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공산주의는 언제부터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됐을까? 기독교와 공산주의가 추구하는 가치는 별로 다르지 않다. ‘능력대로 일하고 필요한 만큼 공급받는 평등세상’이 그렇고 사유가 아닌 공유사상이 그렇다, 기독교가 추구하는 이상향인 천국과 공산주의의 이상향이 크게 다르지 않다. 원론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언제부터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앙숙(怏宿) 관계가 됐을까? 다르다면 창조설이나 무신론 정도겠지만 그것도 기독교의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

3월 4일 한겨레신문 그림판
3월 4일 한겨레신문 그림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어떨까? 정작 앙숙관계가 되어야 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찹쌀 궁합으로 공존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가치는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이요,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가치는 이윤의 극대화다. 돈벌이가 되는 일,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라면 살인무기인 핵무기생산도 불사하는 자본주의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오늘날 농산물 마피아들은 유전자 변형식품인 GMO도 불사하고 있지 않은가? 방위산업이니 군수산업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정치인들은 정치를 말할 때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고, 자본주의를 말할 때 경제민주주의를 말한다. 개발에 주석편자 경제민주화는 어디에 근거하는 것일까?

<경제민주화의 근거는...>

경제민주주의 또는 경제민주화는 '노동자•소비자•공급자•하청 업체 등 민중들이 폭넓게 포함된 공공의 이해 관계자'와 '기업의 이해 관계자'들 사이에서 합리적인 의사 결정 능력을 실행할 목적으로 제안된 '경제•정치 형태'이다. 우리헌법 『제 119조 ①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했고 했다 그러나 헌제는 “헌법 제119조 제2항 규정이 대한민국의 경제질서가 개인과 기업의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나, 그것이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질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어떻게 다른가?>

민주주의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며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다. 더 쉽게 말하면 나라의 주인이 백성이요,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는 정치다. 이런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이념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해 헌법 제 10조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화하기 위해 국민이 가지고 있는 정부와 입법·사법 등의 3권을 분리해 어린이나 여성, 노약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가치를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용어 중 하나이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 자본주의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 각 학자마다 용어의 정의 자체가 큰 폭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여러 자본주의의 공통점과 조건을 찾을 순 있어도 자본주의를 포괄하는 핵심을 정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흔히 자본주의를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체제’라고 말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자본주의도 산업자본주의인가, 금융자본주의인가 아니면 신자유주의인가에 따라 개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만 ‘팔아서 이윤을 얻기 위하여 생산하는 재(財) 즉 교환을 목적으로 생산되는 상품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체제..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 및 기업가 계급이 그 이익 추구를 위해 생산 활동을 하도록 보장하는 사회 경제 체제”를 자본주의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민주주의 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추구가 목표인 민주주의와 이윤의 극대화가 목적인 자본이 공존하는 사회... 두가치가 충돌하면 어떤 가치가 우선인가? 당연히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인 ’인간의 존엄성‘이 우선적인 가치여야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생존을 위한 자본주의 앞에서는 민주주의 이념은 뒷전이 된다. ‘1907만3438명의 근로자 중 산업재해자 수 10만2305명, 산재사망자수 2,142명’ 하루에 6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두고 인간의 존엄성을 말할 수 있는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기업유치를 위한 지자체가 내건 플래카드는 무엇을 말하는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열쇠는, 국민의 근로 기회의 제공과 인간다운 근로 조건의 확보에 있다.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지고, 국가는 근로자의 고용 증진과 적정 임금 보장에 노력해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 임금제를 시행해야 한다. 근로 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법률로 정하게 하고 있다. 또, 여자와 연소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그들의 근로에 대해서 특별히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근로자들에게 근로 조건의 향상을 위한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 교섭권, 단체 행동권을 부여하고 있다. 헌법을 생활 속에 실천하기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두어 약자를 보호하고 있다. 현실은 어떤가?

<민주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

법전의 권리조항과 현실은 동일하지 않다. 시장에는 생산수단(토지, 공장 등)을 소유한 자본가(부르주아지)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해 노동 이외에는 시장에 내다 팔 것이 없는 노동자(프롤레타리아)가 공존한다. 노동자는 노동을 자본가에게 팔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즉 노동자는 노동이라는 상품의 생산자이고, 자본가는 노동이라는 상품의 소비자인 셈이다. 노동자가 노동 이외에는 시장에 내다 팔 것이 없기에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임금 노동을 해야 하는 반면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아도 생존에 지장이 없다. 성년이 되면 대부분 노동자로 살아 갈 학생들에게 왜 헌법도 근로기준법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가?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김용택 주주통신원  kyongt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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