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심리적정신적 여행을 떠난다

보통 여행이란 살고 있는 현지와 일상을 떠나

다양하고 이색적인 역사문화를 접하기 위해

낯선 이국땅 이왕이면 더 먼 곳으로

한껏 상기되고 부푼 가슴을 안고 홀연히 떠남이리라

출처 : pixabay. 지구를 떠난다면 어딘들 못가겠는가?
출처 : pixabay. 지구를 떠난다면 어딘들 못가겠는가?

평소 결행하기 어려움을 과감히 거둬버리고

국경을 넘고 사선까지도 넘어 저 멀리

막대한 예산과 긴 시간을 할애하여

이곳저곳 이사람 저사람의 연결고리도 끊고

고달프고 생경하지만 머나먼 곳으로 떠남이다

출처 : pixabay. 6인 병실.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으니, 이 무슨 인연인가?
출처 : pixabay. 6인 병실.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으니, 이 무슨 인연인가?

이런 여행엔 다른 뜻도 있겠지만

주로 몸의 떠남을 의미하리라

하지만 금번 난 몸은 병상에 모셔두고

시간도 비용도 그 무엇의 구속도 없이

그야말로 내 맘대로 내 멋대로

심리와 정신적인 여행을 다녀왔다

 

벌써 입원 일주일째

인생을 생노병사의 과정이라 했던가

시간과 세월을 거스를 수 없듯이

老病 또한 스며드는 물과 같더라

어느새 늙고 어느 순간 병들지 않던가

허나 섭섭해 하거나 당황하지 않는 것은

이게 생명의 순리로 수용해야 한다기에

그저 현재로 족하고 내일을 기약하지 않았으므로

가볍고 홀가분한 심정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출처 : pixabay. 병실 병상에서도 웃음 꽃과 이야기 꽃이 핀다.
출처 : pixabay. 병실 병상에서도 웃음 꽃과 이야기 꽃이 핀다.

세상에 나면 늙고 늙으면 병들고

병들면 죽게 됨이 정해진 인생이치라

그렇게 쉴 틈 없이 스멀스멀 살았지만

병상에 올라 몸과 맘을 돌아보니

늙음도 친구요 병들음도 친구더라

늘 함께 함이 진정한 친구일 테니

늙음도 병들음도 친구가 아니겠는가

 

간호와 간병 공동시범운영 체험 병동이라

가족과 친지도 오거나 머물지 못한다

의사는 하루에 회진 한번 올까 말까

하지만 간호사와 조무사는 늘 곁에서 비상대기

호출단추만 누르면 24시간 언제라도 달려오니

이분들에게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될까 의문되기도

뭣으로도 갚을 수 없도록 고맙고 감사하다

출처 : pixabay. 평소 흐렸던 병원건물 이미지가  친근?하게 느껴진다.
출처 : pixabay. 평소 흐렸던 병원건물 이미지가  친근?하게 느껴진다.

입원하고 며칠 지나니

병원생활도 친숙해지더라

비록 환우들이 빈번하게 들고 나지만

세끼 숙식을 함께하는 환우들이라

가족친지보다 더 가까이 느껴지더라

어디가 아프고 불편한지 서로를 더 잘 알고

물론 간호사와 조무사들이 수발든다지만

말동무도 되고 때론 직접 도와주기도 하니

병실에서 방금 만났지만 금세 십년지기 친구가 되더라

 

병원이라는 좋지 않은 선입견 때문이고

혹자는 무덤가기 전까지 가지 마라하지만

병원이 불편하고 싫지만은 않더라

가족보다 더 가까이에서 더 친절하게 대해주는

의료진, 천사 같은 간호조무사들이 늘 곁에 있고

주문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따뜻한 세끼를

병상식탁으로 배달하고 끝나면 식기처리까지 말끔히

이부자리와 옷도 수시도 세탁해 갈아 주고

병실온도는 시원하게 또는 따뜻하게 맞춰주고

병상 주변의 청소 청결에 신경 쓸 것도 없으니

어찌 보면 천국이란 이곳을 말하는 게 아닐까

돈이 좀 들어서 경제적으로 걱정이지만

살림에 재주 없는 나에겐 더 없이 안락하구나

 

눈뜨면 하얀 침상 하얀 천장 하얀 가운

줄줄이 걸려 있는 약물과 오물 주머니

팔뚝엔 주사바늘 몸엔 또 다른 부착물

이들이 아직 살아 있음의 표징들일까

구차한 생이라 눈물짓는 사람도 있지만

어찌하랴 허망히 간자들에 비하면 이도 감사하지

하므로 이 날을 즐겁고 기쁘게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병상에 누워 천정을 보지 않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누가 말했는가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 해도

병상에 눕고 싶은 사람 어디 있겠는가만

그래도 이곳이 있기에 명을 연장할 수 있지 않는가

 

병상에 누워 지난 생을 반추해 보니

아쉬운 것은 국가사회를 위해

근로, 납세, 국방, 교육의무 등 4대 의무를 이행했고

내 권익을 위해 남을 강제하고 탈취하지는 않았으나

그것은 공동체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지키는 기본이고

진정 타를 위해 내 것을 내어 주고 포기하면서

심신을 다 바쳐 봉사하고 희생하는 삶이 많이 부족했더라

이 작은 몸 지킨다고 그토록 애썼건만 고작 이 모양 이 꼴이고

공공익을 위해 일하다 유치장과 교도소 한 번 가보지 않았으니

누구 말마따나 참 세상 편하게 살았소이다라 해도 마땅하지

지금이라도 삶의 자세를 바꿔야 하나 한숨이 절로 나오더라

 

들들들 입퇴원하는 환우들 이동침상 소리

들고 나는 환자손님 맞기에 바쁜 의료진들

떠나는 자는 밝고 환하게 웃는 얼굴이지만

들어오는 자는 어둡고 침울한 표정이더라

병상이지만 숨 쉬고 있음이 다행 아닐까

허나 병상 눕는 것을 누가 기뻐하겠는가

떠나는 자 웃고 들어오는 자 어두운 걸 보니

이 또한 몸의 여행과 비슷하구나

병원병상으로 이색여행이라

출처 : pixabay. 심리적 우주유영하다.
출처 : pixabay. 심리적 우주유영하다.

병상에서의 심리적정신적 여행은

몸은 지척에 두고 동선은 좁으나

마음과 정신은 수만리를 순간 이동하니

이는 더 넓고 더 깊은 여행이 아닐까

그 옛날 오프라인 여행 시에

세계 도처에 무형의 상상의 집을 많이 지어 놓았지

이참에 그 곳들을 차근차근 다녀옴도 의미 있지 않겠나

유럽대륙, 인도대륙, 중국대륙, 거대한 러시아, 몽골

미주대륙, 동서남아대륙, 오세아니아대륙, 북아프리카

국내도 전국 각지 요소요소에 지어 놓은 집이 얼마인가

눈을 감고 광속으로 이리 날고 저리 뛴다

내가 지어 놓은 생각 속의 집은 여전히 건재하구나

 

사지를 뻗어 눈을 감고 귀를 닫으면

만국만상들이 스크린영상처럼 뇌리를 지나가노라

황야를 가로질러 숲을 지나 강을 건너고

산 정상에 올라 하늘로 두 팔을 뻗어 본다

구름을 뚫고 더 높이 오르고 오르니

수많은 별들이 내 주위를 감싸는구다

이곳이 은하계인가 은하수와 친구 되어

천상을 유영하며 노래하고 춤을 춘다

평소엔 갈 수 없는 여행이었고

감히 생각으로도 감행키 어려웠지만

병상에선 이렇게 쉽게 가다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축복인가 슬픈 위로인가

 

난 무한의 여행에 푹 빠졌지만

바삐 움직이는 간호사 조무사

병동도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유기체

병든 자들이 많아야 활력이 넘치니

이 어찌 아이러니 아니 한가

생과 사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곳

생도 사도 다 고맙고 감사함을 증명하는 곳

환우가 있어야 병원과 의료인도 있으니

이들은 상생의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여든 다섯 살의 환우가 말하길

벌써 갔어야 하는데 아직 살아 있다고 한숨 지며

자식들에게 고통주고 자신도 힘들다 하네

다정스런 말씨로 말씀드리길

어르신 그런 말씀일랑 하지마소서

살아 계심이 자식들에게 힘이요 위안이며

살아 계시기에 많은 분들 경제활동 가능케 하니

이는 사회에 큰 기여 하고 계심이오다

이런 삶이라 한탄하지 마소서

살아 계시는 그 자체가 축복이고 훌륭하오이다

 

환우들이여 고통만을 논하지 마소서

병원도 의료인도 환우 때문에 존재하니

쓸데없는 삶이란 없는 게 아니겠소

이런 자가 있어야 저런 자도 있으니

우리 모두는 그렇게 마주하고 살아야

조화롭고 아름답게 어울리지 않겠소

의료인들의 삶도 값진 하루요

환우들의 하루도 값진 삶이라

이들의 하루 삶은 같은 것이 아니겠소

이런 삶을 일러 무엇이라 가타부타 하리까

인생이란 그렇고 그런 것을

삶에 너무 큰 의미 부여치 마시고

늙고 병들었다 서러워하지도 말고

북망산천 가는 날까지 감사하며 살다 가시구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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