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까지 세계를 풍미한 바나나 품종 ‘그로미셸’이었지만 현재 자취를 감췄다. 뿌리를 썩게 만들며 창궐하는 곰팡이 때문인데, 캐번디시가 빈자리를 메웠다. 그로미셀보다 풍미가 덜한 캐번디시도 곰팡이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전문가는 바나나가 멸종 위기에 몰렸다고 경고한다.

필리핀이든 파나마든, 뿌리로 분양한 바나나의 유전자는 한 그루처럼 똑같다. 최고 효율로 막대한 이윤을 독점하려는 다국적 기업은 바나나의 유전자를 획일화했다. 바나나만이 아니다. 세계 소비량의 80퍼센트를 점령한 미국의 아몬드도 비슷하다. 2월 중순 한꺼번에 아몬드의 꽃가루 수정을 위해 북중미와 남미 그리고 유럽에서 캘리포니아 아몬드밭으로 몰려오는 꿀벌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극단적인 효율화가 빚은 결과다. 멀쩡해도 구제역 핑계로 살처분하는 세계의 모든 돼지, 근처에 조류독감바이러스가 검출된 조류 분변이 있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죽이는 닭, 오리, 메추리가 그렇다.

최근 우리나라에 ‘과수화상병’이 돈다. 사람 사이의 코로나19처럼 과일나무 사이로 전파되는 ‘과수화상병’은 코로나19처럼 아직 이렇다 할 치료제가 없다. 확산을 막으려는 당국은 감염된 나무의 반경 100미터 이내의 모든 과일나무를 잘라내 파묻고 향후 5년 동안 과수원을 금지한다. 기후변화로 주산지가 북상하는 사과나무는 100년 뒤 북한에 심어야 할 것으로 환경부가 예측한 바 있다. 기후위기는 심화하는데, 이러다 제사상에 사과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지난 5월 26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의 일부 개정을 예고했고, 생활협동단체를 비롯해 환경단체에서 크게 비판한 바 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유전자가위(CRISPR) 기술의 묵인에 있다. 정부는 같은 종 내 유전자 교환이므로 문제될 게 없다는 식품 관련 산업계의 주장을 대변하지만, 같은 종인가 아닌가와 관계없이, 조작한 유전자는 생태계에서 안정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등한시했다. 엄격한 실험실 조건에서 나온 결과를 생태계에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외면했다. 뜻하지 않게 이동, 변형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같은 종이라도 GMO로 인식해야 한다. 시민단체는 그 점을 강조하면서 유전자가위 기술의 도입과 그 승인 또는 묵인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지난 5월 26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의 일부 개정을 예고했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유전자가위(CRISPR) 기술의 묵인에 있다. (이미지 출처 = Flickr)
지난 5월 26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의 일부 개정을 예고했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유전자가위(CRISPR) 기술의 묵인에 있다. (이미지 출처 = Flickr)


2016년 2월 연례 위협평가 보고서에서 미 정보국은 살아 있는 세포 DNA를 변경하는 유전자 편집, 그중 유전자가위 기술을 “대량 파괴와 확산의 무기”로 상정했다. "살인 모기"의 예처럼, 주식을 위해 파종하는 농작물을 없애는 전염병의 가능성 여부, 심지어 사람들의 DNA를 잘라버리는 바이러스를 만드는 데 사용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이다. 독특한 식문화를 가진 어떤 인종에게 불리하도록, 유전자가위 기술로 특정 바이러스의 유전자 조합을 변형하여 은밀하게 유포할 가능성은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대량 학살 생물학무기를 유전자가위 기술로 설계할 수 있다는 미 정보국의 상상은 우리를 전율하게 한다. 미 정보국의 상상력은 허구가 아니다. 우리 산자부에서 제안하는 개정안과 다소 거리가 있지만, 유전자가위 기술은 얼마든지 악용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 우리는 미래세대의 생존을 위해 기후위기 시대에 생태적 완충력을 말소하는 유전적 단순화를 경계해야 한다. 다수확을 위해 농작물을 단순화한 녹색혁명은 지역적 단작을 몰고 왔고, 녹색혁명은 다수확의 필수조건인 과도한 화학농업을 확산해 돌이키기 어려운 문제를 농업계에 퍼뜨렸는데, GMO는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글리포세이트로 인한 생태계 파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유전자 획일화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유전자가위 기술은 어떨까?

유전자가위 기술이 이끌 농작물, 또는 축산물 유전자의 극단적인 획일화는 기후위기 시대에 파국을 앞당길 게 틀림없다. 막대한 자본과 기술을 동원해 극복할 가능성이 겨우 보이는 코로나19보다 안전할 거라고 확신할 수 없다. 종잡을 수 없는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은 유전 다양성을 잃은 농수축산물의 안정성을 떨어뜨리고, 그 여파는 인류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유전자가위라니! 기업의 이권을 외면할 수 없는 산자부일지라도, 국민의 생명을 앞장서서 위협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생태계의 안정을 해칠 가능성이 높은 유전자가위 기술은 제한되어야 한다. ‘사전예방원칙’에 의거한 신뢰할 안정성 확보 없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정책을 정부에서 마련할 수 없다. 기후위기 시대에 산업은 생태계 안전이 기반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이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에도 실린 글입니다. 
* 원문보기 :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841

 

1988년 인하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환경 관련 강의를 수행하며 있으며 2021년부터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어쩌면 가장 위험한 이야기>(이상북스 2019) 외 다수의 저서를 발간했다.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 양성숙 편집위원

박병상 독자통신원  Brilsymb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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