠어요.

 

바람꽃 1 : 직박구리가 산수유꽃 잘라 먹지요.

 

바람꽃 2 : 어머나, 새 사진 찍기 어렵던데요. 귀여운 참새

 

바람꽃 1 : 이제 겨우 정신 차리고 돋보기 쓰고 보니 귀여운 참새! 그 동네에 직박구리가 없어 다행입니다. 우리 동네에 오랜만에 3마리가 찾아왔는데 직박구리가 다 ~ ㅋㅋ 참새가 그리워요.

 

바람꽃 3 : 참새의 천적이 직박구리네요~

 

바람꽃 1 : 제가 직접 봤어요.

 

: (바람꽃 1에게) 선생님, 몰라서 여쭙니다. 직박구리가 참새의 천적인가요? 참새를 잡아먹나요?

 

바람꽃 1 : 직접 봤어요. 직박구리 입에 참새 털이 한가득. 우리나라 어디든 직박구리 삑삑거리는 곳에 참새는 사라진답니다. 직접 봤다니까요. 무서워서 날지도 못하는 참새, 불쌍했지요.

 

: 그렇군요. 직박구리가 참 무서운 아이로군요. 고맙습니다.

 

바람꽃 4 : 직박구리는 나무 열매를 먹고 사는 것으로 알았는데요. 주목 열매를 좋아했거든요! 왜 갑자기 직박구리가 ^^

 

바람꽃 1 : 각자 편하게 생각하세요. 짹짹 소리가 좋아, 쌀을 뿌려 주니 10여 마리가 놀러 와요. 어느 날, 뒷집 옥상의 참새를 구경하는데 직박구리 두 마리가 나타나고, 다음 순간 직박구리 입에 참새털이 가득, 참새 세 마리는 벌벌 떨고 도망도 못 가고, 결국 직박구리의 입은 참새털이 가득, 참새 발은 뻣뻣해서 남겨놓는다지요.

 

바람꽃 4 : 나도 잘 모르지요. 우주의 모든 것은 계속 진화하니까요^^

 

바람꽃 1 : 뭐예요? 내가 없는 말 만들지는 않아요!

 

바람꽃 4 : 현재, 직박구리의 먹이에 대하여 잘 모르기 때문에 선생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것 아닙니다^^

 

화조도 1(사진 제공 : 죽산)
화조도 1(사진 제공 : 죽산)
화조도 2(사진 제공 : 죽산)
화조도 2(사진 제공 : 죽산)

 

: (바람꽃 1에게)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생태계가 오묘해서 알다가도 모를 일이 참 많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오래전 고성에 산불이 났을 때 다람쥐가 개구리나 뱀을 잡아먹는 영상을 볼 때만큼이나 처절하게 느꼈답니다. 탐구할 거리를 제공해 주신 선생님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다음은 조류 전문가 두 분 개인적으로 사사하는 탐조활동가 1인과, 회원 수가 32백여 명인 한국의 새라는 밴드지기 1- 에게 자문해서 알아낸 사실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김석민 : 직박구리는 잡식성이라 과일, 열매, 곤충들의 육식성 먹이도 먹습니다. 참새를 사냥해서 먹는 걸 보진 못했는데, 다치거나 죽은 참새는 충분히 먹을 수 있습니다. 참새를 먹는 모습을 보셨다면,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다만, 직박구리의 주식이 작은 새를 사냥해서 먹는 것은 아닙니다. 직박구리가 참새를 먹었다?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직박구리가 참새를 잡아먹어서 참새가 줄어든다? 이건 현재로선 증거가 없습니다. 어떤 관련 논문도 연구도 없습니다. 참새의 개체 수 감소는 서식지 감소와 먹이 부족, 먹이에 남아 있는 농약 잔류 물질 등으로 인한 호르몬 교란 등이 원인으로 나와 있습니다.

 

김청하 : 참새를 잡아먹는 직박구리라... 신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게 사실이라 한들, 직박구리 때문에 참새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참새가 둥지를 만들 만한 건물의 공간이 부족하고, 벌레의 개체 수가 줄어들고, 서울 도심에도 간간이 보이는 황조롱이 같은 포식자의 위협 등으로 줄어든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남천 열매를 좋아하는 직박구리(사진 제공 : 이종복)
남천 열매를 좋아하는 직박구리(사진 제공 : 이종복)

 

그만큼 혼미한 생태계 탓이리라.  하지만 특별한 체험을 일반화하는 오류는 모두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동백꽃을 좋아하는 직박구리(사진 제공 : 이종복)
동백꽃을 좋아하는 직박구리(사진 제공 : 이종복)

 

한국고전 가운데 직박구리가 등장하는 자료는 총 12건이다. 그 가운데 조선 시대 윤기(尹愭 : 1741~1826)가 용문산의 경치를 읊은 시가 있다. 때는 춘궁기라 몹시 고단한 어산사(魚山寺)의 상황이 애처롭게 그려져 있다. 그의 무명자집(無名子集) 시고 제1책에 나오는 시(), ‘용문산 유람(遊龍門山)’ 전문이다.

 

피죽새가 우는구나, 조팝꽃 사이에서 / 稷粥禽鳴粟飯花

푸른 등 넝쿨을 지팡이로 헤치고서 / 遙指白雲峯上月

백운봉(白雲峯) 위에 뜬 달 저 멀리 가리키네 / 竹筇斜披碧藤蘿

 

어산사의 중이 용문사를 찾은 까닭은 춘궁기로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백운봉은 용문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호로로 피죽하는 울음소리가 멀건 피죽을 호로록 마시는 소리처럼 들린다는 피죽새가, 밥알 모양으로 소복이 핀 조팝꽃 사이에서 우는 모습을 빗대었다. 피죽새가 곧 직박구리이다. 피죽새의 원문은 稷粥禽(피 직 / 죽 죽 / 새 금)’으로, 우리말의 으로, ‘으로, ‘으로 한 글자씩 환치하여 만든 단어이다. 또 조팝꽃의 원문은 粟飯花, 우리말의 (조 속)’으로, ‘()’으로, ‘로 한 글자씩 환치하여 만든 단어이다.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강민정 <>, 2014)

 

한편, 유몽인(柳夢寅 : 1559~1623)어우집(於于集)새 울음소리 13(조어십삼편(鳥語十三篇)’에 나오는 호로로피죽새胡盧盧稷粥鳥의 앞 부분은 아래와 같다.

 

피죽새 피죽피죽 하고 우니 / 稷粥鳥呼稷粥

피죽도 먹을 수 없어서라네 / 稷粥不可食

흰 밥도 누런 기장도 먹을 만한데 / 白飯可餐黃粱可喫

어찌하여 괴롭게도 호로로피죽 하고 우나 / 何爲苦呼胡盧盧稷粥

(이하 생략,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장유승최예심 <공역>, 2018)

 

직박구리를 호로로직죽조(胡盧盧稷粥鳥)로 표현했다. 새의 울음소리를 음차한 것이다. 눈뜨고 당하니 뜬눈으로 지새우길 몇 날 며칠일까. 죽어서도 눈감지 못하고 구천을 맴도는 천추원혼이 도처에 얼마일까. 그악하기 그지없는 세리들의 횡포가 막다른 지경에 일러, 직박구리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헐벗은 백성을 불러일으켰을 법도 하다.

 

아서라, 피죽새야!

백성을 치대고 들볶으며 등골 빨아먹던 세리들을 보고 자란 탓이려니 한다마는 흉내낼 게 따로 있지. 눈만 뜨면 먹고 자고 놀면서, 니가 좋아 둥지 틀던 은인이 아니더냐? 뼛속까지 사무친 상처를 보듬지는 못할망정, 갈라지고 패인 몸뚱어리 헤집으며 수액이나 빨고 자빠졌냐? 꽃이나 탐하던 그 입으로 말해 보렴, 건달처럼 거드럭대지 말고.

 

그나저나 직박구리라도 쳐다볼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예나 지금이나 사흘에 피죽 한 그릇도 못 얻어먹은 듯한사람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이는 곧 쪽박까지 꿰차려는 오리(傲吏)들이 넘치는 세상임을 반증한다. 그래서 오늘도, 직박구리는 우리네 삶을 풍자하며 울부짖는다.

 

직죽직죽 호로록직죽

피죽피죽 호로로피죽

 

수액을 즐겨 먹는 직박구리(사진 제공 : 성문 유인규)
수액을 즐겨 빠는 직박구리(사진 제공 : 성문 유인규)

 

편집 :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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