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우 칼럼-도망치고 싶을 때 2부

사진출처 : 픽사베이(저작권프리)
사진출처 : 픽사베이(저작권프리)

우리는 평화로운가? 국제적·대외적 시국을 떠나서, 마음의 평안에 대해서 질문하고 싶다. 현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결핍된 혹은 부정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처럼 느껴진다. 끊임없는 경쟁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약육강식의 논리, 약한 것은 약점이 되고 쉬는 것은 도태가 되는, 획일화된 기준에 의해 우열이 나뉘고 사람의 가치가 매겨지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양적 풍요 속에서 질적 기근에 시달린다. 우리는 누구나 힘든 삶을 마주하고, 좌절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만약 당신이 도망치고 싶다고 느낀다면, 지극히 정상적이며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이자 신호이기도 하다. 이번 칼럼에서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상실된 리듬을 회복하고, 홀로 있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각자의 삶에는 리듬이 존재한다. 이는 자신과 타인이 살아가는 사회나 환경과의 협상 혹은 조율이기도 하다. 이러한 부분에서 다른 생명체와 인간이 다른 점은 스스로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관습·법·기술·경제적·정치적인 도구 등으로 환경을 조성한다. 학생으로서 주어진 리듬, 직장인으로서 주어진 리듬, 주부로서 주어진 리듬 등 하루, 한 주, 한 달을 계획할 때 자신이 속한 환경에 맞추어 행동을 설정한다. 그러나 모든 경우가 자의적으로 환경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현대인의 병폐가 드러나는 원인은 자연스럽지 못한 환경에 의해 삶을 통제당하기 때문이다.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창조했지만, 개개인의 보통 사람은 환경을 통제하거나, 자신의 리듬에 맞게 살아가기 힘들다.​

그렇다면 왜 강요된 리듬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일까? 필자는 기술발전과 그에 비롯되는 시장권력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발전된 기술과 그것을 향유하기 위한 자본, 이에 나누어지는 계급, 가깝게는 상사나 관료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을 비관적인 시각으로만 정의할 수는 없다. 이렇게 창조된 것들은 필요하다. 기술과 상업이 발전한 사회는 쾌락 혹은 편의를 제공한다. 나아가 더욱 편리하고 유용한 것들이 끊임없이 새롭게 등장한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단면이 있으며, 유익한 힘들은 그것이 필수불가결한 것 마냥 광고되고 포장된다. 실제로 풍족하지만 곳곳에서 생기는 불안과 결핍의 느낌은 사라지지 않고 지속된다. 더불어 정서적으로 평온하다고도 호언할 수 없다.​

미디어 매체는 계속해서 흥밋거리를 생산해낸다. 이러한 즐길 거리와 온갖 정보·이슈들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아가 SNS를 통해서 우리는 24시간 온라인 상태를 유지한다. 과거와 달리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이 분리되지 않으며, 끊임없이 소통한다. 그 방식은 일방적일 수도, 원치 않는 부분일 수도 있지만, 이와 같은 세상에서 분리된다는 것은 도태된다는 느낌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각 개인의 리듬은 다르기에, 이에 전도되어서만은 안 된다. 삶의 속도를 자신에게 맞게 조절하지 않으면,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에 종속되거나 자신의 리듬을 잃어버린 채로 살게 된다. 이는 마음의 평안을 잃고 불안하게 만들며, 결국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만약 지금 그렇게 느낀다면 당신은 ‘홀로 있기’가 필요할 것이다. 단 두 가지 질문으로 알 수 있다. 첫째로 당신의 생활은 평화로운가? 그렇지 않다면, 둘째로 단 하루라도 홀로 있어 본 적이 있는가? 여기서 홀로 있기란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닌 모든 소통망과 사회적 지위, 삶의 책임에서 벗어난 온전히 자기 자신과 상호작용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홀로 있기란 삶의 리듬을 이해하고, 되찾는 시간이다. 물론 모든 환경적 조건이 자신의 리듬에 맞추어져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놓친 박자를 바로잡는 시간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도 자신의 리듬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다.​

사회적 압박감은 홀로 있음의 가치를 무색하게 그리고 무지하게 느끼게끔 한다. 이에 더해 낭비 혹은 비생산적인 시간이라고 인식하게끔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저항할 줄 알아야 한다. 홀로 있는 시간이 없는 삶은 시든 꽃처럼 위축된 삶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홀로 있기란 사회적 자아가 들어갈 수 없는 자신만의 아이디어 혹은 지각과 감정이 발현되는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산책과 샤워하는 시간에 자신만의 영감이 떠오르는 경우도 위의 경우와 같다.​

캐나다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마이클 해리스는 작품에서도 홀로 있기를 강조한다. 기운을 북돋아주고 기억력을 강화시켜주며, 인식을 날카롭게 다듬어주고 창조성을 발전시킨다. 차분한 시간을 가지면 주의력은 깊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그는 무엇보다도 사회에 순응하라는 압박감을 덜어준다는 것을 최고의 장점으로 꼽았다. 삶의 열정, 결과에 대한 성취감, 주어진 것을 향유하는 것이 왜 자신에게 행복한 지에 대한 근원을 발견하게 해 준다. 즉,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깨닫게 해 주는 것이다. 그것이 삶의 리듬이다. 마라토너처럼 달리기와 뜀걸음, 호흡의 기술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결핍되기에 우리는 때때로 도망치고 싶음을 느낀다.​

필자는 이러한 사회적 압박감에 대해서 좋게 말하면 감수성이 풍부했고, 나쁘게 말하면 취약했다. 예민하고 버티기 힘들었다. 그래서 정해진 틀에서 일탈하는 것을 즐겨 했다. 주어진 제도와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했다. 당연히 범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홀로 있기를 매번 시도했으나, 스마트폰과 메신저, 주변 지인들과의 연결관계에서 단번에 벗어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더불어 일과 관련된 잡념들 그리고 뉴스와 세상의 사건들 심지어 스포츠 기사까지, 이미 반복되는 일상생활에 습관처럼 자리 잡은 것들이었다. 내가 택한 것은 스마트폰을 두고 1시간 정도 새로운 곳에서 산책하기부터 시작하여 자유로운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행가기 등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들은 나 자신을 찾는 것과 내 꿈 그리고 품은 가치들을 고찰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여행은 인생을 바꿨을 정도로 큰 경험이 되었다. 칼럼을 쓰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하루 이상을 홀로 있어본 적이 있는가? 이 두려운 도전을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두 하고 싶어 했지만, 하진 못했다. 그러나 한 번 도전을 해 본 사람은 그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박정우 주주통신원  justiceloveagain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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