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나이가 중요해

돌봄 노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른들은 아이 나이를 따라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른의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의 나이가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엄마 아빠 나이의 많고 적음과는 상관없이 돌보는 아이의 나이가 몇 살인지, 또래들과 어울릴 만한 나이인지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다향이가 영유아기를 보낸 과천에서 육아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서른대여섯 살이었던 나는 다른 엄마들에 비해서 대여섯 살이 많았지요. 젊은 아낙들 일고여덟에 아이들 열 명 정도를 합쳐서 스무 명 가까운 인원이 13평, 15평 아파트에서 어떻게 모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더러 걷고 뛰어다니는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기저귀를 찬 상태였고, 한쪽에서는 누군가가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분유를 먹이면서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열심히 의견을 나누고, 밥을 해 먹으면서 모임을 지속했던 건 모든 관심사가 아이에게 집중되어 있어서가 아니었나 짐작을 해 봅니다.

그때 단련되고, 쌓인 내공으로 어디서든지 아이들과 잘 놀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육아 모임은 물론이고, 다향이의 유치원 친구들과 제주의 산골 마을 교래 분교 아이들, 변산 공동체의 갓난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었지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난 아이들과 노는데 천부적인 자질을 갖고 태어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울고 떼쓰는 아이를 달래서 노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으니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었습니다. 아이가 열대여섯이 되고 스물을 넘기면서 어린아이랑 어울리는 능력이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어쩌다가 유치원이나 초등 저학년 나이의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 정신이 쏙 빠져버리기 일쑤였지요.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치고, 목소리는 활기차며 잘 울고, 때때로 소리친다는 걸 알면서도 귀가 아프고, 머리가 지끈거렸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내 아이가 훌쩍 자라면서 돌봄 노동에 최적화됐던 능력이 사라졌구나. 출산의 고통을 겪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도 둘째, 셋째를 낳는 것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KBS 뉴스(2021.07.28. 오후 7시) 화면 갈무리
KBS 뉴스(2021.07.28. 오후 7시) 화면 갈무리

 

편집 : 박춘근 편집위원

오성근 주주통신원  babsangman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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