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법학은 보통 사회과학으로 분류되지만 그 뿌리는 인문학에 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분화가 본격화한 20세기 이전에 ‘지식인’은 인문학적 통합적 지식의 소유자를 일컫는 말이었다. 법의 영원한 주제인 ‘정의’는 철학, 문학 등 인문학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197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법과 문학 운동’은 법의 인문학 전통을 부활하자는 운동이었다. 미국 ‘증거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헨리 위그모어는 “모든 법률가가 숙지해야 할 문학작품 100권의 리스트”를 발표하면서 “법률가는 자신이 담당한 사안이 일반적 사상과 문학작품 속에 어떻게 반영되는가를 숙지해야 할 특별한 직업적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법과 인문학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은 헌법이다. 헌법에는 역사와 철학을 비롯해 인류 정신과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이 응축돼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에서 시작해 ‘신체의 자유’ ‘법 앞의 평등’ ‘인권’ ‘행복 추구’ 등 각 헌법 조문을 구성하는 핵심 사상에는 인문학 고전의 숨결이 녹아 있다. 우리 헌법의 인문학적 뿌리를 탐색한 <헌법의 발견>의 저자 박홍순씨는 헌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인문학 필독서로 플라톤의 <법률>,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루소의 <사회계약론>, 존 롤스의 <만민법> 등 7권을 추천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3일 안동대 학생들을 만난 자리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학 4년과 대학원까지 공부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 구설에 올랐다. 조선 성리학의 태두인 퇴계 이황의 고향에서 ‘인문학 경시’ 발언을 한 무신경도 놀랍지만, 평생 법을 직업으로 삼아 살아온 그의 정신세계가 고작 그 정도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현대사회는 과거의 법학 지식이나 법기술만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들에 봉착하고 있어 인문학적 탐구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의, 인권, 평등, 인간의 존재 가치 등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없는 법 운용은 한낱 기계적 장치로 전락하게 된다. 그것도 매우 위험한 기계다.

우리나라에는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약칭 인문학법)이 있다. 기초학문인 인문학이 실용학문에 밀려 점차 대학과 사회에서 찬밥신세가 된 상황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이 법은 인문학의 진흥을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여러 책무와 역할을 명시하고 있다. 나라의 지도자가 학술, 문화, 예술 등 모든 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가질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기본적인 인식은 갖춰야 한다. 그런데 윤 전 총장은 ‘인문학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높은 자리 윗분이 인문학을 경시하면 교육당국과 대학들도 덩달아 영향을 받아 인문학의 고사는 더욱 가속화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풍토다.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는 발언도 마찬가지다. 윤 전 총장의 이 발언을 접하면서 맨처음 떠오른 것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아프리카 등을 향해 “거지소굴(shithole)”이라고 한 발언이었다. 윤 전 총장의 발언은 트럼프의 극단적 막말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그 속에 흐르는 우월감, 인종적 편견, 못 사는 나라에 대한 경멸 등은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과연 아프리카는 손발 노동이나 하는 수준인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0월 펴낸 자료를 보면, 아프리카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모바일 금융, 전자상거래, OTT 서비스 시장 규모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디지털 선도국인 나이지리아, 남아공, 케냐 등에서는 핀테크, 교육, 전자상거래, 농업 등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스타트업이 많이 생겨나면서 스타트업이 2019년에 받은 벤처캐피털 투자 총액이 약 13억~2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가나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토지등록제 시행을 준비하는 등 정부 서비스에 블록체인을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쯤 되면 아프리카가 손발 노동이나 하는 곳으로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무지와 편견의 소치인지 알 수 있다. 자칫 ‘글로벌 망신’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발언이다. 

아프리카는 오히려 우리가 본받아야 할 대목도 많다. 성 소수자 차별 금지를 헌법에 가장 먼저 명시한 국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다. 남아공은 성별과 장애를 이유로 한 어떤 차별도 금지하고 있다. ‘프리덤 하우스’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자유지수’에서 아프리카의 카보베르데와 모리셔스는 자유와 민주주의 순위에서 한국보다 앞서 있다. 전 세계 국가들이 난민수용을 꺼리는 상황에서 우간다 정부는 남수단 난민 100만명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난민 이동의 자유, 경작지 제공, 공공서비스 이용 허용 등 획기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난민에 대한 불관용과 편견이 만연한 한국과는 확연히 다르다. 정치 지도자가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쓸데없는 우월감이나 교만함이다. 타자에 대한 존중, 이해, 배려의 정신은 나라 안은 물론 밖을 향해서도 발휘돼야 한다.

잦은 말실수는 단순히 한순간의 착각이나 생각의 회로가 꼬인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인식 수준과 사고의 민낯이며, 확신과 신념의 다른 표현이다. 주목할 점은 윤 총장의 말실수에서는 일관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약자에 대한 경멸과 무시다. ‘고발청부’ 의혹과 관련한 소규모 언론사 무시 발언을 비롯해 ‘120시간 근무’, ‘부정식품’ 발언에다 최근의 인문학과 아프리카 발언에 이르기까지 약자 무시가 학문과 글로벌 차원까지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약자에 대한 보호와 배려는 정권의 향배와 관련 없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지상과제다.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정글에서 벗어나 힘없는 계층과 소수자를 보듬고 배려하는 일은 어떤 세력이 정권을 잡아도 내릴 수 없는 깃발이다. 그런데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가 전방위적으로 약자를 무시하고 기득권층과 강자 쪽 사고에만 젖어있으니 참으로 우려스럽다. 

* 이글은 프레시안에 실린 글입니다.

 

 

<편집자 주> 김종구 언론인은 1988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서 한겨레21 편집장, 한겨레신문 편집국장, 편집인,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남서울대 객원교수,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로 매스컴과 글쓰기 등의 강의를 하고 있다.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  양성숙 편집위원

김종구 언론인  kjg2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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