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우 칼럼-문화예술 사각지대 part.1

 

사진출처 : tattooist mess
사진출처 : tattooist mess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조사한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연간 평균 수입은 1281만 원이라고 한다. 과반수가 넘는 72.7%가 1200만 원을 넘지 못했다. 수입이 전무한 경우도 28.8%나 된다. 결국 수많은 예술인들이 작품활동에 전념하지 못한 채 타 직종을 병행하다 예술계를 떠나게 된다. 이는 예술인들이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또 다른 말로 예술인들을 직업인으로 인정하는 복지 시스템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예술인복지법이 있다. 하지만 실태는 처참하다. 최고은 작가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고, 이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의 마지막 메모는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 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였다. 그리하여 제정된 것이 예술인복지법이었지만, 그 이후에 배우 김운하 씨가 고시원에서 사망한 지 닷새 만에 발견되었고, 같은 해 배우 판영진 씨가 가난을 못 이겨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예술인들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우리는 예술인 그리고 제도에 대한 정의와 인식, 현장의 목소리에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범헌이 쓴 ‘예술인 복지에서 삶의 향유로’에서는 예술노동을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예술은 단순하게 자기만족이 아니라 사회적 소통활동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즉 예술인은 공공재를 생산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를 근거로 예술인의 가난이나 낮은 임금은 예술계의 사적 영역과 책임이 아닌 사회적 영역에서 의식을 가지고 다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인식해야 할 점은 예술가는 자신이 속한 사회와 사실상 고용관계를 가진다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술가의 노동을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며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직업군, 제도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며, 각종 사회보장 시스템에서 누락된다. 그렇기에 예술인을 하나의 엄연한 직종으로 포함하여 복지, 대출, 지원, 사업 등의 영역에서 공평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게 인증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현재 예술인증명은 절차만 반년이 걸리고, 그 이후에도 별 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다분하다. 이는 예술인증명단체의 문제만이 아닌 행정적, 경제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며 관심 또한 그렇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예술가가 생계 걱정으로 예술을 포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무려 1958년에 시행된 ‘엥테르미탕’이라는 보험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이는 프랑스어로 ‘휴지기’를 뜻하는 말이다. 영화·공연·영상분야 인력을 위한 특별실업 보험제도를 통칭한다. 해당 인력들은 매달 버는 소득을 정부에 신고한다. 그리고 그 절반을 보험료로 낸다. 그러면 정부는 예술가가 수입이 없을 때 조건에 맞춰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다.

가난하였던 싱글맘 조앤 롤링은 커피 한 잔 값으로 카페에 오래 머물러도 되냐고 카페 주인에게 부탁하였고, 그는 흔쾌히 수락하였다. 심지어 가끔은 커피값도 받지 않은 채 자리를 내주었고, ‘해리포터’가 탄생하였다. 작품 탄생 전 롤링은 가난에 허덕였다. 그 어려웠던 나날에 귀중한 발판이 되었던 것이 바로 예술인 복지제도 중 하나인 창작지원금이기도 하다. 해리포터의 첫 원고가 이 지원금 덕에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공연예술 분야의 비정규직 예술가와 기술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고용보험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작품 활동이 끝나면 다음 작업에 돌입하기까지 일정 휴직 기간에 국가가 실업급여를 지급한다. 예술인을 직업인으로 인정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정책적 뒷받침과 공감이 수반된다면 예술인들 또한 끊임없는 공론화와 투쟁을 위해 맞서 싸울 것이다. 정부의 입법도 중요하지만, ‘노동자의 권익’ 측면에서도 다시 한번 상기되는 중요한 일이다. 구조적 모순과 열악한 환경을 타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러한 복지혜택은 국민의 사회적 합의로 도출될 수 있다. 예술가들의 예술적 성취를 시민들이 누린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오늘날의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로 이어진 것이다. 프랑스는 인식 개선을 하는 데 있어서 100여 년이 걸렸다. 재정악화 속에서 격렬히 싸운 예술인들과 이를 호응해 준 대중들의 얻어낸 결과물이다. 문화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오늘이 시작이다.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박정우 주주통신원  justiceloveagain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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