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 장재성(張載性) 선생이시여! 후학들을 용서하지 마소서. 선생께서 용서하신다고 하셔도 저희가 그 용서를 어찌 받잡겠습니까? 대한민국 정부는 아직도 선생께 서훈(敍勳)하지 않았습니다.

장재성 선생 추모제, 2021.07.05.   출처: 동고송( dongosong.net)
장재성 선생 추모제, 2021.07.05.   출처: 동고송( dongosong.net)

선생께서 가신 지 70년이 흐른 2020년에 이르러서야 신원운동(伸寃運動)이 일어났습니다. 작년 5월 27일 창립식을 연 ‘장재성기념사업회’는 광주학생독립운동 유공자 73인의 서훈 요청서를 보훈처에 전달하였고, 7월 5일 최초로 ‘장재성 선생 추모제’를 열었고, 10월 30일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에 흉상 ‘장재성 선생상’을 제막했습니다. 올해 5월 18일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 유공자 300인의 미서훈자에 대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는 대자보와 플래카드를 국립5·18민주묘지를 비롯한 광주광역시의 여러 곳에 부착하였습니다.

“‘오월 광주가 문재인 대통령께 드리는 글”(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장재성기념사업회 등)에서 선생의 신원을 호소하였습니다. ’대통령님, 일제 강점기에 7년의 옥살이를 한 장재성 선생에게 대한민국 정부는 1949년 또다시 7년 형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승만 정부는 1950년 7월 5일 수감 중이던 장재성을 끌어내 총살하였습니다. / 의병장 김덕령 장군이 억울한 죽임을 당하고, 마침내 신원이 된 해가 1661년이었으니 만 65년 후의 일이었습니다. 장재성 선생은 지금 71년 동안 신원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광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시절 장재성 선생(왼쪽)과 서거 70주년을 맞아 제작된 기념 흉상. 장재성기념사업회 제공. 한겨레, 2020.10.30.
광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시절 장재성 선생(왼쪽)과 서거 70주년을 맞아 제작된 기념 흉상. 장재성기념사업회 제공. 한겨레, 2020.10.30.

장재성기념사업회에서 정리한 선생의 용솟음쳐 굽이치는 삶을 되새깁니다.

1908년 6월 20일 빛고을 광주군 금계리(광주광역시 동구 금동 97번지)에서 장원용 선생과 최예언 선생의 장남으로 태어나시어, 1916년 4월 광주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2년 3월 광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동년 4월 광주고보에 입학하여 5학년 시절 1926년 11월 3일 최규창의 하숙집이던 전남여관(광주천변 소재)에서 왕재일(王在一; 1904∼1961), 최규창(崔圭昌; 1908∼1949) 등과 함께 15명이 모여 학생 비밀결사인 ’성진회‘(醒進會)를 결성해 일제에 저항했고, 1927년 3월 광주고보를 졸업하고 동년 4월 일본 중앙대학 예과에 진학하고 신흥과학연구회에 참여하신 선생이시여!

성진회 결성 15명: 왼쪽부터 김한필(金漢苾)·정종석(鄭鍾錫)·정동수(鄭東秀) ·임주홍(林周弘)·채영석(蔡泳錫)·안종익(安鍾翊)·박인생(朴仁生)·정남균(鄭南均)·왕재일(王在一)·장재성(張載性)·문승수(文升洙)·정우채(鄭瑀采)·김창주(金昌柱)·김광용(金匡溶)·최규창(崔圭昌). 둘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장재성 선생. 가운데 흰 한복을 입은 학생이 왕재일선생. 출처: 신원·황광우 편저, <무등의 빛>, 광주서중·일고 100주년 기념사업회, 2020.09, 59쪽.
성진회 결성 15명: 왼쪽부터 김한필(金漢苾)·정종석(鄭鍾錫)·정동수(鄭東秀) ·임주홍(林周弘)·채영석(蔡泳錫)·안종익(安鍾翊)·박인생(朴仁生)·정남균(鄭南均)·왕재일(王在一)·장재성(張載性)·문승수(文升洙)·정우채(鄭瑀采)·김창주(金昌柱)·김광용(金匡溶)·최규창(崔圭昌). 둘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장재성 선생. 가운데 흰 한복을 입은 학생이 왕재일선생. 출처: 신원·황광우 편저, <무등의 빛>, 광주서중·일고 100주년 기념사업회, 2020.09, 59쪽.

1929년 6월 유학 중 귀국하여 학교별 독서회를 지휘하는 ‘독서회중앙부’를 결성하고, 6월 29일 무등산 중머리재에서 광주고보독서회를 결성하고 시위 연습을 하였고, 1929년 8월 ‘장재성빵집’(현재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4가역 교차로 금남로공원 중앙로변) 을 열고, 1929년 10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동지인 여동생 장매성(張梅性) 선생의 친구 박옥희 선생과 결혼하고, 1929년 광주에서 한·일 학생 사이 충돌 사건이 발생하자, 학생투쟁지도본부를 결성하고 광주 학생 시위를 주도하여 1929년 11월 3일 광주역 학생 충돌 사건을 민족운동으로 전환하고, 1929년 11월 13일 서현교회( 광주광역시 남구 중앙로 110) 부근에서 체포, 구속되었고, 1930년 상급심인 대구복심법원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 관련자 중 최고형량인 4년형을 선고받고, 1934년 석방 후 동경 중앙대 상과대학에 진학하여 1936년 ’조선유학생연구회‘를 결성하고, 1937년 <동경사회과학연학회> 사건으로 미결수로 3년간 투옥되어 1940년 석방되고, 1943년 전남 장성군 진원면 양조장을 운영하신 선생이시여!

출처: 신원·황광우 편저, <무등의 빛>, 광주서중·일고 100주년 기념사업회, 2020.09, 106쪽.
압박의 쇠사슬을 끊기 위해 일어선 소녀 장매성(장재성 선생의 여동생).     출처: 신원·황광우 편저, <무등의 빛>, 광주서중·일고 100주년 기념사업회, 2020.09, 106쪽.

해방 정국에서 건국준비위원회 전남지부 조직부장을 역임하고, 1945년 12월 2일 광주청년동맹을 창립하여 의장으로 선임되고, 남북 분단에 반대해 1948년 7월 남북대표자연석회의에 참석하고 몇 차례 북한을 방문하여 12월 귀가하고, 1949년 7월 영장 없이 불법 체포되어 1949년 12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당시 광주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5일 시국사범으로 몰려 헌병들에게 끌려가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산동교 인근‘(2021년 5월 장 선생 아드님의 증언)에서 총살당한  선생이시여!.

장재성 선생 추모제, 2021.07.05.   출처: 동고송( dongosong.net)
장재성 선생 추모제, 2021.07.05.   출처: 동고송( dongosong.net)

장재성기념사업회는 지난 7월 5일 광주제일고등학교 대강당에서 두 번째로 ‘장재성 선생 추모제’를 열었습니다. 이에 앞서 교내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장재성 선생 흉상을 찾아 헌화했습니다. 추모제는 장재성 연보 낭송, 유족 말씀, 장재성 추모 연극(‘무등의 빛 장재성’), 성진로·장재성 홀 방문 등 순으로 진행됐습니다.

1943년 가족 사진: 부인 박옥희, 아들 장상백, 장재성 선생.   출처: 신원·황광우 편저, <무등의 빛>, 광주서중·일고 100주년 기념사업회, 2020.09, 91쪽.
1943년 가족 사진: 부인 박옥희, 아들 장상백(11개월), 장재성 선생.   출처: 신원·황광우 편저, <무등의 빛>, 광주서중·일고 100주년 기념사업회, 2020.09, 91쪽.

장재성 선생이시여! 역사에 길이 남을 추모제였습니다. 우선 먼저 선생의 아들 장상백(79)씨가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선생의 손자인 장윤영(50)씨와 장헌영(48)씨도 함께했습니다. 유족의 말씀 순서에서 장상백 선생은 “이렇게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아주 짧은 말씀은 그동안 겪은 트라우마가 아직도 생생함을 웅변하였습니다. 손자 장윤영씨는 “이렇게 많은 분이 매년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기리고 있는 모습을 아버지가 실제로 보셨으니, 이제는 조금이나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오른쪽은 장상백 선생과 그 두 아들,  왼쪽은 이경순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1929.11.3. 대시위에 참여하고 1930년 백지동맹을 주도하여 퇴학 당한 광주고보 9회 이기홍(1912~1996) 선생의 따님),.   출처:장재성 선생 추모제, 2021.07.05.  동고송( dongosong.net)
오른쪽은 장상백 선생과 그 두 아들,  왼쪽은 이경순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1929.11.3. 대시위에 참여하고 1930년 백지동맹을 주도하여 퇴학 당한 광주고보 9회 이기홍(1912~1996) 선생의 따님),.   출처:장재성 선생 추모제, 2021.07.05.  동고송( dongosong.net)

선생의 큰아들 장상백 선생, 성진회를 결성한 왕재일 선생의 장남 왕규석 선생이 추모식장에서 처음으로 만나셨습니다. 처음이라니요, 역사의 회오리바람이 여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26년 11월 3일 성진회 결성 후 만 3년이 지난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은 민족운동으로 전환했습니다. 마침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는 수립됐습니다. OECD 전망 기준 2020년 대한민국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조 6,240억 달러로 세계 9위를 기록했습니다. 유엔무역개발회의(운크타드, UNCTAD)는 지난 7월 2일(현지시각) 열린 제68차 무역개발이사회에서 195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한국의 지위를 기존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습니다. 선진국 그룹은 한국이 포함되면서 32개국으로 늘어났습니다. 1964년 운크타드 창설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바뀐 나라는 대한민국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유엔무역개발회의(운크타드) 로고.    출처: 한겨레 2021.07.04
유엔무역개발회의(운크타드) 로고.    출처: 한겨레 2021.07.04

그런데도 거기에 걸맞게 정신은 발달하고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 유공자 중 미서훈자가 아직도 여러분입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선생께 서훈(敍勳)하는 날, 선생의 신원이 이뤄지는 날, 대한민국은 비로소 명실상부한 선진국이라 할 것입니다.

청명한 7월, 혼령으로 오셔서, 대한민국과 빛고을 광주를 굽어보시옵소서.

통상의 장례였다면 발인일(發靷日)이었을 1950년 7월 7일의 71주년

서기 2021년 7월 7일

후학 형광석, 머리숙여 묵념하다

 

참고자료:

1. “운동가, 독서가 그리고 실천가, 장재성”, 한신원·황광우 편저, <무등의 빛>, 광주서중·일고 100주년 기념사업회, 2020.09.

2. “박해 속에 젊음을 불태운 소녀, 장매성(장재성의 동생)”, 한신원·황광우 편저, <무등의 빛>, 광주서중·일고 100주년 기념사업회, 2020.09.

3. “하숙집에 모여, 최규창”, 한신원·황광우 편저, <무등의 빛>, 광주서중·일고 100주년 기념사업회, 2020.09.

4. “독립투사의 고단한 삶, 왕재일”, 한신원·황광우 편저, <무등의 빛>, 광주서중·일고 100주년 기념사업회, 2020.09.

5. 장재성기념사업회,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 장재성 선생 추모제”(안내장), 2021.07.05.

6. 트라우마에…칠순 아들 첫 참석 ‘장재성 추모제’, 동고송( dongosong.net), 2021.07.07.

7. 임경석, [역사극장] 인정받지 못한 독립유공자 장재성, 한겨레21, 2020.07.24.

* 관련 기사 : 트라우마에…칠순 아들 첫 참석 ‘장재성 추모제

https://dongosong.net/archives/7470

                         독립에 청춘 바쳤지만 훈장 대신 총살 당한 장재성을 기억하다

https://www.hani.co.kr/arti/area/honam/967929.html

형광석 객원편집위원  f61255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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