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처작주(隨處作主)와 수처작졸(隨處作卒)

머리로 사느냐 꼬리냐 사느냐 그게 관건입니다. 몸통으로 살 수도 있겠지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어떤 맘과 정신으로  살아야겠습니까? 거대한 업적을 쌓고 찬란한 족적을 남겨 수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삶을 추구해야 할까요? 언제나 경쟁의 선두에 서서 천하를 호령하는 담대한 삶을 지향해야 할까요?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지만 그럴까요? 양면적이기도 할 것입니다.

산책실에서 만난 소년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호미와 삽으로 돌을 캐며 놀고 있었다. 돌이 무슨 성분으로 되었는가를 조사한단다. 장래 지질학자나 인류학자가 되지 않을까? 그들이 꿈이 이루어지길.
산책실에서 만난 소년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호미와 삽으로 돌을 캐며 놀고 있었다. 돌이 무슨 성분으로 되었는가를 조사한단다. 장래 지질학자나 인류학자가 되지 않을까? 그들이 꿈이 이루어지길.

만인만물을 정복하여 정상에 서서 다수를 수하에 거느리고 사는 것과 약자들을 위해 후미와 음지에서 고통을 감내하며 사는 것 중 어디에 중심을 둬야 할까요? 이는 어른들의 솔선과 교육이 결정할 것입니다. 전자는 한 사람에겐 호기차고 충족된 삶을 주겠지만 많은 이들을 압박함으로서 고통스럽게 할 것입니다. 후자는 한사람에겐 신체의 고통이 있겠지만 맘과 정신이 풍요할 것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과 안정을 줄 것입니다. 어느 게 일등 삶일까요?

 

잘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출세로 미화되는 사회적인 일등과 수위에 서는 삶일까요? 반면에 실패자라 치부됨에도 상대의 밥과 졸이 되고, 호구와 하인이 되는 삶일까요. 밥이 되고 졸이 되는 것은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을 위해서이겠지요. 그것은 자신이 앞서고 신바람 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앞서고 신바람 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보다 곁에 있는 사람을 더 잘되게 하고 이웃을 신바람 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기꺼이 그들의 졸과 밥이 되고 호구와 하인이 되는 것이겠지요.

교육의 목표는 이런 방향이 옳지 않을까요? 만물 특히 인간은 본성이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홍익인간의 표상이 아닐까요? 그러다가 후진인생 후진국가로 전락한다고 비난조롱 받을까요? 그렇습니까? 진정한 대인과 대국은 상대 위에서 호령하지 않고 밑과 아래에서 그들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받혀주면서 함께 살 수 있도록 돕는 게 아닐까요? 자신의 축적된 힘과 재물을 특히 자신보다 약한 자를 제압하고 굴복시키는데 쓰지 않고, 그들과 함께 공유하고 나누면서 공동 번영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이를 알아야할 것입니다. 그게 공정이고 공평이며 평화라는 것을.

출처:pixabay. 경쟁과 경주. 일등만이 성공자가 아니다.
출처:pixabay. 경쟁과 경주. 일등만이 성공자가 아니다.

세상을 사는 방식은 사람과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어떤 이의 삶은 다른 이에게는 도저히 이해 불가할 것이고, 그 반대도 그럴 것입니다. 그렇지만 각자의 삶은 그 나름의 가치와 의미가 있겠지요. 누구의 삶이 옳고 그르다는 것은 단견이고 편견입니다. 그의 성장과정과 삶이 처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수 없겠지요. 한다면 우매한 짓입니다. 누구나 잘 살기를 바랐을 것이고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지만 결과가 그리 되었을 뿐입니다.

선현들께서 수처작주(隨處作主)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수처작수(隨處作首)와도 상통하겠지요.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곳에 맞는 주인이 되고 머리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 뜻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동의하기는 어렵고 내세울 것은 더욱 아니라고 봅니다. 모두가 머리되기만을 지향한다면 몸통은 누가 되고 꼬리는 누가 된단 말입니까? 경쟁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그리 된다고요? 그런 사람들이 이를 수긍하며 꼬리로 잘 살아갈까요? 그런 사회가 평화로울까요? 머리만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몸통도 꼬리도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일등인사가 꼴찌에게 고맙다. 네가 있었기에 내가 있다라고 말했답니다. 겉치레 인사일지라도 조금은 된 사람이지요. 만사만물에는 머리와 꼬리가 있듯이 주인()이 있으면 따르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게 조화로운 세상이지요. 물론 중간(몸통)도 있습니다. 수미(首尾)는 역할과 기능이 다를 뿐, 어느 것이 중요하고 무시되거나 없어서는 아니 될 귀한 존재들입니다.

출처:pixabay. 말 위에서 호령하는 왕. 그만이 세상의 주인공은 아니다.
출처:pixabay. 말 위에서 호령하는 왕. 그만이 세상의 주인공은 아니다.

이기적이고 각박한 세상에 수처작주(隨處作主)와 수처작수(隨處作首)보다 오히려 수처작졸(隨處作卒)과 수처작미(隨處作尾)를 권장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 졸이 되고 밥이 되는 것입니다. 꼬리가 되고 하수가 되어 머리와 몸통을 받혀주고 지지하면 더욱 보람되지 않을까요? 폼 나는 고위직에 있으면 귀중한 사람이고, 허접해 보이는 하위직에 있으면 비천한 사람일까요?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거나 그 직에는 그 사람이 꼭 있어야 합니다. 단지 대체할 사람이 많으면 하급직으로 매도하여 하대하고, 대체할 사람이 적으면 고급직으로 우대할 뿐입니다그렇다고 사람을 고급이나 하급으로 보아야겠습니까? 그건 아니지요. 인격과 인품이 뛰어날수록 다른 사람들이 피하고 싫어하는 자리에 기꺼이 임한다 했습니다. 특히 생업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건 사람은 모두 동등하고 귀합니다. 태생에 귀천이 없듯이 일에도 귀천이 없습니다. 어떤 시각에서는 있다고 합니다만. 아래에 머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은 안정되고 살만하지 않을까요?

평소엔 있는지 없는지 그의 존재가 희미하지만 막상 없어지면 그의 자리가 확연히 드러나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평소엔 너무나 그의 존재가 뚜렷하지만 막상 없어져도 별로 그 자리가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연 누가 조직에 필요한 사람일까요.

낮고 질척한 땅에서 만물은 섭생하고 안정적으로 오래 머물 수 있습니다. 땅이 꺼지면 금방 알 수도 있고요. 높고 광명한 하늘은 보기에는 좋아도 떠 있는 상태이므로 불안하여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하늘의 구름은 걷혀도 바로 인식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들에겐 낮은 곳이 삶의 중심이고 평온한 안식처입니다. 지언행일치(知言行一致), 사람은 배우고 익혀서 심신으로 알고 체득해야 합니다. 체득한 것을 말해야 하며, 말한 것은 행동으로 실천토록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요구되겠지요.

출처:pixabay. 아름다운 동행. 사랑으로 뭉친 팀웤.
출처:pixabay. 아름다운 동행. 사랑으로 뭉친 팀웤.

우리가 진정 추구하고 따라야 할 것은 수처작주(隨處作主)가 아니라 수처작졸(隨處作卒)이고, 수처작수(隨處作首)가 아니라 수처작미(隨處作尾)일 것입니다. 사람에게 상승/상향욕구는 거의 본능에 가깝습니다. 선두에 서라고 교육과 독려하지 않아도 선두를 위해 있는 힘과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할 것입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본능일 수도 있지요. 이는 오히려 억제가 필요한 것이지 권장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권이 달린 일에는 수처작미(隨處作尾)하고, 희생과 봉사의 일에는 수처작수(隨處作首)해야 한다고 교육해야할 것입니다. 그래야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만한 세상이 조성되지 않겠습니까?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김태평 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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