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죽 쒀서 개준다’는 속담만큼 의표를 찌르는 말도 없는 듯하다. 이는 기껏 일을 도모했는데 엉뚱한 사람이 실리를 챙기는 현상을 말한다. 사실 죽 쒀서 개를 줄 수도 있으나 애초의 목적이 그게 아니었기에 무척 실망스럽게 일이 진행된 것이다.

그와는 다른 속담으로 ‘아끼다 똥 된다’는 속담도 있다. 순수 영역을 고수하려다가 죽도 밥도 안 되는 경우이다. 특정영역에서 자신의 영역을 순수하게 유지하고 지키고 싶은 나머지 문을 굳게 걸어 잠그다보니 그 분야의 발전이라든지 소통이 막히는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현상은 사회 도처에서 발견된다.

인문학 하는 사람은 개나 소나 다 인문학의 대가인냥 설친다며 손사래를 치고, 시 쓰는 사람은 요즘 개나 소나 다 시를 쓴다고 푸념하며 대중의 섣부른 접근을 경계한다. 진보 쪽에 있는 사람은 개나 소나 다 진보인냥 떠든다며 진정한 진보란 무엇인지 나름의 철학을 펼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증권사 직원들은 이미 일찌감치 전문가의 자리를 포기한지 오래다. 주식투자 상담을 하다보면 고객들이 거의 다 주식의 귀재, 투자의 귀재인 것처럼 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고객의 의견을 청취하고 고객의 뜻에 따라 투자의 업무 절차만을 상담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정보는 넘쳐나고 전문 자료는 어디서나 쉽게 검색되며 문학작품은 하루가 다르게 홍수처럼 쏟아진다. 전문가의 영역은 점점 줄어들고 순수보다는 응용과 보편성이 더 중시되는 요즘이다. 정치든 문학이든 투자든 모든 영역에서 사람들은 준전문가로 행세하고 싶어 한다.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또는 순수 영역을 고수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보편적인 시각으로 마음 문을 여는 것이 아닐까싶다.

▲ 이것이 ‘시’인가 아닌가? 황당 시로 대중에게 웃음을 주는 <이환천 문학살롱>에서 '커피믹스' / 한겨레기사(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22358.html) 중에서

보편성을 지향하는 문학은 대중의 공감과 공유를 먹고 자란다. 순수 영역을 진정 사랑한다면 나를 밟고 넘어가라는 식의 고루한 자세보다는 마음을 열고 대중과 호흡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대중과 함께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죽 쒀서 개주는 것은 그래도 누군가에게 쓸모가 되고 유익한 결과라도 낳지만 아끼다 똥 되는 것은 그 고집으로 인한 무용성이라는 점에서 아무 쓸모도 유익함도 없게 되는 것이다.

아끼다 똥 되는 것보다는 죽 쒀서 개를 주는 것이 그래도 나은 것일까?

아니면 죽 쒀서 개를 주느니 아끼다 똥 되는 게 그래도 나은 것일까?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심창식 주주통신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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