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호선 이대역 5번 출구로 나가다 보면 벽면에 TBS 텔레비전이 설치돼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텔레비전은 꺼진 채 흉물스럽게 <철거 예정>이라는 쪽지가 붙어 있다. 어느 날, 여전히 붙어 있는 쪽지를 보면서 바로 옆 사무실로 들어갔다. 모두 일을 보러 나갔는지 열 평 남짓 되는 사무실에 딱 두 분만 보인다. 우측 맨 가에 앉아 있던 젊은이가 성큼 다가서더니, 아는 게 없어 마땅한 답을 줄 수 없다고 연신 미안해한다. 젊은이는 마치 무슨 죄인이라도 된 듯이 양손을 모으고 엉거주춤 서 있다. 되려 미안한 마음에 어여 일 보시라고 자릴 권했다. 맨 뒷줄에 또 한 분이 보인다. 통화 중이다. 그분이 통화를 마치기를 기다렸다.

 

2021년 6월 30일, 이대역에서
2021년 6월 30일, 이대역에서

 

TBS TV 철거 방침이 교통방송의 자체 결정인지, 아니면 서울교통공사나 서울시의 어떤 지침에 따른 것인지 알고 싶다고 되물었다. 그분 역시 정확한 내막을 알지 못해 딱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마 기기가 오래돼서 폐기 처분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거의 모든 사람이 핸드폰으로 뉴스를 검색하는 마당에 누가 굳이 한가롭게 역사에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겠느냐며 말끝을 흐린다. 그런 것까지 무슨 정치적인 함의가 내포돼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이더니, 나처럼 묻는 이가 처음이라고 했다. 무연히 그를 바라보다가 한마디 하고 나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여기에서 가까운 한서초 교정에 나가는 사람입니다. 다음 주 수요일 이 시각에 여길 지나갈 텐데, 그때 시원한 답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느 때처럼 갈아타기 위해 홍대입구역에서 내렸다. 경의선 플랫폼을 찾아가는데 그날따라 벽면에 걸려 있는 ‘디지털 시장실’이 눈에 확 들어왔다. 100인치나 되는 대형 스크린이다 보니 쉬이 눈에 띌 법도 하련만 그동안 왜 아니 눈에 띄었는지 그게 더 이상했다. 뭔가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가 서울시장의 눈높이에서 서울의 시정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장치였다. 그러니까 시민 누구나 화면 터치만으로 서울의 교통, 재난, 대기, 물가 등 실시간 도시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웬걸, ‘디지털 시민시장실’은 먹통이었다.

 

빈껍데기만 남은 ‘디지털 시민시장실’(2021. 06. 30, 홍대입구역)
빈껍데기만 남은 ‘디지털 시민시장실’(2021. 06. 30, 홍대입구역)

 

“2019년 4월부터는 서울시민 누구나 박원순 시장과 동일한 정보를 볼 수 있도록 공개했다. ‘디지털 시장실’은 개인 정보와 관련된 정보를 제외한 모든 콘텐츠를 주요 환승역 3곳(홍대입구역, 여의도역, 창동역)의 대형 스크린과 PC, 모바일(http://scpm.seoul.go.kr , http://mayor.seoul.go.kr )에서 이용할 수 있었다.”(120다산콜재단, 2020. 5. 20.).

 

금세 검색이 된다. 나만 모르고 있었구나…….
“박원순 시장은 지난해 3월 27일, C40 회원 도시이자 3억6천만 명의 도시 인구를 대표하는 31개국 45개 도시 시장들과 ‘코로나 19 공동 대응 화상회의’를 가졌다. 4월 17일에는 LA·샌프란시스코·시드니 등 주요 도시 시장, 글로벌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플러그 앤 플레이 테크 센터(Plug and Play Tech Center)’와 화상 세미나도 했다. 이 자리에는 포르쉐, 보쉬, 딜로이트 등 글로벌 기업 관계자 등 500여 명이 참여했다. 이 밖에도, 마르따 루시아 라미레스(MARTA-LUCÍA RAMÍREZ) 콜롬비아 부통령(5.7.), 코스타스 바코야니(Kostas Bakoyannis) 아테네 시장(3.31.), 에크렘 이마모글루(Ekrem İmamoğlu) 이스탄불 시장(4.14.), 피루즈 하나치(Pirouz Hanachi) 테헤란 시장(4.14.) 등과도 개별 화상 회의를 진행했다.”(매트로신문, 2020.5.17.)

 

사진(위)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8일(현지 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의 서울시 부스 '서울관'에서 서울시의 실시간 현황판인 '디지털 시민시장실'을 시연하고 있다(출처 : 연합뉴스, 2020.1.9.). 아래 사진은 세계 45개국 실무진과 코로나 19 관련 화상 회의 모습(출처 : 120다산콜재단, 2020. 5. 20.)
사진(위)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8일(현지 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의 서울시 부스 '서울관'에서 서울시의 실시간 현황판인 '디지털 시민시장실'을 시연하고 있다(출처 : 연합뉴스, 2020.1.9.). 아래 사진은 세계 45개국 실무진과 코로나 19 관련 화상 회의 모습(출처 : 120다산콜재단, 2020. 5. 20.)

 

“최근 코로나 19 국면에서 박원순 시장은 미국 LA 등 전 세계 주요 도시 시장, 콜롬비아 부통령, 글로벌 기업 CEO 등과 함께하는 화상 회의와 세미나를 20여 차례 이상 가졌다. 2017년 도입 당시 약 1,000만 건의 행정 빅데이터에서 시작해, 지금은 3,200만 건의 행정 빅데이터와 3억 건에 달하는 원천 데이터로 콘텐츠가 대폭 강화됐다. 서울 시내 2,800여 대 폐쇄회로(CC)TV의 영상 정보도 시장실에서 터치 한 번이면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또 디지털 시민시장실을 배우고 도입하려는 국내외 도시들이 서울시에 견학을 올 정도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 베이징시 등 250여 개 도시와 중앙정부 부처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서울시를 방문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고 비대면, 언택트 방식이 일상화됐다"며 "서울의 스마트시티 기술을 집약한 디지털 시민시장실은 이런 흐름에 가장 최적화된 전자정부 시스템이자, 코로나 19 국면에서 글로벌 소통 채널로 도약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5월 17일과 18일, 도하 각 신문에 일제히 보도된 내용이다. 그러니까 서울시는 2017. 9. 6. 세계 최초로 디지털 시장실을 가동했다. 그동안 서울을 운영하던 ‘종이와 서류’는 사라지고, 새로운 디지털 방식이 자리 잡은 것이다.

 

그로부터 채 4년이 지나지 않았다. 박원순은 가고 오세훈이 등장했다. 때를 맞춰 지난 4월, 서울시장 집무실 벽면에 설치된 가로 3.63m, 세로 1.67m 크기의 대형 스크린, '디지털 시장실'도 사라졌다. 빅데이터 시각화를 실시간으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현하고 모션, 음성 인식 기술을 도입하여 서울시의 새로운 혁신을 이끈 것으로 평가받던, 비대면·언택트 시대 글로벌 소통을 주도하던 세기적인 역작이었다.

 

한편, “UN(유엔)은 <2020 전자정부(E‑Government) 조사>에서 COVID-19 대유행(pandemic) 봉쇄 조치로 대부분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디지털 정부 전략을 추구하고 있으며 많은 혁신적 이니셔티브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디지털 정부(Digital Government) 기준 193개 ‘유엔 회원국(UN Member States)’ 중 2020년 순위(Ranking)는 덴마크, 대한민국, 스웨덴, 영국, 뉴질랜드 순이다.”고 말했다(이제니, Daily Coin News, 2020.07.15.).

 

대한민국이 전자정부 2위로 올라선 것이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10여 년 전부터 정보화 선진국이다. 이미 ‘서울시 디지털 시장실’에서 언급했지만, 서울시 전자정부는 세계의 어느 도시보다 독보적이고 창의적이다.

 

서울시 관련 정보를 총망라해 디지털로 구축한 디지털 시민시장실(서울특별시, 서울사랑, 2017.08.)
서울시 관련 정보를 총망라해 디지털로 구축한 디지털 시민시장실(서울특별시, 서울사랑, 2017.08.)

 

'디지털 시장실'을 두고 이코노미스트 필름(英)에서는 “혁신의 정점”에 있다고 했고, 와이어드(美)에서는 “시민들에게 왜 정부를 신뢰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소개했다. 또한, 2020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최대 규모 국제전자제품박람회 CES에서 서울시 디지털 혁신 사례로 전시되는 등 국내외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서울특별시, 디지털시민시장실 운영, 2021.06.03.). 그런 디지털 시민시장실이 어느 날 갑자기 소리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 대신 종이 패넬이 다시 등장했다.

 

오세훈 시장은 취임 후 임시선별검사소를 두 차례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4월 8일 처음 출근하고 이틀 뒤인 4월 10일 서울역, 그리고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를 앞둔 지난 7월 9일에 용산역을 찾았다. 그 때마다 그의 앞에는 큼지막한 브리핑 패널이 세워졌다. 그 앞에서 관계자가 현황을 보고하고, 이를 듣고 있는 그의 모습이 전에 없이 도드라진다. 이를 취재하는 기자들까지 덩달아 땡볕에서 몸살을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임시선별검사소를 찾아 관계자에게 코로나 19 현황 및 조치 사항에 대해 보고받고 있다. 왼쪽은 지난 4월 10일 서울역 광장, 오른쪽은 지난 7월 9일, 용산역 임시선별검사소 앞이다. (사진 출처 : 서울특별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임시선별검사소를 찾아 관계자에게 코로나 19 현황 및 조치 사항에 대해 보고받고 있다. 왼쪽은 지난 4월 10일 서울역 광장, 오른쪽은 지난 7월 9일, 용산역 임시선별검사소 앞이다. (사진 출처 : 서울특별시)

 

TBS TV 철거 또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까? 아무렴, 오비이락이겠지. 집으로 가는 길, 여러 차례 TBS로 전화를 했지만 불통이다. 그날 저녁 TBS 자유게시판에 몇 가지를 문의했다.

 

TBS 자유게시판에 올린 필자의 질의(2021.6.30.)
TBS 자유게시판에 올린 필자의 질의(2021.6.30.)

 

오래전부터 이대역 역사 벽면에 설치된 TBS TV에 <철거 예정>이라고 적혀 있네요. 오늘 다시 이를 확인하고 역무원에게 문의했는데 잘 모른다고 합니다. 몇 가지 궁금한 내용을 여기에 남깁니다.

1. 왜 철거하는지
2. 철거 예정인 TV는 총 몇 대인지
3. 언제 철거하는지
4. 철거한 TV는 폐기하는지 아니면 재활용하는지
5. TBS TV는 언제부터 역사에 설치했는지 등을 알고 싶습니다.

이 앞에도 어느 분이 유사한 질의를 했던데 묵묵부답이네요. 책임 있는 분의 답을 듣고 싶어 수 차례 전화(02-311-5114)로 문의했으나, 의미 없이 녹음된 소리만 몇 번 되풀이하다가 일방적으로 끊어버립니다. 이것이 TBS의 현주소일까요?

이상 문의한 것에 대하여 답변해 주기 바랍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7월 2일에 방송기술본부 담당자 이름으로 답변이 올라왔다. 생각보다 곰살가운 데가 엿보인다.

 

안녕하세요.
밥보샘님이 게시판에 문의하신 내용에 대해 답변드립니다.

1. 왜 철거하는지?
2008년부터 “서울교통공사”와 운영협약을 맺어 운영하던 TBS IPTV(인터넷 TV)는 2021년 5월 31일부로 서비스가 종료되었으며, 이와 함께 일정에 따라 시설물의 철거가 예정되어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2. 철거 예정인 TV는 총 몇 대인지?
1~4호선, 6호선 DMC역 포함 118대입니다.
3. 언제 철거하는지?
현재 철거에 대한 견적 진행 중이며 절차에 맞게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철거할 예정임을 알려드립니다.
4. 철거한 TV는 폐기하는지 아니면 재활용하는지?
TV는 회사로 철거되어 회사 규정에 따라 처리할 예정입니다.
5. TBS TV는 언제부터 역사에 설치했는지?
TBS TV는 2005년에 (구) 서울메트로에서 시설한 PDP-TV를 2008년 운영 협약에 의해 TBS에서 운영하였으며, PDP-TV가 노후화로 2015~2016년 LED-TV로 교체하여 운영하였습니다. (하략)

 

그러니까 서울교통공사와 맺은 운영 협약이 만료됨에 따라 TV를 철거한다는 말이다. 그 운영 협약의 계약 기간은 몇 년인지, 그동안 몇 차례나 재계약을 했는지, 이참엔 왜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는지, TV가 걸려 있던 자리에 무엇이 들어서는지, 결론적으로 오세훈 시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닌지 등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지난 4월 7일, 지상파 방송 3사의 서울시장 출구 조사 결과 오세훈 후보가 절대적으로 우세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통방송 시사 프로그램 ‘뉴스공장’ 진행자인 김어준 씨는 TBS에서 재·보궐선거 개표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문자 메시지를 호탕하게 웃으면서 큰소리로 읽었다.
“김어준, 잘 가라.”

그는 바로 어제(7월 13일)도 “(오 시장은) 취임 초부터 정부 방역이 잘못됐다며 방역 완화 메시지를 내놓고, 지난 6월 24일에는 서울시 전담 역학조사 태스크포스(TF)를 해지 시켰다.”라고 지적했다. 또 오 시장의 방역 정책에 대해 “헬스장, 실내골프연습장 등 그 영업시간을 연장했다.”며 “전문가들이 필요 없다는 자가진단키트로 겨우 확진자 4명을 찾아내는데 혈세 13억을 낭비했다.”고 비난했다. 그의 다부진 입찬소리는 폭염을 재우는 청량제다. 그러나 오 시장과 그의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처럼 보일 만하다.

교통방송 자유게시판에서 김어준 씨 관련 글은 모두 41편이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은 5명, 깎아내리는 사람은 36명이다.

“내 삶의 일상이 된 김어준의 뉴스공장, 재미와 유익함이 매력적인 방송입니다. 이 시대 진정한 알림이입니다.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닉네임 ‘ohara’ 외 4명이 올린 메시지다.
반대로 닉네임 ‘교통만’ 외 35명이 “시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교통방송에서 너무나도 편파적이고 좌파적인 방송 운영으로 시민들의 정당한 판단을 방해하고 혐오감을 주는 등 방송의 존재 이유가 없습니다. TBS는 정치 선동 기술자, 음모 기획자인 김어준을 퇴출시키세요!! 머리 좀 깎고 코털 좀 깎고 제발 부탁 좀 합시다.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기를....!!!”이라는 글을 올렸다. 절대적 다수가 그를 몰아내라고 다그치고 있다.

한편 오세훈 시장은 지난 7월 9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사실 서울시장이 마음먹으면 (제재할) 방법이 없겠는가"라고 되물으면서 "시장에겐 임원 임면권도 있고, 경영평가권과 감사권도 있다. 심지어 큰 틀에서 조직 자체에 대한 해체권도 있다.”고 강변한다(미디어스, 2021.07.12.).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지 두고 볼 일이다.

한 사람이 가면 많은 것이 사라진다.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고, 또 새로운 것들이 들어서는 건 당연하다. 근데 뭔가 야릇하다. 죽정이 대신 알곡으로 채워진다면 누가 뭐랄까? 공과를 헤아리지 않고 정치적인 셈법과 말잔치만 요란하니 어지럽다. 우리는, 다루거나 처리하기 어려운 물건을 난물(難物)이라 한다. 그렇게 종잡을 수 없는 사람 또한 ‘난물’이다. 난물 주위에 난물만 꼬이고, 난물 떼 지나간 뒤엔 난물 찌끄랭이만 산을 이루리니 ....

이대역의 TBS IPTV와 홍대입구역의 ‘디지털 시민시장실’은 마치 효수당한 역사의 죄인처럼 몇 날 며칠을 저잣거리에서 나뒹굴고 있다. 이것이 어떤 조짐은 아닐까? 어느 날 갑자기 박원순 전 시장을 지운다고 ‘디지털 시장실’을 없애버린 오세훈 시장이다. 그 결과 세계 2위의 전자정부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서울에 종이 패널이 다시 등장했다.

 

편집 : 박춘근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박춘근 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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