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어렸을 적에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 말인즉슨 점점 신체가 바닥에 접촉하는 면적이 넓어진다. 그렇게 딱 안주하기에 십상이다. 그럴수록 관성력은 커진다. 누웠다가 바로 일어서기는 정말 힘들다. 탄허(呑虛) 스님(1913~1983)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첫잠에서 깨면 다시 눕지 마라.” 관성력에 붙들리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이해하고 싶다.

‘성철과 탄허’ 비교 책 낸 문광 스님 : “성철 스님이 에베레스트라면 탄허스님은 모든 것 품는 태평양” / 출처: <한겨레>, 2020.10.15.
‘성철과 탄허’ 비교 책 낸 문광 스님 : “성철 스님이 에베레스트라면 탄허스님은 모든 것 품는 태평양” / 출처: <한겨레>, 2020.10.15.

거칠게 이해하건대, 관성력은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힘이다. 움직이지 않으려는 힘이다. 쌀 포대 10kg짜리와 60kg짜리 중 어느 쪽의 관성력이 더 클까? 후자를 들어 올려 어깨에 들쳐 메기가 전자보다 훨씬 힘들다.

이사하려면 머리 아프다. 지금 이곳에서 사는 동안 맺은 여러 사회적 관계가 관성력으로 작용한다. 내가 맺은 관계는 나의 존재 방식이다. 이사하면,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형성해야 한다.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한편 한곳에 오래 살수록 살림살이는 늘어난다. 더불어 이사할 때 옮겨야 할 짐도 매년 점점 불어난다. 이삿짐 비용의 자릿수가 달라진다. 어쨌든 한곳에 오래 머물면 관성력은 더 커진다.

우리 사회에서 타파해야 할 관성 현상은 무엇일까? 곧 닥칠 내일을 살아가야 할 세대가 발길에서 부딪힐 걸림돌은 무엇일까? 얼른 생각하니, 깊이 박힌 바윗돌이 여섯 개쯤 보인다.

첫째, 산재(직업병 포함) 사망 현황은 ’공업화‘의 초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나간 50년은 헛되이 보낸 세월이었다. 1970년 11월 13일에 돌아가신 청년 전태일 열사께서 환생한다면, 아마도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현실이 산재 사망일 거다. ’노동·생명 제단에 바친 나의 소신공양으로도 부족하단 말인가?‘라고 그분께서 한숨짓는 듯하다. 이렇게끔 방치하거나 조장한 우리 사회 지배세력의 관성력에 대해 경탄하지(?) 않을 자는 누구이뇨. 아마도 상당수 유수한 언론이다. 거의 태무심(殆無心)에 가깝다. 황금 앞에선 모두가 그렇게 눈과 귀가 멀어지는가. 생명 경시 경향의 체질화이다.

서울노동인권복지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제17차 전태일 50주기 캠페인에서 코로나19 사태 속 노동자들의 고통 해소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행위극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출처: <한겨레>, 2020.10.28.
서울노동인권복지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제17차 전태일 50주기 캠페인에서 코로나19 사태 속 노동자들의 고통 해소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행위극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출처: <한겨레>, 2020.10.28.

둘째, 3농(농업·농민·농촌)은 영락없이 영(0)으로 수렴하는 중이다. 우리나라 공업화는 3농의 영화 과정이다. 서울의 흡입력과 지방의 원심력은 커졌다. 그런 관성력은 눈덩이 구르듯 커졌다. 그 과정을 멈추게 할 대응력이 존재하기나 한지 모르겠다. 농촌은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농민으로 이뤄진 촌락공동체이다. 3농의 영화는 종국에는 촌락공동체, 더 큰 공동체의 소멸로 이어지리라. 그런데 식량은 어떤 상황인가? 가축이 먹는 사료를 포함한 곡물자급률과 식용 목적의 식량자급률은 1995년 이후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이다. 곡물자급률은 1980년 56.0%에서 2019년 21.0%로 35.0%p, 식량자급률은 각각 69.6%에서 45.8%로 23.8%p 감소했다. 글로벌 초국적 곡물 4대 메이저 기업 ABCD(Archer Daniels Midland Company, Bunge, Cargill, Louis Dreyfus) 식량 유통망에서 어떤 연유로 우리나라가 배제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점증하는 기후위기와 코로나19 대유행과 같은 미증유의 대형재난 앞에서 우리의 식량주권과 식량자급력은 얼마나 탄탄한가?

2013년 5월24일 GMO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10여 개로 구성된 ‘GMO 반대 생명운동연대’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몬샌토코리아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 출처: <한겨레>, 2016.12.26.
2013년 5월24일 GMO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10여 개로 구성된 ‘GMO 반대 생명운동연대’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몬샌토코리아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 출처: <한겨레>, 2016.12.26.

한편 3농을 융합하는 허브(Hub), 즉 자전거의 바퀴통 역할을 하는 ’농협‘을 협동조합의 태생적 취지에 맞게 개혁하려고 역대 어느 정권이 노력했는가? 청문회에 나오는 사람이 즐겨 쓰는 말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 개혁은 역시나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도 들지 못했다. 3농에 대한 문제의식이 거의 없는 자칭 ’국민이 주인인 정부‘라 해도 잘못은 아니겠다. 아마도 농민은 국민 축에도 들지 못하는 그저 지나가는 과객인가보다. 여전히 ’농협‘은 내게 ’농업협동조합‘이 아니라 돈놀이하는 금융기관일 뿐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니, 농협금융지주, 농협은행, 농업생명보험, 농업손해보험 등이 우선 눈에 띈다.

요컨대 우리나라의 주류 세력은 농자천하지대본야(農者天下之大本也; 3농은 하늘 아래 크나큰 뿌리)라는 진리에 가까운 객관적 사실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효율성 논리에 갇혀, 농자천하지소말의(農者天下之小末矣; 3농은 하늘 아래 조그만 가지이니라)와 같은 주장을 관철해온 셈이다. 세계 패권국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셋째, 대부분의 학교는 사립이다. 정규교육의 입문단계인 유치원도 사립이 많다. 초등학교만 공립이 대부분일 뿐이다. 대한 독립운동 과정이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신생 독립국 시기에 드러났던 사립학교 설립자의 투철한 일꾼양성 정신과 사명감은 한국 자본주의의 고도화 과정에서 빛이 바랬다. 사립학교는 ‘사립’의 문자대로 관성력을 키워왔다. ‘사립’(私立)은 ‘사사롭게 선다.’이다. 私의 파자 집합은 {禾, 厶}. 말인즉슨 私는 볏단을 내 팔로 감싸 안아 내 것으로 한다는 뜻이다. 생래적으로, 사립학교에서 사회적 책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런 탓인지, 중·고 교육 현장에 비정규 교사가 적지 않고, 비정규 교수는 대학교육의 반절가량을 담당할 정도로 많다. 이 또한 오랜 관성이다. ‘사립’을 ‘민립’(民立)으로 전환하려는 개혁조치를 언제나 볼까? 시간은 자꾸 가는데 극단적인 초저출생에 따른 파국은 다가오는데, 정부 부처 서열 2위인 교육부와 교육부 장관은 어떻게 고민하는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혹시 문제에 대한 방치나 회피는 아닌가?

10일 조선대학교 공영형사립대 도입 효과성 검증 실증연구단이 교내 재정위원회 구성의 효과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조선대 제공 / 광주 조선대학교가 국내 첫 민립대학이라는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시민참관제도 등 이사회의 운영과 구성을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 출처: <한겨레>, 2020.4.16.
10일 조선대학교 공영형사립대 도입 효과성 검증 실증연구단이 교내 재정위원회 구성의 효과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조선대 제공 / 광주 조선대학교가 국내 첫 민립대학이라는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시민참관제도 등 이사회의 운영과 구성을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 출처: <한겨레>, 2020.4.16.

넷째, 의료 부문에서 공공의료의 비중은 높지 않다. 코로나19의 대유행 국면에서도 일부 대형병원과 의사는 돈벌이 논리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그럴 의지도 나타내지 않았다. 의료의 사적 전유(專有)가 심해지는 국면이다. 대한민국에서 이제 ‘생명’은 각자 개개인이 돈으로 사고파는 경제재(economic goods)의 범주에 들어갈 지경에 이르렀다. ‘무전유사 유전무사’(無錢有死 有錢無死), 즉 돈 없으면 죽고, 돈 있으면 죽지 않는다. 이런 비극을 예방하는 틀을 누가 만들어야 하는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는 정치인(politician)은 벌떼처럼 많아도 정치가(statesman)는 눈에 띄지 않아서 더 그렇다.

다섯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책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그 정책서비스를 수행할 기관을 설립하거나 선정한다. 정부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이 참 많다. 그런 기관이 많다는 현실은 마치 농산물 유통과정에서 중간상인이 많은 이익을 취한다는 불편한 현실과 유사하다. 한편 묘하게도 대형사고 후 정부조직도에 새로운 조직이 등장하거나 기존 조직이 확충되고, 혹은 정부산하기관이나 공공기관이 신설되어온 관성력도 줄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국민에게 필요한 정부의 서비스가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당사자에게 잘 전달되는지는 의문이다.

여섯째, 공과 사의 혼동(混同)이다. 공과 사를 섞어서 한가지로 본다. 말하자면, 공사동일체(公私同一體)의 의식과 행태가 적지 않다. 애당초 공사를 구분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익을 취할 때는 섞어서 생각하지만, 비용이나 부담이 발생할 때는 철저하게 구분한다. 이익은 전유(專有)하는 반면에 부담은 사회로, 남에게 떠넘긴다. 이는 가방끈이 길거나 신사임당 초상화를 많이 가졌거나 워낙 자리가 높아 아래가 보이지 않는 세력가에게서 관찰되는 현상이다. 이 또한 타파되어야 하나 그렇게 하기 어려운 매우 큰 관성력이다. 반면에 이퇴계 선생 초상화 또는 세종대왕 초상화를 주로 보는 사람이나 저 낮은 곳의 사람은 공과를 사를 혼동할 일이 거의 없다.

관성력은 통제받지 않으면 눈덩이처럼 굴러 커진다. 결국 그 끝은 자기 파국이다. 조선왕조 후기 국가 재정의 핵심인 삼정(전정·군정·환정) 문란의 누적적 관성 현상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우리 민족의 비극을 불러온 실마리였으리라. 암세포는 자기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숙주(宿主)를 서서히 죽이고 마침내 죽는다. 자기 파괴적이다. 암세포를 억제하고 도려내듯이 관성력의 누적적 작용은 면밀하게 통제되어야 한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각자는 일상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잠에서 깨면 다시 눕지 마라.” 탄허 스님의 말씀이다.


편집 :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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