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대학 시절 한 친구와 길을 걷다가 들었던 얘기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

내가 멀리 보이는 간판에 쓰인 글귀에 대해 뭐라 뭐라 중요하지 않은 얘기를 건넸을 때, 그 친구는 눈이 안 좋아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렌즈를 깜빡했느냐고 물었을 때, 그 친구는 흐린 채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맘때의 나는 다른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어쩐지 불안했다. 그 친구는 또래에 비해 은은한 자신감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흐린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와 같은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그 이유라고 내 마음대로 생각했다.

최근에 좋아하는 가수 이하이가 대학 시절 이 친구와 비슷한 얘기를 하는 걸 듣고 반갑고 기뻤다. 하이는 세상을 너무 깨끗하게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세상을 살면서 사소한 일들을 처리하는 데만 해도 선명한 시력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거나, 직장에서 일하거나, 운전하거나 하는 일들처럼. 시력이 낮으면 비가 내리는 밤길을 걸을 때 물웅덩이를 피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위험과 불편을 피하고자 안경과 렌즈, 수술로 시력을 교정한다.

시력이 높은 사람보다 낮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이 시대에서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선명하고,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바라보는 세상 이외에도 다른 세상이 있다고. 흐린 눈으로 바라봤을 때 더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고.

안경을 벗고 산책한 Mars(화성시) 탄도.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염하경 주주통신원  duagkru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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