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남 선생 손자 부부 조광식·송월선 씨 인터뷰
“고향에 돌아와 할아버지 기리는 작업할 것

조이남 선생의 손주 조광식씨와 부인 송월선씨.
조이남 선생의 손주 조광식씨와 부인 송월선씨.

“열아홉, 스무살 때 이원면 동네 할아버지들이 내 할아버지가 이원만세운동에 나섰다가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8개월이나 치르고 나왔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해주셨다. 동네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관심도 많은 분이셨고 했다. 공주형무소에서 나오신 뒤엔 고문 후유증으로 오래 앓다가 돌아가셨다”

조광식씨가 기억하는 할아버지 조이남 선생의 전부다. 조씨는 이원만세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 조이남 선생의 손자다. 조이남 선생은 1919년 이원만세운동에서 주역 9명 중 한 사람이다. 당시 헌병대가 만세운동 주모자들을 잡아가자, 주민들은 구금자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헌병주재소를 습격했다. 이때 조 선생은 육창주·허상기·허상회·허상구·김용이·이호영·공재익 선생과 함께 현장에서 붙잡혀 공주형무소에서 8개월간 옥고를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조이남 선생은 1946년에 세운 8사 기념비와 1958년 이원역 앞에 세운 ‘기미 3·1운동기념비’ 모두에 이름이 새겨진 이원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다. 조 선생의 아들인 조도치씨는 생전 이원역 앞에서 진행되는 만세운동 행사에 후손 자격으로 참석해왔다. 다만 이원면에서의 인정과는 별개로 형사사건부 기록에는 조 선생이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됐다고 적혀 있다. 이에 조 씨는 “30여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도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기록물을 찾고자 전국 각지로 다녔지만 결국 못 찾았다”라며 “대를 이어서 노력해야 했는데 먹고 사는 게 바빠 기록들을 찾으러 다닐 생각을 못했다. 이제라도 ‘옥고 8개월’ 기록을 찾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7남매 중 이제는 3남매만 남은 조광식씨는 독자다. 그는 이원초·이원중학교를 졸업한 뒤, 대전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타향살이를 했다.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퇴직한 뒤에는 고향인 이원에서 살고자 예전에 살던 집터와 땅을 샀다. 조씨는 조이남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되면 일부 땅에 ‘조이남 선생 기념관’을 만들 계획이다. 

특히 그는 조국독립을 위해 힘써온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직접 재판기록을 찾고 공훈을 발굴하는 게 어려운 만큼 지자체나 정부에서 독립공훈 발굴에 나설 것을 강조했다. 그는 “혼자 힘으로 증빙자료와 옛 기록물을 찾는 것은 어려웠다.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나설 필요가 있다”라며 “할아버지가 추서되는 것을 주민 모두가 염원하는 만큼 늦은 숙제를 푼다는 생각으로 보충 기록들도 찾아보겠다”라고 다짐했다. 

* 출처 : 옥천신문(http://www.okinews.com) 
* 이 기사는 옥천신문과 제휴한 기사입니다.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민영빈 옥천신문 기자  minho@o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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