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조계사에서는 초파일 즈음하여 종이 연등을 달아 놓았었다. 색색의 플라스틱 등이 등장하기 전이다. 우유빛 한지로 팔각 등을 만들어 안에 초를 넣어 불을 밝혔다. 등은 사람 키보다 조금 높이 달아 고개를 쳐들면 촛불이 아련히 일렁이는 모습을 바라 볼 수 있었고 어둑해진 저녁 무렵 한지를 통해 비쳐나오던 불빛은 더없이 따뜻하고 그윽했다. 빼곡히 달린 등 아래로 거닐다 보면 촛농 세례를 받기도 해 손수건을 머리에 쓰고 다녔다. 바람이 조금 세게 불어대면 등에 불이 붙어 그걸 끄는 진풍경도 벌어지곤 했다.

플라스틱 등 사이에 두 개의 종이 연등이 그때 은은하고 운치 있었던 추억을 불러온다.

또한 종탑 누각에 올라 눈 아래 수없이 펼쳐진 연등을 내려다 보노라면
김지하 시인의 <초파일 밤> 이란 시가 마음 안에 절로 맴돌았다.

 

꽃 같네요
꽃밭 같네요
물기 어린 눈에는 이슬 같질 않네요
갈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저기 저 꽃밭
살아 못 간다면 살아 못 간다면
황천길에만은 꽃구경할 수 있을까요
삼도천을 건너면 저기에 이를까요
벽돌담 너머는 사월 초파일
인왕산 밤 연등,연등, 연등
오색 영롱한 꽃밭을 두고
돌아섭니다
쇠창살 등에 지고
침침한 감방 향해 돌아섭니다
굳은 시멘트벽 속에
저벅거리는 교도관의 발자국 울림 속에
캄캄한 내 가슴 옥죄임 속에도
부처님은 오실까요
연등은 켜질까요
고개 가로저어
더 깊숙히 감방 속으로 발을 옮기며
두 눈 질끈 감으면
더욱더 영롱히 떠오르는 사월 초파일
인왕산 밤 연등, 연등, 연등
아 참말 꽃 같네요
참말 꽃밭 같네요

 

올해 부처님 오신날 법문은 ...  ㅎㅎ

'집단 면역이 이루어질 때까지 마스크 꼭 쓰시고
백신 접종에 적극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ssooky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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