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하면 등 푸른 생선으로, 안동 간고등어로 유명하다.

이 고등어를 두고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생김새가 칼과 비슷하다고 고도어(古刀魚,古道魚), 고두막(高斗邈)이라고도 했으며, 자산어보에서는 벽문어(碧紋魚)로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의 생선이 등이 푸르거나 어두운색이고 배 부분은 하얀색이다. 이것은 바닷물의 색깔과 거의 같아 눈에 잘 띠지 않기 위함이고, 배가 하얀 것은 물속의 적들에게 쉽게 보이지 않게 함이라고 한다.

고등어는 성질이 급해 물 위에 올라오면 바로 죽는다.
동해안에서 잡힌 고등어가 안동까지 오려면 옛날에는 하루가 걸렸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숙성이 되어 맛이 더한다고 한다. 안동에 도착하면 소위 간잽이라고 하는 사람의 손을 거쳐 소금에 절이면 안동 간고등어가 된다고 한다.

옛날에는 완도의 청산도에서도 아주 많은 고등어와 삼치가 잡혔다. 그래서였는지 일본의 배가 고기를 가져가려고 청산도에까지 오곤 했었다.

1928년 8월 8일 자 동아일보 최성환 기자가 도서를 순례하면서 청산도에 관해 쓴 기사 <완도방면(莞島方面) 7>에는 '영주삼산(瀛洲三山) 어대메냐 여긔가 仙源世界 산 넘어 산이오 산 우에도 산 靑山島'란 기사가 실려 있었다.

청산도는 선원도(仙源島), 선산도(仙山島)라고 하다가 청산도(靑山島)라고 부르게 되었다.

여긔가 어대메냐 선원세계
여긔가 어대메냐 선원세계

1938년 6월 17일 동아일보의 기사를 보면 어선 두 척이 2일 동안에 고등어를 70만 마리를 잡았다는 기사도 있다.

그래서 청산도에는 파시가 이루어지고 돈을 돈으로 보지 않고 자루에 담아 창고에 두었던 때가 있었다. 한마디로 흥청거렸고 술집, 음식점, 숙박업이 대성황이었다. 특히 바람이 불어 조업을 못 하는 날이면 밤과 낮의 구분이 없이 장사를 했다.

그러한 것들이 60년대 초반까지 이루어졌다. 50년데 중반부터는 참조기가 잡혀서 더 많은 어선이 청산도 근해에서 고기잡이를 했다.

어선 두척이 2일동안 70만 마리 고등어를 잡았다
어선 두척이 2일동안 70만 마리 고등어를 잡았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1940년 6월 29일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우편소(우체국)가 생겨 전신업무를 보기에 이르렀다. 아마도 전국의 어선이 집결하다시피 하여 통신이 절실히 요구되었을 것이다.

청산도 우편소
청산도 우편소

그렇게 많이 잡히던 고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흔히 남획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것만의 문제가 아니다. 쓰레기 문제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쓰레기 문제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지만 어민들도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비닐은 아주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다이버들의 말에 의하면 바다 속에 있는 바위들이 매끄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돌출된 곳마다 비닐이 걸려서 고기가 살 수 없다고 한다.

또한 무조건 막아대는 간척도 문제다. 갯벌에는 진질이라고 불리는 잘피가 서식하고 있는데 이곳이 고기들의 산란지이다. 그런 곳을 막아서 없애 버렸으니 고기가 어디에서 산란할 것인가? 연안에서 그렇게도 많이 잡히던 고기들이 없어진 이유가 산란장이 없어진 것인데 둑을 쌓아 그곳을 없애 버렸으니 고기가 잡힐 이유가 없는데 남획이라고만 한다면 행정을 하는 사람들이 저지른 실수를 덮기 위함이라고 할 것이다.

특히 스티로폼 부자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그것들이 양식장에서 유실되어 바닷가에 밀려오면 바위에 부딪히면서 가루가 되어 바닷가의 식물에도 영향을 주는데, 이로 인해 매년 바다 쓰레기 수거 비용이 천문학적인 숫자인데 이것을 만드는 공장에 보상해 주더라도 못 만들게 하면 수거 비용보다 더 적게 들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깨끗한 환경을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 세상을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일 것이다.

 

편집 : 박춘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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