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운이 좋으면 창가에 앉아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를 난다. 
어쩌다 운이 좋으면 창가에 앉아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를 난다. 

삶 자체가 긴 여행입니다. 그 길목에서 숱한 만남과 헤어짐이 씨줄과 날줄로 이어지고, 인연 따라 발길 닿는 곳에서 이루어진 상처와 기쁨이 추억으로 남습니다.

대만 친구들과 다음을 약속했던 티베트 여행은 일 년 반이 지나도록 요원하기만 합니다. 돌아보니 오랫동안 갇혀 지냈습니다. 아마도 내 운명에는 역마의 기운이 강한가 봅니다.

만약 달구지나 비행기가 없던 시절에 태어났다면 떠돌이나 낭인 혹은 거지 등등의 삶을 살지 않았을까? 다행스럽게도 좋은 시절에 태어나서 무역한답시고 이곳저곳 많이도 돌아다니고, 여행도 즐겁게 다닐 수 있었으니 모두가 조상님 덕이 아닐까 감사한 마음입니다. 아니면 역마살 덕분인지도 모르겠군요.

深圳에 있는 민속촌 錦繡中華。
深圳에 있는 민속촌 錦繡中華。

여행 중에 얻는 기쁨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기억에 남는 이야깃거리도 있습니다.

‘桂林山水 甲天下(계림산수 갑천하)’란 말로 잘 알려진 계림에 갔을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 시골 여인이 밭에서 기른 야채를 수레에 싣고 이른 새벽이면 장터로 나가 팔았습니다. 장터를 가려면 넘어야 할 언덕이 있었답니다. 매일 이 언덕을 넘을 때마다 한 번에 넘어가지 못하고 잠시 쉬어 숨을 고르고는 다시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을 넘어갔지요. 그 언덕 양지바른 곳에는 아담한 2층집이 있었는데 창가에 서 있는 아름답고 고귀한 부인을 항상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시골 여인은 그 집을 지날 때마다 하루를 살더라도 저 부인처럼 우아하게 살 수만 있다면 원이 없겠다고 생각하면서 힘들게 수레를 끌고 지났답니다.

그런데 2층집 부인은 시한부 삶을 사는 환자였답니다. 평생을 허약하게 온실 속에서 살았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살고 있었답니다.

이른 아침 땀을 훔치며 수레를 끌고 오는 건강한 시골 여인을 보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었답니다. 그녀를 보면서 마치 자기가 건강한 몸으로 땀을 흘리며 먼 길을 가는 상상을 하면서 바라보고 있었다는 이야기였지요. 단 하루만이라도 그녀처럼 살고 싶어 하면서.

어찌 들으면 유치할 수도 있겠지만 여행 중에 들어서 그런지 오래 남아 가끔 생각이 납니다.

중국과는 1992년 국교가 열렸지만 90년대 중반까지도 중국은 잘 알려지지 않은 땅이었지요.

돌 도장을 수입하던 친구와 홍콩에 갔다가 제조공장을 보러 입경증을 받아 중국 심천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서방 세계에 별천지로 알려진 계림(桂林, 꿰이린)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동안 중국에 들어가면 비위가 약해 거의 코를 막고 다녔는데, 계림 공항에 내려 비행기 문이 열리고 트랩을 밟는 순간 형언하기 어려운 향기가 코끝을 황홀하게 하였습니다. 말이 공항이지 램프도 없어 활주로에 내린 비행기는 한쪽 구석으로 이동하고, 트랩을 밀고 와서 고정하면 승객들이 내립니다. 코로나 전에 다녀온 미얀마의 지방 공항들이 90년대 중국 공항과 비슷합니다.

7, 8, 9월에 계림을 방문하면 도시 전체 어디서나 향긋한 계화향을 맡을 수 있습니다.

공항에서 나와 버스를 탔는데 비포장도로에 에어컨이 없는 버스는 창문을 활짝 열고 먼지를 일으키며 달렸습니다. 그리고 너나없이 담배를 물고 차 안에서 피우더군요. 대한민국 70년대 모습이었습니다. 친구와 나도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얼마만이냐며 야만에 동참했습니다.

시내에 도착하여 들어간 호텔에서는 물이 샜는지 화장실 옆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서 옮겨달라고 했는데 거절당하고 그냥 잤습니다.

택시 기사에게 물어 주변 공원도 다녀오고, 桂林(꿰이린)에서 陽朔(양숴)까지 유명한 리강(漓江)을 여객선으로 한 시간 이상 탔던 걸로 기억합니다. 계림은 중국에서 산과 물이 가장 조화롭고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계림의 山水가 천하에서 으뜸이라고 하지요.(桂林山水 甲天下)

桂林(꿰이린)에서 陽朔(양숴)로 흐르는 리강(漓江)  /  사진 : Wikimedia
桂林(꿰이린)에서 陽朔(양숴)로 흐르는 리강(漓江)  /  사진 : Wikimedia

북경에 경극(京劇)이 있다면 광서성 계림에는 계극(桂劇)이 있는데, 10여 년 후에 계극 단원들과 친분이 생겨 함께 다시 계림을 포함한 광서성 여러 곳을 구경하였습니다.

형과 누나들이 심천에 놀러 왔을 때도 계림에 함께 갔습니다. 그때는 陽朔(양숴)에 북경올림픽 개막식을 연출했던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이 <印象劉三姐>란 극을 공연해서 봤습니다. 강과 산 그리고 많은 단원들이 밤에 조명을 이용하여 공연한 화려한 극이었습니다. 당시 입장료가 일인당 5~6만 원으로 꽤 비싼 공연이었지요.

코로나 시대 추억 한 자락을 소환합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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