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이 준 구원

 

소형 배낭 하나를 오늘만은 꼭 사야겠다 마음먹고 남대문 시장엘 가려
전철시각에 맞춰 집에서 서둘러 역으로 달려 나갔다.
전차는 예정된 시각에 정확히 도착했다.
옆자리에 반바지 차림의 할아버지가 마스크를 쓰고 날 쳐다본다.

“아차“
내 입에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하는 말이
”그래 우리 노인네는 마스크를 목에 걸고 살아야 해요”
서로 웃으며 건망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몇 정거장이 지났고 노인은 내렸다.


어느 역에 내리면 구내에서 마스크를 살 수 있을까?
보통은 역을 빠져나가 약국을 찾아 구매해야 하지만
공덕역은 갈아타는 길목에 마스크 파는 곳이 있음을 머리에 떠올렸다.
그렇다. ‘공덕역까지는 이대로 가자’ 마음먹고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모자는 눌러쓰고 고개를 푹 속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가 옆자리에 와서 앉는다.


차내 방송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코로나 방역조치 4단계가 실시되고 있으니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켜주시고
마스크는 입과 코를 잘 가려주라며
“지금 마스크를 미착용하신 분은 다음 역에서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이 소리가 어찌나 크게 울리는지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바로 이때에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어깨를 톡톡치며 새 마스크를 내민다.
60대 후반에서 70대 초쯤 되어 보이는 단아한 모습의 아주머니.

반갑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내 표정은 어땠을까.
계면쩍은 웃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한 후 마스크를 두 귀에 걸었다.

순간의 건망증으로 지옥에 빠졌다가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아주머니를 만났으니
오늘은 운이 좋은 날!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최성수 주주통신원  choiss3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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